<신과 함께 - 죄와 벌>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장면들엔 항상 이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기존의 영화, 드라마 속에서 자주 봤던 극성스럽고 친근한 어머니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내색하진 않지만 깊은 슬픔을 가진 엄마의 표정을 차분하고 안쓰럽게 담아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죠. 이번 포스팅에선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자홍 어머니를 연기한 예수정에 대해 알아봅니다.


정애란(왼쪽), 예수정(오른쪽)

예수정의 집안은 연극계와 연이 깊습니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최불암의 어머니 역을 맡았던 고 정애란이 어머니죠. 예수정의 본명은 ‘김수정’. 정애란의 본명 예대임의 성을 따 예수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형부는 배우 한진희입니다. 그의 딸 김예나는 연출가로 활동 중이죠.

연극 무대 위 모습 (연극 <하나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독어 독문학을 전공한 그는 고려대학교 극회에서 처음 연기를 시작합니다. 너희 어머니도 배우니까 한 번 해보라는 말에 “해볼까?”한 게 연기의 시작이었죠. 연극의 매력에 더욱더 심취한 그는 석사를 따고,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연극을 공부합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김동훈 연극상, 서울연극제 여자 연기상,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수상해 ‘연극계의 대모’라 불렸지만 스스로를 40년 가까이 무명배우라 칭합니다.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일인데도 얼마나 좋아하면 40년 가까이 할 수 있냐”고 반문하며 오히려 자랑할 만한 일이고, 자신을 칭찬하는 말이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요즘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보다 대중과 가까워졌는데요. 작품 속 그의 모습들을 모았습니다.


얼굴 보면 딱! 생각나는
작품 속 그의 얼굴들

<지구를 지켜라> - 병구 모 역
연극 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던 그녀의 첫 스크린 데뷔작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5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병구(신하균)의 어머니로 등장하죠. 제목의 ‘지구를 지켜라’라는 말도 엄마가 병구에게 남긴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병구는 의도치 않게 자신의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극적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구를 지켜라!

감독 장준환

출연 신하균, 백윤식

개봉 200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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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 티파니 역
서민적인 어머니의 모습과 180도 다른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 도둑들이 노리고 있는 ‘태양의 눈물’을 소유하고 있는 캐릭터로 각국 언어에 능통하며, 돈도 많습니다. <도둑들>을 찍으면서 너무 어리게 보일 거 같다며 시가를 한 대 피우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고 해요.

도둑들

감독 최동훈

출연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임달화,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 이신제, 증국상

개봉 2012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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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다> - 신선미 의원 역
종찬(김주혁)의 소름 끼치는 냉정함이 드러났던 장면이죠? 딸의 실종에도 전화도 받지 않고 호텔에서 은밀히 다른 의원을 만나 배후 정치를 하던 장면입니다. 그 상대역이었던 신선미 의원을 맡은 배우가 예수정이었죠. 잠깐의 출연이지만 능구렁이 같은 정치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비밀은 없다

감독 이경미

출연 손예진, 김주혁

개봉 201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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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 인길 역
아마 그의 스크린 필모 중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남았을 장면일 텐데요. 애초에 이 캐릭터는 좀비들에게 쫓기다 허무하게 죽는 캐릭터였습니다. 이에 그는 무언가 극에 기능적인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해 연상호 감독에게 1.5초만 더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런 결과 죽음을 직감하고 젊은이들을 먼저 보내는 역할로 입체적으로 변할 수 있었죠. 가장 나약하게 보였던 노인의 얼굴에서 굳은 결의가 담긴 모습으로 변하던 얼굴을 잊지 못합니다.

부산행

감독 연상호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수안,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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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 노모 역
정수(하정우)가 고립된 터널에서 현장 인부로 일하던 아들의 죽음으로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찬 어머니로 등장합니다. 아무 죄도 없는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에게 계란을 던지며 분노합니다. 여기에 세현이 조의금 봉투를 건네는 것도 그가 제안했던 설정이었습니다. 세현과 대립 상황을 더욱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죠. 그는 이렇듯 작은 역할이더라도 폭넓은 캐릭터를 보여주고자 했죠.

터널

감독 김성훈

출연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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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는 길> - 고은희 역
영화와 드라마 통틀어 에디터가 그의 얼굴을 처음 기억하게 된 작품입니다. 인간문화재로 등록된 매듭장인이란 독특한 캐릭터 직업도 그를 기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죠. (그 자체로 정말 인간문화재 장인 같았거든요...) 죽음을 앞둔 순간, 아들과 사랑에 빠진 유부녀 수아(김하늘)에게 “나가는 김에 나 팥죽 한 그릇만 사다 달라”며 마지막 한 그릇을 비워낸 뒤 세상을 떠납니다. 작품 속에서 따뜻한 말을 건조하게 툭툭 내뱉던 그는 최후에도 담담했습니다.

공항 가는 길

감독 김철규

출연 김하늘, 이상윤, 신성록, 최여진, 장희진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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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 박무성 어머니 역
극 초반 의문의 살인 사건의 피해자 박무성의 어머니로 등장했습니다. 시목(조승우)은 자꾸 말을 바꾸고 당황스러워하는 무성의 어머니를 의심합니다. 초반부 아들을 잃고 난 뒤 무언가 숨기고 있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해 극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미지 준비중
비밀의 숲

감독 안길호

출연 조승우, 배두나, 이준혁, 이경영, 신혜선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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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죄와 벌> - 자홍 모 역
이번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선 두 아들을 연달아 잃은 엄마로 나왔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가난하게 두 아들을 키웠죠.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캐릭터지만, 자식에 대한 미안함, 슬픔, 억울함, 처연함까지 전달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의 눈물샘은 봉인 해제되었죠.

신과함께-죄와 벌

감독 김용화

출연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김향기, 김동욱, 마동석

개봉 2017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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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 제혁 모 역, <언터처블> - 박영숙 역
최근 드라마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인데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선 잘 나가던 스포츠 스타에서 감빵에 들어가게 된 아들 제혁(박해수)의 엄마로 나왔습니다. JTBC <언터처블>에서도 남편의 그늘에 쥐 죽은 듯이 살면서 유일한 희망인 아들을 집착하는 엄마로 등장합니다. (모아놓고 보니 유독 아들 가진 엄마로만 나오시는 것 같습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연출 신원호

출연 정경호, 박해수, 이규형, 최무성, 김성철, 정웅인, 성동일, 유재명, 크리스탈, 임화영, 김경남, 박호산, 강승윤, 김한종, 정민성, 주석태, 이호철, 정재성, 최연동, 강기둥, 안상우, 박형수, 이훈진, 김기남, 안창환, 이도겸, 신재하, 염혜란, 정해인

방송 2017,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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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

연출 조남국

출연 진구, 고준희, 정은지, 김성균, 임현성, 박근형, 최종원, 예수정, 신정근, 손종학, 박원상, 진경, 배유람

방송 2017,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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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 정씨누님 역, <행복의 나라> - 희자 역, <허스토리> (가제)
<신과 함께> 이후에도 벌써 세 편의 영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1월 개봉을 앞둔 연상호 감독의 <염력>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고요. 일본군 위안부 등 전쟁 피해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승소 판결을 받아낸 관부 재판 실화를 다룬 <허스토리>(가제)에도 출연 예정되어 있습니다. <행복의 나라>에서는 자살하려던 남자를 구하고 대신 죽은 아들의 엄마로, 아들이 구한 남자 민수를 제 아들처럼 대해주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조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