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파초 Gaspacho’라는 요리를 아시나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음식인 가스파초는 토마토를 기본으로 한 차가운 야채수프입니다. 매년 토마토축제가 열리는 스페인과 잘 어울리는 요리죠. 만드는 방법이 간단한 건 기본이고 여름철 갈증을 해소하기에 이만한 음료가 없습니다.


토마토와 오이, 양파, 피망 등을 섞어 갈거나 곱게 다져 올리브오일과 식초, 소금, 물로 간을 맞추면 완성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울 때 수박화채를 찾는 것처럼 스페인에서는 여름철에 차갑게 식힌 이 요리를 음료처럼 먹습니다. 싱싱한 채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맛과 향이 시원한 느낌이에요. 

영화 <소울 키친>은 고급 레스토랑에 들른 손님이 따뜻한 가스파초를 주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지배인이 주방에 들어가 손님의 주문 사항을 얘기하자 셰프 쉐인(비롤 위넬 분)은 절대 따뜻한 가스파초란 있을 수 없다며 요리를 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셰프는 이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따뜻한 가스파초는 전통을 무시하는 요리니까요! 결국 그는 손님과 크게 다툰 그날로 레스토랑을 나와야 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식당소울 키친에는 지노스(아담 부스두코스 분)란 셰프가 있습니다.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그의 레스토랑에는 냉동 미트볼, 냉동 생선튀김, 케첩과 마요네즈 등의 시판소스가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도무지 소울이란 존재는 찾아볼 수 없는 음식뿐이죠. 게다가 자신의 꿈을 찾겠다며 상하이로 떠난 여자 친구가 변심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그녀를 찾아갈 궁리만 하고 있으니 레스토랑이 잘 돌아갈 턱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교도소에 있는 형은 위장취업을 부탁하고 세무서로부터는 체납의 추궁이 시작되었습니다. 위생국은 새로운 주방 설비를 갖추라고 명령하고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까지 발병하고!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내입니다. 결국 지노스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자신을 대신해 음식을 만들 셰프를 고용합니다. 그가 바로 앞서 설명한 고집불통 셰프, 쉐인입니다.

쉐인에게 현재의 소울 키친이 마음에 들 리 없습니다. 40여 가지 레시피의 맛이 다 똑같은 것도 이해가 안 가지만 레스토랑의 외관이며 내부 인테리어까지 위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크고 낡은 창고 같은 건물은 컨테이너박스를 연상시키고 작동이 되기는 할까 의심스러운 주방기기들만 가득합니다.


무엇보다 냉동실을 가득 채운 인스턴트 식품과 각종 냉동 식재료들! 그는 이 재료들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예산을 초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새로운 식재료로 네 가지 레시피만 개발해 판매할 거라 선언합니다. 바로 영혼을 위한 진정한 소울 푸드를 말이죠.


하지만 이미 패스트 푸드에 길들여진 동네 사람들은 쉐인이 개발한 소울 푸드에 냉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내 감자튀김 내놔! 피자는 어딨는 거야?”라고 항의하는 손님들뿐이었죠. 다행히 레스토랑 주변에 뮤직스쿨이 생기면서 젊은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요, 학생들은 고집불통 셰프가 자부심을 갖고 만든 음식의 매력에 점점 빠져듭니다. 그때부터 레스토랑 소울 푸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죠. 물론 이후로도 쉐인과 지노스에게 여러 위기가 찾아오지만 요리를 대하는 지노스의 마음이 바뀌면서 남은 문제도 지혜롭게 해결해나갑니다.  

음식에 대한 마음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레스토랑에는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부엌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에는 부엌인지 창고인지 구별되지 않던 곳이 지노스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 번쩍번쩍 윤이 나는 새 공간이 됩니다.


공간의 변화는 사실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바뀌었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엉망진창으로 인생을 살던 지노스는 점점 정갈하고 멋진 레스토랑 주인으로 탈바꿈하거든요. 그의 변화는 음식과 사랑을 통해 극대화됩니다. 요리를 대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바뀐 것처럼 사랑에 대한 진정성도 더 깊어진 듯 보입니다. 인스턴트 재료만 사용하던 그가 직접 머랭 거품을 내고 정성이 들어간 라비올리나 가지 요리를 만들면서 사랑의 깊은 맛도 발견하게 되거든요.


영화의 배경인 함부르크는 영화 초반에 차갑고 무겁게 그려지는데 소울 키친이 새롭게 태어나면서 나중에는 활기가 넘치게 느껴집니다. 무엇이든 진정한 소울이 담기면 상상 이상의 에너지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메뉴 따라하기

토마토는 리코펜 성분을 높이기 위해 익혀 먹는 게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하죠. 하지만 가스파초는 차갑게 먹는 수프이니 굳이 익히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스페인 남부의 뜨거운 햇살을 견뎌내기 위해 이 수프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큼한 맛이 입맛을 돌게 해서 현지 레스토랑에서는 애피타이저로 자주 등장합니다. 몇 해 전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를 여행 할 때 가스파초를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더위에 지친 영혼을 상큼하게 충전해 주더라고요. 만드는 법은 간단하지만 생채소로 만드는 레시피인 만큼 재료의 신선도를 잘 체크해 만들어야 해요. 특히 토마토는 잘 익은 걸로 고르세요.

 

< 가스파초 >

 

토마토 3개 파프리카 1, 양파 1/4, 오이 1/2, 식빵 2-3, 화이트와인 발사믹 비네거 2큰술, 올리브오일 1/4, 소금 조금

 

1. 토마토와 파프리카, 양파는 잘게 다진다.

2. 식빵은 테두리를 잘라내고 오이는 껍질을 벗기 잘게 다진다.

3. 푸드 프로세서나 믹서에 위의 재료를 모두 담고 화이트와인 발사믹비네거를 넣어 곱게 간다.

4. 올리브오일과 소금을 넣어 한 번 더 간 뒤 냉장실에 반나절가량 넣어둔다.

5. 차갑게 식은 가스파초를 그때그때 컵에 따라 마신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

재밌으셨나요? 내 손 안의 모바일 영화매거진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더 많은 영화 콘텐츠를 매일 받아볼 수 있어요. 설정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