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감독 이한욱
출연 이유영, 김희원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기억되기엔
★★
청소년 성범죄부터 음란물 유포, 몰래카메라까지 뉴스에서 접해 온 사회적 문제를 스릴러로 풀어낸 영화다. 그러나 세태를 풍자하고 싶은 시사적인 욕구와 장르적 재미를 포기하기 싫은 창작자의 욕망이 제대로 맞물리지 못하고 내내 삐걱거린다. ‘시사성서사성을 엮는 설정들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서 탄력과 긴장에서 큰 성과를 얻지 못한 경우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풀어놓은 사연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실점-개연성과 장르적 쾌감 등-을 허용한다. 오래 기억될 영화는 아니다.

나를 기억해

감독 이한욱

출연 이유영, 김희원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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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탁

감독 이동은
출연 임수정, 윤찬영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각자의 역할로부터 자유로운, 어떤 가족의 탄생
★★★☆
어쩌면 <당신의 부탁>이 그리는 가족은 판타지에 불과할 것이다. 가족 관계 안에서 무겁게 짐 지워지는 역할들을 벗어나 각자 타인의 부족한 곳을 채우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케 하며, 동등하게 함께 걷는 존재로서의 가족이 된다는 것. 하지만 이 영화는 내내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태도로 안 될 것은 또 무어냐고 되묻는다. 효진(임수정)을 비롯한 다양한 엄마 캐릭터를 통해 엄마라는 존재는 누구인지, 엄마가 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폭넓게 바라보는 영화의 시각도 인상적이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스며든다
★★★☆
<환절기>에 이어 이동은 감독이 <당신의 부탁>에서 보여주는 소질은, 드라마틱한 소재가 전하는 유혹하는 불구하고 끝까지 오버하지 않고 사건을 절제된 형식으로 보듬어 낸다는 점이다.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수면은 고요하게 일렁이는 그의 인물들은, 그래서 안쓰럽지만 그래서 더 강해 보인다. 반대로 그래서 강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래서 마음을 흔든다. 인물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사려 깊은 예민함이 서려있어 반갑다. <당신의 부탁>에서 임수정은 스크린에 그냥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수채화 같다. 그리고 윤찬영. 분위기로 주의를 끄는 배우가 있는데 이 배우가 그렇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이화정 <씨네21> 기자
관계맺기라는 민감한 숙제
★★★
남편의 아이를 갑작스레 떠맡게된 효진은, 이 준비없던 관계맺음에 쩔쩔맨다. 관계를 시작한다는 건 그만큼 맞추어나가야 할 고리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는 사이 효진의 아들이 된 종욱(윤찬영)이나, 또 어린 나이에 덜컥 임신을 한 주미(서신애)에게도 효진과 마찬가지의 고민의 고리들이 주어진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마음 속 파동은 적지 않다. 영화는 찬찬히 이 관계 속에서 변화해 나가는 인물들을 탐색해 나간다. 이동은 감독의 전작 <환절기>의 세심한 관찰을 이어받는 시선. 잔잔하지만, 이들이 가진 아픈 속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 나가는 순간순간이 돋보인다.

당신의 부탁

감독 이동은

출연 임수정, 윤찬영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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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

감독 스콧 쿠퍼
출연 크리스찬 베일, 로자먼드 파이크

정유미 <맥스무비> 기자
폭력의 역사에서 답을 구하다
★★★☆
미국의 역사는 개척의 역사이면서 억압과 폭력, 증오로 얼룩진 역사이기도 하다. 스콧 쿠퍼 감독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돌아보면서 분노와 갈등이 만연한 현재의 미국을 투영한다. 수정주의 서부극계보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강조하는 메시지가 강한 울림을 전달한다. 크리스찬 베일과 로자먼드 파이크, 웨스 스투디의 흡인력 있는 연기, 타카야나기 마사노부의 촬영과 막스 리히터의 음악도 영화의 정중함에 힘을 보탠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옛날 옛적 서부에서
★★★
그 시절 서부에선 진짜로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원주민 인디언들과 이민족으로 이뤄진 개척기의 미국인들은 왜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던 걸까? 어느 인디언 가족을 호송하는 책임을 맡은 군인의 이야기인 <몬태나>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서부극이다. 이 영화는 대평원의 액션 스펙터클이나 고독한 총잡이의 비장미 대신, 미국의 증오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극의 흐름이 조금 느리긴 하나, 그만큼 음미하게 된다.

몬태나

감독 스콧 쿠퍼

출연 로자먼드 파이크, 크리스찬 베일, 웨스 스투디, 벤 포스터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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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우먼

감독 세바스찬 렐리오
출연 다니엘라 베가, 프란시스코 리예스

이화정 <씨네21> 기자
차별과 편견의 세상에 맞선 표정
★★★★
사랑했던 연인이 떠난 자리. 트랜스젠더 마리나의 주변에 들이닥치는 것은, 성소수자인 그녀를 향한 분노와 차별이다. 연인의 죽음을 아파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세상의 시선에 맞서야 한다. 마리나가 폭력적인 상황을 참아내면서도 원했던 단 하나는 사랑하는 연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 당연한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편견의 세상이 우리가 사는 이곳이다. 영화는 바람에 맞서고, 자주 일그러지는 마리나의 모습을 자주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처한 역경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마리나를 연기한 실제 트렌스젠더 다니엘라 베가의 호소력 있는 연기가 울림을 더한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
트렌스젠더인 주인공 마리나(다니엘라 베가)가 받는 수모와 냉대를 지켜보는 과정은 다소 힘겹다. 분명 우리 안의 편견과 냉소를 마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리나는 그것을 삼키듯 참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감정을 대변하듯 피어나는 환상적인 장면들을 마주하면, 생을 향한 조용한 열정이 각자의 가슴속으로 쏟아져내린다. 이것은 세상의 온갖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맞서며 지속되는 삶에 대한 영화다. 동시에 세상의 모든 존재 앞에 주어진 수많은 날들을 위한 찬가다.
 
송경원 <씨네21> 기자
자존, 그 지난하고 아름다운 저항
★★★☆
마리나는 트렌스젠더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동거하던 남성이 쓰러지자 온갖 모욕과 오해를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제대로 슬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는 화면 한 가운데 꼿꼿하게 선다. 전후반 시점이 교차하는 트릭 같은 서사와 상징적인 이미지들은 타인의 정체성을 인지하는 과정을 닮았다. 연민이나 감상주의 따위 없어도 세상에 당당할 수 있음을 아름답게 선언하는 영화. 오페라 가수로 분한 다니엘라 베가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마음을 흔든다.

판타스틱 우먼

감독 세바스찬 렐리오

출연 다니엘라 베가, 프란시스코 리예스

개봉 2017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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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유성

감독 신조 타케히코
출연 나가노 메이, 미우라 쇼헤

송경원 <씨네21> 기자
순정만화 속 판타지만 길어 올려 뽀샤시 필터링을 준 사진첩. 달아도 너무 달아
★★☆
순진하고 명랑한 소녀에 성숙한 연상남과 츤데레 동급생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만화를 원작으로 한 <한낮의 유성>은 순정물의 교과서 같은 전개 위에 있다. 위기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왕자님이 등장하고 우연이 겹쳐 낭만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진부한 서사지만 여전히 유효한 건 원작을 고스란히 옮긴 듯한 화사한 화면, 눈이 즐거운 미남미녀 배우 덕분. 마냥 달기만한 남의 연애를 참을 수 있다면 기꺼이 즐길 만 하다. 다만 허들이 꽤 높은 편.

정유미 <맥스무비> 기자
유성처럼 빛나는 나가노 메이
★★☆
일본 10대 청춘스타 나가노 메이는 <피치걸> <내 이야기!!> 등 최근 만화 원작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는 배우다. 명랑하고 엉뚱하면서 순수한 학생 역할을 도맡으면서도 매번 특유의 밝고 성실한 연기로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동명의 인기 순정 만화를 원작으로 한 <한낮의 유성>에서는 선생님과 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녀로 등장해 첫사랑의 다양한 감정을 맨 얼굴로 고스란히 표현한다. 첫사랑을 다룬 하이틴 무비 이상의 성취는 없지만 나가노 메이의 매력만큼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영화.

한낮의 유성

감독 신조 타케히코

출연 나가노 메이, 미우라 쇼헤이, 시라하마 아란

개봉 201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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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감독 코고나다
출연 헤일리 루 리차드슨, 존 조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건축으로 쓴 시이자 영상으로 지어올린 건축물
★★★
현대 건축의 상징물들이 조용히 자리 잡은 도시 콜럼버스. 그곳에서 만난 남녀가 하염없이 건물을 바라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교회와 병원, 도서관은 둘의 대화를 경청하는 중요한 청자이자 위안을 주는 화자로 모더니즘 건축의 교본 이상의 역할을 한다. 비디오 에세이스트 출신의 코고나다 감독이 콜럼버스의 건축물로 쓴 시 안에서 모더니즘은 온기를 담는 그릇과도 같다. 사람들의 체온과 이야기가 스며들 수 있게 남겨둔 모더니즘 건축물의 간결한 여백은 영화의 미덕과 닮아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모더니즘 건축학 개론
★★★
먼저 감독 코고나다에 대한 설명.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대학에서 오즈 야스지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고, 비디오 에세이스트로서 오즈를 비롯 로베르 브레송, 잉마르 베리만, 웨스 앤더슨, 리처드 링클레이터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의 첫 장편 극영화 <콜럼버스>는 건축으로 유명한 도시 콜럼버스가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그의 관심 감독들의 톤이, 특히 오즈와 링클레이터의 느낌이 잘 드러난다. ‘스토리텔링보다는 공간이 지닌 독특한 공기와 아름다움을 잔잔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영화다.

콜럼버스

감독 코고나다

출연 존 조, 헤일리 루 리차드슨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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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감독 유지영
출연 이세영, 김현준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우리 시대 청춘 표류기
★★★
대구에서 나고 자란 감독이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동시대를 조명한 일종의 영상 보고서. 연못 위에 뜬 오리 배 같은 신세인 청춘 군상들을 향한 위로의 정서가 아른거린다. 인물들이 나아가려는 방향을 섣부르게 재단하거나 그들을 젠 체하며 달래지 않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선까지만 담아낸 감독의 의지가 인상적. 당신의 청춘이 힘껏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페달 밟는 일을 멈출 수도 없는 오리배처럼 느껴진다면 이 영화는 분명 위로가 될 것이다.
 
이화정 <씨네21> 기자
치열하거나 좌절하거나, 어쨌거나 꿋꿋이 살아나기
★★★
아르바이트도, 대학편입 시험도 모두 치열하게 헤쳐 나가는 희정(이세영). 희정은 고군분투하지만, 영목(김현준)을 비롯한 자살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정의 치열함은 이해 받지 못한다. 희정의 발목을 잡아끄는 거대한 수성못의 활용이 사뭇 흥미롭다. 희정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 공간은 어쩌면 치열한 삶과 무기력한 삶들이 부딪히는 중립지대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공간을 때로 미스터리하게, 때로 웃프게, 또 때로 코믹하게, 또 절절하게 다양한 변주를 해 나가면서 이 공간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를 자꾸 들여다보게 만든다. 독특한 리듬감과 정서를 가진 작품이다.

수성못

감독 유지영

출연 이세영, 김현준, 남태부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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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감독 도이 노부히로
출연 다케우치 유코, 나카무라 시도

정유미 <맥스무비> 기자
다시 만나도 반가운 일본 멜로 걸작
★★★☆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 영화. 2004년 일본에서 개봉해 지금까지도 역대 일본 멜로 영화 흥행 상위에 올라 있으며 2005년 국내 개봉 당시에도 멜로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죽음을 뛰어넘는 순애보를 절묘한 구성과 장마라는 계절감을 활용해 산뜻한 멜로로 완성한 일본 멜로 영화 대표작. 2000년대 일본 최고의 스타였던 배우 다케우치 유코의 클로즈업 장면은 여전히 관객의 눈과 마음을 붙든다.
 
송경원 <씨네21> 기자
지극(또는 지독)한 헌신과 순수한 사랑의 교차로
★★★
순애물이 절정을 달리던 시기에 나온, 지독하게 맑고 애틋하고 비현실적인 사랑. 짧은 장마동안 죽은 아내가 돌아온다는 설정은 상황을 역전시킨 일종의 시한부 순애보다. 스스로 판타지임을 숨기지 않는 이 영화는 어설픈 현실묘사나 인간적 고뇌 등을 배제한 채 공간은 물론 날씨마저 예쁘고 아름답게 찍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진공상태의 판타지이기 때문에 도리어 기이한 흡입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개봉당시엔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일본 연애물과 비교할 때 상당히 절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외의 착시효과가 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감독 도이 노부히로

출연 다케우치 유코, 나카무라 시도, 다케이 아카시

개봉 200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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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내 인생

감독 라세 할스트롬
출연 안톤 글렌제리어스, 토마스 본 브롬슨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성장과 고독
★★★★
대표적인 성장 영화이지만, 전형적인 성장 영화는 아니다. 이 장르의 영화들이 대부분 웃음과 감동이 있는 이야기와 흐뭇한 결말로 이뤄진다면, <개 같은 내 인생>죽음’ ‘소멸’ ‘고독같은 묵직한 테마를 깔고 전개되는 이야기다. 육체적 호기심이나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 사춘기의 고민을 꾸미거나 순화시키지 않고 전달한다. 성장한다는 건 결국은 홀로 되는 걸 견디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는,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났어도 유효하다.

개 같은 내 인생

감독 라세 할스트롬

출연 안톤 글랜제리어스, 토마스 본 브롬슨

개봉 1985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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