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닿으면 피부가 따가울 만큼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눅눅한 습기까지 더해져 정말 뜨거운 물속에 던져진 물고기 같다. 평소에도 힘든 출퇴근길이 몇 배로 힘들어진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이 시기엔 휴가를 써야 한다. 똑같은 여름인데 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나온 여름은 따사롭고 평화로워만 보이는 걸까. 여름 속에서 엘리오와 올리버의 살갗을 스치는 소리가 두근거리게 만든다. 똑같은 여름인데, 똑같지 않다. 영화 속의 여름은 '이탈리아 크레마'의 여름이다. 엘리오가 될 순 없어도 그가 느꼈던 그 시간과 장소들을 즐기고 싶다. 오늘은 휴가철을 맞이해 전 세계 여행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 7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LA나 파리, 런던 같은 유명한 여행지들은 제외하고, 최대한 휴가 느낌이 나는 곳으로 선정해 보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The Sound Of Music , 1965
감독 로버트 와이즈 장르 멜로/로맨스, 뮤지컬, 드라마 출연 줄리 앤드류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사운드 오브 뮤직> (1965)

'도레미 송',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같은 명곡들을 남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다.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를 기념하는 물품들은 많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에 관한 홍보는 찾기 힘들다. 영화 속 그 장소를 편하게 방문하고 싶다면 '사운드 오브 뮤직 버스 투어'를 신청해보는 건 어떨까.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로 투어가 진행되며 영화 촬영지 5-6군데를 방문한다.

투어는 도레미 송의 배경인 미라벨 정원에서 출발하여 헬브룬 궁전 정원으로 향한다. 미라벨 정원에 가면 도레미 송이 저절로 흘러나올 만큼 평화롭고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미라벨 정원은 작은 에덴 동산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헬브룬 궁전에 가면 장녀 리에슬(차미안 카)와 우체배달부 롤프(다니엘 트러히티)가 불렀던 'Sixteen Going to Seventeen'의 배경인 유리 팔각정을 볼 수 있다. 

파노라마 투어에서 제공하는 레오폴츠크론성 외부.
Booking.com에서 제공한 슐로스 레오폴츠크론성 내부.

투어가 진행되면 영화 속에서 폰 트랩 대령(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집으로 등장했던 '레오폴츠크론성'을 연못 너머로 볼 수 있다. 호수만큼 커 보이지만 연못이라고 한다. 현재는 사유지로 함부로 들어갈 순 없다. 꼭 이 곳에 가고 싶은 사람은 별관을 호텔로 운영하고 있다 하니 참고하자. 1박에 50-60만 원 선이다. 인턴은 정말 참고만 해야겠다. 마리아가 견습 수녀 생활을 했던 논베르크 수녀원은 장소 특성상 성당만 개방하고 있으며 나머지 구역은 둘러 볼 수 없다. 그 후 영화의 첫 장면의 배경인 '장크트길겐 마을'로 향한다. 볼프강 호수와 샤프베르크 산의 풍경이 평화롭다. 자전거를 대여해 호숫가를 따라 달릴 수도 있다고 하니, 잘츠부르크의 풍경을 천천히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자전거를 이용하여도 좋을 듯하다. 

사운드 오브 뮤직

감독 로버트 와이즈

출연 줄리 앤드류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리처드 헤이든, 엘레노 파커

개봉 196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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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리타 - 쿠바 하바나
Chico & Rita , 2010
감독 하비에르 마리스칼,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장르 애니메이션, 멜로/로맨스 출연 에만 소르 오냐, 리마라 메니시스

1948년 쿠바에서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와 가수 리타가 만나 사랑과 꿈을 쫓는 이야기를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다룬 영화 <치코와 리타>의 배경이 된 곳은 쿠바의 하바나라는 도시이다. 가수 카밀라 카베요의 노래 '하바나'가 히트하면서 한국에서도 하바나는 이름만큼은 낯설지 않은 도시가 되었다. 

쿠바에서는 비즈니스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 아니면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다. 스마트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린 현대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겠지만 후기를 보면 의외로 인터넷이 안돼서 좋았다는 이야기도 많다. 핸드폰에서 벗어나 완전히 하바나에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맛집, 여행지가 아닌 직접 발견한 공간이 더 소중한 법이다. 

하바나에서는 거의 호텔과 공항, 고급 식당에서만 카드를 받는다. 현지를 직접 체험하고 싶다면 현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쿠바에서 통용되는 통화는 페소지만, 현지인과 여행자의 페소가 다르다. 여행자는 CUC, 일명 쿡이라고 불리는 페소를 사용하는데, 현지인의 페소인 CUP와 대략 24배 정도 차이난다. 1CUC가 24CUP의 가치를 갖고 있다. 이를 악용해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쿠바 하바나

럼주와 시가는 쿠바의 자존심이라고 할 만큼 유명하고 질이 좋다. 시가의 경우는 대부분 핸드메이드로 여러 브랜드가 있지만, 코히바가 가장 유명하다. 시가는 일반 담배와 다르게 1시간 정도 피는 게 일반적이다. 시가 하나를 물고 하바나의 거리를 거니는 여유가 멋스럽다. 게다가 시가는 급히 비벼 끄는 담배와 다르게 불씨가 천천히 꺼지길 기다려야 한다니, 쿠바라는 나라의 여유가 문화에 까지 밴 느낌이다. 물론 이런 여유로움은 도시 곳곳에 있기 때문에 제 시간에 버스가 제 시간에 오기를 바라는 건 일찌감치 접어두는 것이 좋다. 

치코와 리타

감독 하비에르 마리스칼,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출연 마리오 구에라, 리마라 메니시스, 에만 소르 오냐

개봉 2010 스페인,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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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이탈리아 크레마
Call Me by Your Name , 2017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출연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열일곱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스물 넷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의 이탈리아 여름처럼 뜨거웠던 사랑을 담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아름다웠던 그들의 사랑만큼 영화는 뛰어난 영상미를 선보였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배경을 이탈리아 크레마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 '자연스러움'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풍경은 캐릭터의 일부이므로 사실적이어야 한다"고 말한 감독은 그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크레마를 배경으로 선정했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크레마는 밀라노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마을로 한 두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다. 제대로 그곳을 즐기고 싶다면 중고 자전거 하나를 사거나 빌려서 달려 보는 건 어떨까.  

이탈리아 베르가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명장면 중 하나인 폭포 신은 밀라노 근교에 위치한 베르가모라는 소도시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중세시대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베르가모는 마을 전체가 마치 세트장 같아 보인다.  극 중에서 등장하는 폭포는 베르가모에 있는 세리오 폭포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폭포로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 프락시텔레스 청동 동상을 건져 낸 곳이 바로 가르다 호수다. 이 장면에서 엘리오에 대한 올리버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배경이 된 가르다 호수는 밀라노와 베니스 사이에 있으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로 드라이브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개봉 2017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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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아이슬란드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 2013
감독 벤 스틸러 장르 모험, 드라마, 판타지 출연 벤 스틸러, 크리스틴 위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최고 명장면은 명실상부 그가 롱보드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아이슬란드로 떠났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질주하는 그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명장면의 배경이 된 곳은 아이슬란드 93번 국도로, 세이디스피외르뒤르로 이어진다. 93번 국도에는 유명하진 않지만 자연이 그대로 지켜진 구푸포스 폭포도 있으니 지나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적어 오로지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숨은 명소기도 하다. 롱보드를 타고 도착한 곳인 호텔 알단 역시 실존한다. 

월터가 숀 오코넬(숀 펜)을 찾기 위해 갔던 히말라야와 아프가니스탄 모두 아이슬란드 바트나이외쿠틀 국립공원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름도 어려운 바트나이외쿠틀 국립공원은 아이슬란드의 3대 국립공원 중 하나로 대부분이 바트나이외쿠틀, 즉 빙하로 이루어져 있다. 전혀 다른 풍경인 히말라야와 아프가니스탄을 같은 곳에서 촬영할 수 있을 만큼 바트나이외쿠틀 국립공원은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이 공원은 러시아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국립공원으로 유럽 최대 크기의 빙하동굴까지 보유하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 <겨울왕국>, <토르: 다크 윌드>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이자 모티프가 된 곳이다. 지구 같지 않은 신비로운 풍경을 보유한 곳이다.

영화 속 히말라야를 가는 길에 잠시 등장했던 스코가포스 폭포는 아이슬란드 남부에 위치해 있다. 6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보라로 무지개가 자주 떠 '무지개 폭포'라고도 불린다. 스코가포스 폭포의 장점은 물줄기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인데, 생각보다도 더 힘들고, 올라갈수록 바람도 거세진다. 하지만 꼭대기에서  보는 풍경은 고된 여정을 다 잊게 해줄 만큼 장관이라고 하니, 아이슬란드에 가면 한 번쯤은 올라가 보는 것이 좋겠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감독 벤 스틸러

출연 벤 스틸러, 크리스틴 위그, 숀 펜, 셜리 맥클레인

개봉 201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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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 - 미국 유타주 모아브의 데드호스포인트 주립공원
Thelma & Louise , 1991
감독 리들리 스콧 장르 드라마 출연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베스트로 손꼽히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 엔딩 장면 촬영지는 미국 유타주 모아브의 데드호스포인트 주립공원이다. 비상하듯 절벽으로 달리는 그들의 질주는 수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화에서는 이 장소가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나오지만, 그랜드 캐니언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에서도 촬영허가가 나지 않는다. 때문에 그와 유사한 데드호스포인트 주립공원에서 촬영했다. 콜로라도 강이 1억 5천만년 동안 서서히 지형을 깎아 만든 데드호스포인트 주립공원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 <미션 임파서블2> 등 수많은 영화 촬영지로도 이름이 나있다. 

신기하게도 여기선 600m 절벽 위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찔한 절벽 위에 걸터 앉아 일몰을 감상하면, 저절로 영감이 떠오를 것만 같다. 데드호스포인트 주립공원은 그랜드 캐니언처럼 큰 공원은 아니지만 9마일 짜리 하이킹 트레일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포장도로도 마련되어 있다. 하이킹을 하면 그랜드 캐니언 대신이 아닌 데드호스포인트만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 때에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다르다.
델마와 루이스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개봉 199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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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헤븐스 도어 - 네덜란드 바덴 해의 텍셀 섬
Knockin' On Heaven's Door , 1997
감독 토머스 얀 장르 액션, 범죄, 드라마, 코미디 출연 틸 슈바이거, 잔 조세프 리퍼스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 주에 속한 텍셀 섬은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촬영지이다. 단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루디(잔 조세프 리퍼스)를 위해 마틴(틸 슈바이거)는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천국에는 주제가 하나야. 바다지."라는 말답게 그들이 본 바다는 예술이었다. 텍셀 섬은 현지인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기도 한데, 하얀 백사장과 천연 갯벌은 청정한 바다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 준다. 

텍셀 섬은 푸른 바다와 붉은 등대,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단지 보기만 하는 여행이 싫은 사람들을 위해 액티비티도 준비되어 있다. 직접 조개를 잡을 수 있는 갯벌 체험, 새우 잡이 체험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새우 잡이 배'가 너무 유명해 조금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직접 잡아 구워 먹는 그릴 새우가 일품이라고 하니,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해변가에서 승마를 체험하며 중세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낼 수도 있다. 텍셀 섬의 액티비티는 이외에도 다양하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감독 토머스 얀

출연 틸 슈바이거, 잔 조세프 리퍼스

개봉 1997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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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 - 일본 나라현 고조
A Midsummer's Fantasia , 2014
감독 장건재 장르 드라마 출연 김새벽, 이와세 료, 임형국

고조시청에서 제공하는 <한여름의 판타지아> 지도

너무 먼 곳은 힘들다, 일본이라도 괜찮다 하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 여행지도 있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배경인 일본 나라현 고조는 관광지에서 떨어져 있으면서도 교통편이 나쁘지 않다. 오사카에서 난카이난바역에 가, 난카이 고야선을 타면 된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고조시청에서는 고조시 촬영 장소 안내 지도까지 만들었다.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지도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본도 물론 존재한다. 지도에는 주인공들이 걸었던 거리와 가게는 물론, 숙박 요금과 체크인 시간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더운 여름에 자전거를 타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어쩐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에 가슴이 설렌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고조시 관광 안내소에서는 자전거도 빌려준다. 영화에서 등장했던 카페 '주리'는 이름과 주인 모두 바뀌었다. 하지만 외관은 그대로라고 하니 아쉬운 대로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작은 마을의 특성상 가게가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평화로운 일본 시골마을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조. 영화에서도 등장했던 요시노강을 가기 위해선 도로변을 약간 벗어나야 한다. 그곳에서는 간간히 일본 아저씨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이 아주 맑지는 않지만,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고조시는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하루면 충분히 돌 수 있다. 사람 많고 복작거리는 공간이 싫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오사카나 도쿄가 한국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그곳에 비해 도시의 특색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고조를 가보는 건 어떨까. 

한여름의 판타지아

감독 장건재

출연 김새벽, 이와세 료, 임형국

개봉 2014 대한민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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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명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