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유의 감성으로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감독들이 있다. 기괴하고, 독특한 소재를 사용해 거부감이 드는 작품들도 있지만 그만큼 팬 층도 두텁다. 쿠엔틴 타란티노, 봉준호 등 전 세계 유명 감독들도 팬을 자처할 만큼 독특하고 매력적인 일본 감독 3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스크롤의 압박으로 인해 소개하지 못하는 영화들도 많다. 아쉽지만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다. 


소노 시온
園子温

소노 시온은 1961년 아이치현 도요카와시 태생으로 17세에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호세이 대학 입학 후에 영화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각본, 감독, 주연 모두 담당한 영화 <자전거의 한숨>이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 30회 이상 초청받으며 색깔 있는 감독으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도쿄 가가가 활동 사진
<더 소노 시온: 소노 시온이라는 생물> / 소노 시온이 그림을 그릴 때

소노 시온은 감독보다 행위 예술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는 '도쿄 가가가'라는 행위예술단체를 만들어 2000여 명의 공연자들과 함께 시부야의 거리로 나가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도쿄 가가가'가 하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질문에 "결코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무의미, 무사상, 무교가 키워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쿄 가가가'에서 길거리 연극, 낭독, 미술 등 다양한 표현을 제시했다. 

<자살 클럽>

2001년, 그는 일본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문제적 작품 <자살 클럽>을 공개했다. 영화는 비디오, DVD 형태로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발매됐고 캐나다 영화제에서 관객 투표 1위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살 클럽>은 고등학생 집단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로 시작한다. 굉장히 컬트적이고 고어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해 보는 이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작품이지만 일본 사회의 병리적 현상인 자살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러브 익스포져>

그가 본격적으로 일본의 대표 변태(!)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은 <러브 익스포져>(2008)로 증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러브 익스포져>는 무려 237분, 4시간에 육박하는 영화로 폭력과 섹스가 뒤엉켜 있다. 아버지는 종교인이며, 아들 유는 몰카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범죄자다. 게다가 자신의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다. 부서지고 폭력적인 이미지에 주목하는 시온이지만, <러브 익스포져>은 희망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그는 그래도 사회에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일까? 

<차가운 열대어>

증오 3부작의 두 번째 작품, <차가운 열대어>(2010)에서 그는 이전에 보여줬던 희망을 완전히 제거한다.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과 그 가족이 마찬가지로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는 남자를 알게 된다. 가족은 돈과 욕망을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지 않는 남자의 폭력적인 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차가운 열대어>는 일본에서 발생한 사이타마 연쇄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인간성이 완전히 거세된 인간을 보여준다. 

(왼쪽부터) 소노 시온, 카구라자카 메구미

2011년, 그는 <길티 오브 로맨스: 욕정의 미스터리>를 마지막으로 증오 3부작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2011년 10월 23일, <차가운 열대어>, <길티 오브 로맨스: 욕정의 미스터리>에 출연한 카구라자카 메구미와 소노 시온이 약혼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메구미는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시온이 혹독하게 연기지도를 해 굉장히 힘들었다고 전했다. 

시온은 메구미와 만났을 때, 운명을 느꼈다고 한다. 메구미의 본명은 이즈미로 그의 어머니 이름과 같았다. 메구미는 그가 "(이즈미를 부를 때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르는 것과 겹쳐 보여서 이즈미라는 이름을 부르기 싫어했다"고 전했다. 시온은 지역에서 이름 난 명문가로 아버지는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결혼을 늦게 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는 폭군 같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떠받들며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 모습을 봐 온 나는 내 몸 안에 흐르는 그의 피를 부정했다. 결혼이 늦어진 이유 역시 아버지처럼 될까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두더지>

"나는 변태다. 변태는 아메바나 물 같은 유동체다. 마치 비가 바다나 증기로 변하듯이 우리는 갑작스럽게 변하곤 한다"고 자신을 정의한 시온의 말답게 그의 영화는 한 가지 장르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두더지>(2013)는 시온 인생 첫 만화 원작 영화다. 그의 영화 중 가장 희망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로 2011년 3월 11일 일본 역사상 최대였던 3.11 대지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재난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그래도 살아'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3.11 대지진으로 사회는 물론 정신까지 폐허가 된 일본을 위로하는 영화다. 

<지옥이 뭐가 나빠>

<지옥이 뭐가 나빠>(2014)는 코미디 영화는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의 과장된 행동과 예측 불가 전개 때문에 웃을 수밖에 없는 영화다. B급 향기가 나지만 제 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만큼 A급 영화다. 

소노 시온

소노 시온은 이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은색 페도라를 쓰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차기작인 <신주쿠 스완>(2015)을 촬영하던 도중 잃어버렸다.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를 모자로 누르고 튀어나왔는데, 부끄러웠다. 25년 동안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촬영 중이기도 하고, 사러 갈 틈도 없어서 계속 버텼다. 그렇게 있다 보니 모자에서 해방됐다. 그 날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뒤집어쓰고 있었을 수도?"라고 답했다. 25년 간 하던 것을 과감히 버린 그의 선택에서 엿볼 수 있듯이 소노 시온은 계속해서 변한다. 관객이 그에게 익숙해지려 하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예측할 수 없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자살 클럽

감독 소노 시온

출연 이시바시 료, 마로 아카지, 나가세 마사토시, 하기와라 사야, 사코 히데오

개봉 200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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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익스포져

감독 소노 시온

출연 니시지마 타카히로, 미츠시마 히카리

개봉 2008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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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열대어

감독 소노 시온

출연 후키코시 미츠루, 덴덴

개봉 2010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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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감독 소노 시온

출연 니카이도 후미, 소메타니 쇼타, 후키코시 미츠루, 와타나베 테츠

개봉 2011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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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뭐가 나빠

감독 소노 시온

출연 쿠니무라 준, 츠츠미 신이치, 토모치카, 니카이도 후미

개봉 201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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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소노 시온: 소노 시온이라는 생물

감독 오시마 아라타

출연 소노 시온, 카구라자카 메구미, 소메타니 쇼타, 니카이도 후미

개봉 2016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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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
黒沢清

구로사와 기요시
<간다천음란전쟁>

일본 공포 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는 <간다천음란전쟁>(1983)같은 로망 포르노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로망 포르노 장르지만 롱 테이크와 불연속적인 점프컷 등 구로사와 기요시의 색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로망 포르노는 포르노 성격의 영화지만, 남녀 간의 사랑을 그려내야 함도 분명하다. 사랑은 화면상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드라마가 필요하다. 사랑을 화면 안에 그려내는 작업이 많은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큐어>

기요시가 공포 영화의 대가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큐어>(1997)다. 기요시 최고 명작을 <큐어>로 꼽는 사람이 많을 만큼 영화의 완성도와 장르적 재미 모두 갖춘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 역시 인생 영화 10에서 큐어를 꼽으며 팬을 자처했다. 최면을 통해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로, 평범한 사람들 역시 살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인간관은 무엇일까. 그는 "나를 포함해 사람은 모두 자유로운 상태에 있고 싶어 한다. 법률이나 도덕이 이를 방해하지만 내 영화 속의 주인공들도 기본적으로는 정신적 자유를 갈망한다. 현실에서는 사회적인 제한을 지킬 수밖에 없지만 영화에서 만큼은 비상식적인 인물상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 합격>

<인간 합격>은 14살에 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던 소년이 10년 후 기적적으로 깨어난 뒤의 이야기다. 그가 누워있던 10년이란 시간 동안 세계는 너무 많이 바뀌었다. 가족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 있고, 친구들은 이미 결혼한 뒤였다. 스스로는 14살이지만, 사회는 그를 24살이라고 본다. 이 영화는 기요시의 첫 번째 드라마 장르 영화로, 가족의 붕괴, 그리고 재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가족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는 건조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지옥의 경비원>

기요시의 초기 영화 스타일은 할리우드 B급 영화와 유사했다. B급 영화에 자신만의 색채를 넣어, 일상 속에서 다가오는 공포에 주목했다. 우리를 지켜 줘야 할 경비원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를 공격하는 <지옥의 경비원>(1992), 누구나 살인범이 될 수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큐어>, 사소한 욕심에서 출발한 비극 <강령>(2000)까지. 그가 만든 공포는 느리지만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 

<산책하는 침략자>

이번 8월 16일에 개봉한 <산책하는 침략자>는 SF로맨스코미디 영화다. 어떤 장르를 하던 염세, 비관, 냉소의 톤을 유지해 오던 기요시가 이번 영화에서 달라졌다. 어느 날 행방불명 됐던 남편 신지(마츠다 류헤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을 '지구를 침략하러 온 외계인'이라고 설명하면서 아내(나가사와 마사미)를 당황하게 만든다. 신지는 산책을 다니고, 어떤 가족은 참살 당하는 등 미스터리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따뜻해진 기요시의 모습에 당황한 팬들은 '그만의 색채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기괴하고,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옥의 경비원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오스기 렌, 진기자 쿠야, 풍 송중

개봉 199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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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하기와라 마사토, 나카가와 안나, 우지키 츠요시, 야쿠쇼 코지, 오스기 렌

개봉 199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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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합격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아이카와 쇼우, 니시지마 히데토시, 수게타 슌, 야쿠쇼 코지, 오스기 렌, 아소 구미코

개봉 1998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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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침략자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나가사와 마사미, 마츠다 류헤이, 하세가와 히로키

개봉 201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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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 다카시
三池 崇史

미이케 다카시

미이케 다카시는 1960년 8월 24일 오사카에서 태어나 조감독 시절을 거쳐 1991년에 V시네마 감독으로 데뷔했다. "일은 온 순서대로 받는다"는 말을 할 만큼 코미디, 액션, 호러, 시대극, 히어로 액션, 뮤지컬, 서부극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장르가 없다. 최근엔 만화, 게임 원작 영화들을 만들며 평범한 일본 상업영화들을 만들고 있지만,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그의 상상력은 정말 엄청났다. 
극을 달리는 폭력과 기이한 상상력, 짐승 같은 섹스가 영화를 지배했다. 강렬한 스타일 덕분에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탄탄한 마니아층을 갖게 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의 열성팬임을 밝히며 한 인터뷰에서 "그는 대부(Godfather)다"라며 극찬했다. 타란티노가 가장 좋아하는 미이케의 영화는 <오디션>(1999)이다. 

<오디션>

<오디션>은 <비지터 Q>와 함께 2018년 영국 영화잡지 토탈필름에서 선정한 역대 가장 불편한 영화 25선에 이름을 올렸다. 중년의 남자가 오디션을 통해 자신의 아내를 찾았는데, 그 여자가 사이코인 이야기다. 철사줄로 뼈를 잘라 내거나, 눈에 길고 두꺼운 바늘을 삽입하는 등 고문을 보여준다. 특히 영상과 사운드를 굉장히 잘 사용해 관객이 직접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치 더 킬러>

미이케가 그린 고어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이치 더 킬러>(2001)를 추천한다. <이치 더 킬러>는 야쿠자끼리의 항쟁을 폭력이 아닌 스플래터 호러로 그린 문제작이다. 등에 갈고리를 꿰어 공중에 띄운다거나 장기(!)자랑을 하거나, 끓는 기름을 붓는 등 보고 있으면 속이 메스꺼운 장면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치 더 킬러>를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보다가 토하는 관람객을 위해 에티켓 봉투를 나눠줄 정도였다. 

<착신아리>
<크로우즈 제로>

그가 마니악한 장르만 잘 만드는 건 아니다. <착신아리>(2003), <크로우즈 제로>(2007)과 같은 작품들은 장르의 재미와 대중성을 두루 갖춘 영화다. <착신아리>에 등장하는 소름 끼치는 벨소리는 한국에서도 이슈가 됐다. <크로우즈 제로>는 스즈란 고등학교를 제패하기 위한 고등학생들의 싸움을 다룬 영화로 시원시원한 액션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테라포마스>

근래에는 만화,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들면서 미이케 스타일이 거의 사라졌다. 메이저로 진출하면서 그의 뜻대로만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생겼다. 실사화가 유행하는 일본의 영화계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메이저로 가면 마이너 팬들은 떠나기 마련이다. 미이케 특유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팬들은 과거 그의 영화를 또 한 번 돌려 보며 마음을 달래보자. 

오디션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이시바시 료, 시이나 에이히

개봉 1999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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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 더 킬러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아사노 타다노부, 오모리 나오

개봉 2001 일본, 홍콩,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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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신아리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시바사키 코우, 츠츠미 신이치, 후키이시 카즈에

개봉 200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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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우즈 제로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오구리 슌, 야베 쿄스케, 쿠로키 메이사, 야마다 타카유키, 시오미 산세이, 엔도 켄이치, 키시타니 고로

개봉 200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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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마스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이토 히데아키, 타케이 에미, 야마시타 토모히사, 오구리 슌

개봉 2016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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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인턴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