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사랑,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발자국
★★★
영화와 활자 매체의 속성은 분명 다르되, 이 영화의 경우에는 문학적이라는 표현이 퍽 어울린다. 단정한 문장으로 적힌 소설의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읽는 기분을 선사한다. 통속극이지만 내피를 이루는 결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사랑의 과정 그리고 기억 이후에도 남은 감정의 온도. 감독은 이 이야기들을 ‘작가의 집’이라는 특정 공간 안에서 찬찬한 호흡으로 바라보며 이해하게 한다. 인물의 감정이 조금은 급작스럽다고 느낄만한 지점이 있지만, 감흥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이화정 <씨네21> 기자
공간과 함께 태동한, 공감각적 멜로
★★★
책 속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그 공간 안에 책이 가득하고, 다시 그 서가에 꽂힌 책 속 인물들 중 하나의 이야기 같은. 공간과 인물이 그렇게 어우러진다. <나비잠>은 마치 기분 좋은 낮잠을 잔 후에 깨어나 보게 되는,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같은 연애담이다. 시한부 선고, 시한부 사랑 앞에서 그러나 또 악착같이 매달리고 아파하는 사랑이 유려한 필체로 그려진다. 멜로의 정서만을 꾹꾹 눌러 담은, 극장가에 흔치 않은 사랑 이야기의 도착.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너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
★★★
알츠하이머 소재가 멜로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되는 건 한쪽은 그대로인데 한쪽의 기억과 추억만 유명무실해진다는 비극에 있을 것이다. 함께 쌓아 올린 추억이 사라지면 사랑은 어디로 갈까. <나비잠>은 조금 더 들어가 알츠하이머를 앓는 주인공의 직업을 언어의 유실이 치명적인 작가로 설정했다. 인상적인 건 이러한 직업적 특징을 비극의 도구로 손쉽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삶을 정리하고 기억의 흔적을 남기는 통로로 승화시킨다는 점이다. 독창적인 멜로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작은 글자 하나의 쓰임까지 섬세하게 포착해 의미를 부여한 연출 덕에 <나비잠>만의 결이 형성됐다. 극중극(劇中劇)이라는 ‘서사적 구조’와 채도와 명도를 고려해 구축한 ‘공감각적 공간 디자인’ 또한 <나비잠>이 흔하디흔한 최루성 멜로와 거리두기를 하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