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미권 국가들의 영화·드라마 시장에서 아시아 감성이 확실히 대세이긴 한 모양이다. 아시안 배우들이 주연으로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 소재나 아시아 특유의 감성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런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국 드라마를 '영어' 버전으로 보고 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근래에 만들어진 영미권 영화·드라마 속에서 '한국 드라마'스러운 부분을 짚어보려 한다. 그동안 특유의 미국 드라마(영화) 감성과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 영화(드라마)들에 주목해보자.

※ 영화·드라마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 알고 보니_재벌 남주
# 웰컴 투 시월드

어서 와. 시월드는 처음이지.

싱가포르 최고의 중국인 부자 가문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평범하지만 똑똑한 여자(사실은 명문대 교수인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다)의 사랑 이야기다. 남자 주인공 닉(헨리 골딩)은 부자인데다 잘생겼고, 사랑하는 여자 레이첼(콘스탄스 우)을 위할 줄 아는 완벽한 남자다. 그러나 닉의 '크레이지 리치' 시월드를 맞닥뜨리는 순간 이들의 관계는 위기에 휩싸인다. (왜, 언제나, 모든 게 완벽한 남자의 단 하나의 단점은 시월드일까) 남자 쪽 엄마가 돈 봉투를 주거나 하는 장면은 없지만 레이첼을 은근히 무시하고 압박한다. 영화에선 부자들의 호화로운 사교 파티 장면이 즐비하게 이어지고 그런 별세계에 들어온 여주인공의 이야기. 사실 이 정도 막장은 한국 드라마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 다소 밍밍하게 느껴진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감독 존 추

출연 양자경, 젬마 찬, 콘스탄스 우, 아콰피나, 헨리 골딩

개봉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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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네 편의점
# 한국계 가족
# 도요타는 당장 신고 # 현대차는 NO 신고
# 아이참 # 썸만 타는 거 실화냐고요!

마치 국내에서 히트했던 '하이킥' 시리즈를 떠오르게 하는 캐나다 드라마다.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한인 가족이 주인공이다. 주인공 아빠(폴 선형 리)는 가부장적이지만 왠지 정감 가는 캐릭터다. 엄마(장 윤)는 한인 교회 활동에 열심이고 자식들의 미래, 연애에 관심이 지나치게 많다. 똑 부러지고 누구한테도 안 지는 대학생 딸 자넷(안드레아 방)과 사고 치고 가출한 아들 정(시무 리우)이 있다. 그러나 주인공 부부는 모난 것 없이 자란 딸보다 사고뭉치였던 아들을 알게 모르게 편애한다. 드라마는 좋은 점이든 좋지 않은 점이든 지극히 한국적인 가족의 특성을 잘 묘사했다. 주인공 김 씨가 처음 본 딸의 한인 남자친구에게 대뜸 "광복절이 언제지?"라고 묻고, 편의점 앞에 도요타 차량이 불법주차되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지만 현대 차가 불법주차된 것은 모른체하는 등 일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면들에서 한국인이라면 공감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포스팅의 마지막에 소개할 드라마 <드라마월드>에서 주인공은 한드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미드에서는 개나 소나 키스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다르다"고. 이 드라마에도 아들 정과 직장 상사 섀넌(니콜 파워)의 러브라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무려 이들은 시즌 2까지 썸만 탄다!! 물론 이 드라마가 미드 아니고 캐나다 드라마긴 하지만. 남녀가 감질나게 엇갈리는 공식마저 한국의 여느 로맨스물 못지않다. 한드 필수 법칙인 남자 주인공의 상반신 탈의 신도 당연히 꽤 자주 등장한다. 시즌 3에선 부디 썸 청산, 연애 시작하길!


서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 한국계 가족

<서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김씨네 편의점>이 한인 사회 특성을 고스란히 녹여내기 위해 한국계 가족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면, <서치>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이하 <내사모남>)는 소재와 상관없이 한국계 가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케이스다. 한국 음식을 소재로 한 일상적 대화가 자연스럽게 영어로 오갈 때면 익숙함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느낌이 든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가족애를 바탕으로 <서치>는 스릴러를, <내사모남>은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냈는데 스릴러와 로맨틱 코미디는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잘 먹히는 인기 장르기도 하다. <서치>는 국내에서 3백만 가까운 관객 수를 돌파하며 인기를 끌어 주연 배우 존 조가 뒤늦게 내한하기도 했다. <내사모남> 역시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넷플릭스 유저들을 끌어들이는데 톡톡한 공을 세웠다.

서치

감독 아니쉬 차간티

출연 존 조, 데브라 메싱

개봉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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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감독 수잔 존슨

출연 존 코베트, 라나 콘도르, 자넬 패리쉬, 노아 센티네오, 이스라엘 브로우사드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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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월드
# 김치 OOO 장면까지
# 뼛속까지 한드잘알

그러나 앞서 소개한 영화·드라마는 이 드라마에 비할 바가 못된다. <드라마월드>는 수많은 한국 드라마의 모든 요소를 2시간 30분가량의 분량으로 압축해 놓았다고 보면 된다. 한중미 공동제작 웹드라마지만 미국의 감독 크리스 마틴이 연출했다. 한국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박준'에 푹 빠져있는 미국인 소녀가 한국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조력자로 활동한다는 설정의 코믹 드라마다. 음모가 도사리는 복수극도 있고, 사극도 있고, 흔한 주말드라마의 로맨스와 막장 전개도 다 있다. 미국인 소녀 클레어(리브 휴슨)는 드라마 속에서 자꾸만 엇갈리기만 하는 재벌 2세 오너 셰프와 여주인공을 이어주고자 투입되지만 모두가 예상하듯 당연히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며 점차 자신이 여주인공이 된다.

밤거리엔 늘 취객들로 가득하고 (취객으로 박진주가 특별출연했다)
위험한 순간 구해준 사람한테 반드시 사랑에 빠진다(최시원이 특별출연했다)
남녀 주인공에게 '취중진담' 장면은 필수다.
남자 주인공의 샤워 신도 필수다.
주말 드라마의 시어머니는 당연히 이 배우다.

이렇듯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에서 닳고 닳은 설정들을 모두 모아 펼쳐 보인다. <드라마월드>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한국 드라마 법칙'도 있다. 「첫째, 모든 드라마는 진정한 사랑의 키스로 끝난다. 진정한 사랑의 키스란 남녀 주인공이 하는 키스를 말한다. 둘째, 남자 주인공은 네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춰야 한다. 자신감, 외모, 약간의 오만함을 갖추되 여자 주인공을 우선시하는 신사여야 한다. 언제나 그녀를 1순위로 둔다. 셋째,  남자 주인공의 샤워 신은 필수다. 넷째, 온갖 뒤틀린 플롯이 등장한다. 훼방꾼과 장애물이 많을수록 진정한 사랑이 보장된다.」

한국 드라마를 풍자하는 장면들도 등장한다. 추레해진 여주인공이 드라마의 흐름과 무관하게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 메이크업을 받으며 간접 광고 덕을 본다. 심지어 한때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유명했던 '김치 싸XX'(김치로 뺨을 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일부러 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박준 역을 맡은 션 리차드의 어색한 한국어 연기는 <사랑과 전쟁>에서의 장수원이 펼쳤던 로봇 연기와 흡사하다.

드라마월드 시즌1

감독 크리스 마틴, 죠쉬 블링

출연 션 리차드, 저스틴 전, 배누리, 김사희, 지미 슈버트, 리브 휴슨

개봉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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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