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영화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배우와 실존 인물의 싱크로율이다. 완벽하게 역사 속 인물이 된 배우들은 시대는 물론 국적, 성별을 뛰어 넘어 스크린 속에서 역사를 재현한다.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시간이 지나 조금씩 잊혀 졌던 역사 속 인물들은 다시 한 번 회자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실존 인물과 전기 영화 속 배우의 싱크로율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어떤 배우가 가장 그 인물을 잘 담아냈는지 비교해 보자.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에디 레드메인 → 스티븐 호킹

(왼쪽부터) 스티븐 호킹과 제인 호킹, 에디 레드메인과 펠리시티 존스

에디 레드메인은 홀씨처럼 가녀린 몸과 섬세한 몸짓, 말랑거릴 것 같은 얼굴 근육이 매력적인 배우다. 그는 스티븐 호킹의 전기 영화인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역을 맡았다. 다른 배역도 훌륭히 해냈던 그이지만 이 영화에선 특유의 생김새와 신들린 연기력이 만나 캐릭터와 완전히 하나가 된 모습을 선보였다. 스티븐 호킹의 작은 습관까지 완벽하게 표현한 그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새삼 그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는 스티븐 호킹이 겪었을 고통과 감정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호킹에 대한 논문은 물론 다큐멘터리, 동영상 등을 수집하고 연구했으며 실제 루게릭 환자와 전문의의 자문을 구했다. 실제로 호킹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내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

감독 제임스 마쉬

출연 펠리시티 존스, 에디 레드메인, 에밀리 왓슨, 데이빗 듈리스, 해리 로이드, 찰리 콕스

개봉 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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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폴>
브루노 간츠 → 아돌프 히틀러

(왼쪽부터) 아돌프 히틀러, 브루노 간츠

영화 <다운폴>은 독재자 히틀러의 몰락을 그린 영화로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나치의 모습을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담았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전 10일 동안의 행적을 그린 <다운폴>은 사실적인 묘사로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아돌프 히틀러 역을 맡은 브루노 간츠의 연기 역시 이에 한 몫 했다. 

브루노 간츠는 히틀러의 일상적인 모습과 광기, 쇠약해진 말년까지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해냈다. 그는 히틀러가 되기 위해 핀란드 정보 요원들이 몰래 녹음한 히틀러의 목소리를 참고했다. 선전용 말투가 아닌 일상적이고 편안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브루노 간츠는 히틀러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히틀러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스위스 병원에서 파킨슨 환자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히틀러가 생전에 파킨슨 병을 확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파킨슨 병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외에도 그는 히틀러가 살던 지역에서 온 젊은 배우에게 부탁해 특유의 오스트리아 억양을 연습하는 등 히틀러의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했다. 

다운폴

감독 올리버 히르비겔

출연 브루노 강쯔,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코리나 하르포히, 울리히 마트데스, 율리안느 콜러, 헤이노 페르치, 크리스찬 버켈

개봉 20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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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다니엘 데이 루이스 → 에이브라함 링컨

(왼쪽부터) 에이브라함 링컨, 다니엘 데이 루이스

국적을 초월해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준 배우가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영화 <링컨>에서 에이브라함 링컨을 연기했는데 에이브라함 링컨은 미국인이지만 다니엘은 영국 아일랜드 태생이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미국 대통령을 외국인이 연기한 셈이다. 그러나 마치 사진을 뚫고 나온 듯 한 비주얼과 연기력으로 제85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제 70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흑백으로 보니 더욱 헷갈린다.

다니엘은 사실 처음에 부담감으로 인해 역할을 거절했었다. 그러나 스필버그 감독은 다니엘이 아니면 <링컨>을 제작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뒤였다. 그는 열심히 다니엘을 설득했고 결국 성공했다. 다니엘은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캐스팅 된 후 링컨에 관한 책 100여 권을 읽었다. 그는 외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링컨의 심경 역시 포착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장면에서 다니엘의 연기는 빛이 났지만 그 중 베스트로 꼽는 것은 역시 노예제도를 두고 한 링컨과 의원들의 설전이다. 그는 리더의 강단 있는 모습과 고뇌하는 모습을 동시에 표현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에 그는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을 기록했다.

링컨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조셉 고든 레빗, 토미 리 존스, 샐리 필드

개봉 20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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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
크리스찬 베일, 케이트 블란쳇,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히스 레저, 리차드 기어 → 밥 딜런

(왼쪽 위에서부터)크리스찬 베일, 케이트 블란쳇,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히스 레저, 리차드 기어

여섯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한 인물을 표현한 경우도 있다. <아임 낫 데어>에서는 크리스찬 베일, 케이트 블란쳇,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히스 레저, 리차드 기어가 밥 딜런 한 명을 연기했다. 각자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표현하고자 했던 건 밥 딜런의 생애였다. 각자 밥 딜런의 생애 일부분을 표현하며 그의 생애를 완성했다. 마치 퍼즐 조각들이 모여 밥 딜런이라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 같은 영화다. 

(왼쪽부터) 밥 딜런, 케이트 블란쳇

여섯 명의 배우들 중에서 밥 딜런과 가장 유사했던 배우는 여성인 케이트 블란쳇이다. 감독 토드 헤인즈는 ‘처음부터 주드 역에는 여배우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며 1966년 당시 깡마른 밥 딜런의 기묘한 느낌을 표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성별을 뛰어 넘은 그의 연기력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케이트 블란쳇 특유의 중성적인 외모와 목소리 역시 밥 딜런에 다가가는 데 한 몫 했다. 

여담이지만 리차드 기어의 사진은 패딩턴과 닮은 것 같다
아임 낫 데어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케이트 블란쳇, 벤 위쇼,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마커스 칼 프랭클린, 히스 레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개봉 20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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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스티브 잡스>
애쉬튼 커쳐, 마이클 패스벤더 → 스티브 잡스

(왼쪽부터) 스티브 잡스, 애쉬튼 커쳐

사실 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를 따라 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까만 폴라넥, 청바지,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 동그란 안경만 써도 스티브 잡스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잡스룩이라는 말도 나올 만큼 잡스의 스타일은 많은 이들이 따라하고 있다. 그러나 애쉬튼 커쳐의 스티브 잡스는 그 퀄리티가 다르다. 영화 <잡스>에서 그는 스티브 잡스를 맡아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줬다. 그는 잡스를 연기하기 위해 잡스의 과일로만 이루어진 식단을 따랐다. 덕분에 그는 촬영하기 며칠 전, 췌장염으로 입원했다.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는 제34회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왼쪽부터) 스티브 잡스, 마이클 패스벤더

이후 스티브 잡스에 관한 전기영화 <스티브 잡스>에서 마이클 패스벤더가 스티브 잡스를 맡았다. 처음 내정된 배우는 크리스찬 베일이었으나 하차하고 패스벤더가 이어 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크리스찬 베일이 스티브 잡스 연기를 하기에 완벽하다. 왜 그는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애쉬튼 커쳐보다는 아쉬운 싱크로율이지만 뛰어난 연기를 선보여 제88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제73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이로써 그는 실존인물을 표현함에 있어서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잡스

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

출연 애쉬튼 커쳐, 조시 게드, 더모트 멀로니, 매튜 모딘

개봉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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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감독 대니 보일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케이트 윈슬렛, 세스 로건

개봉 201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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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찰리 채플린

(왼쪽부터) 찰리 채플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지금은 아이언맨 그 자체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지는 영화 <채플린>에서 찰리 채플린 역을 맡았다. 그는 당시 20대 중반이었지만 찰리 채플린의 일대기를 모두 소화해냈다. 찰리 채플린의 딸 제랄딘 채플린은 분장을 한 그의 모습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너무도 똑같아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회상했다. ‘콧수염이랑 화장만 하면 다 비슷해 보이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로버트는 찰리 채플린 그 자체였다. 그는 왼손잡이였던 찰리를 따라 하기 위해 바이올린과 테니스를 왼손으로 치는 법을 배웠으며 자세를 봐줄 개인 코치까지 따로 있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는 제65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제50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으며 제46회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제13회 런던 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채플린

감독 리차드 아텐보로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개봉 199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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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제이미 폭스 → 레이 찰스

(왼쪽부터) 레이 찰스, 제이미 폭스

배우이자 가수, 코미디언인 제이미 폭스는 영화 <레이>에서 주연을 맡아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소울 음악의 대부인 레이 찰스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는데, 이는 그가 단지 흑인이고 선글라스를 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쳐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영화 속 연주신을 모두 직접 연주할 수 있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인 레이를 표현하기 위해 눈을 멀게 하는 특수 장치를 하루에 최대 14시간 동안 꼈으며 점자 수업에 참여했다. 이 영화로 그는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제62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음악적 재능은 물론 배우로서의 자질도 입증했다.  

레이

감독 테일러 핵포드

출연 제이미 폭스

개봉 200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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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라미 말렉 → 프레디 머큐리

(왼쪽부터) 프레디 머큐리, 라미 말렉

10월 31일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설적인 밴드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다.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라미 말렉의 연기는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화제가 됐다. 그는 콧수염과 튀어나온 입, 압도적인 에너지와 퍼포먼스로 프레디 머큐리를 스크린에 다시 불러왔다. 그는 프레디 머큐리가 되기 위해 그만의 제스처와 움직임, 그의 행동을 연구했다. 

1985년 퀸의 라이브 에이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 한 장면

라미 말렉이 열정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터져 나온다. 1985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퀸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여전히 전설로 남아 있다. 수많은 관중을 휘어잡으며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그 때 그 공간을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재연했다. 그 중심에 선 라미 말렉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프레디 머큐리가 다시 강림한 것 같은 그의 에너지는 영화관을 순식간에 공연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순간만큼은 스크린이 아닌, 공연장 위에 있는 프레디 머큐리였다. 

보헤미안 랩소디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라미 말렉, 조셉 마젤로, 마이크 마이어스, 루시 보인턴

개봉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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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명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