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일 개봉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개봉한 이 영화는 그동안 영화계에서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 및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그려 호평을 받고 있다. 3.1 운동, 독립운동가라는 무게감을 짊어지고 이 영화에 출연한 여성 배우 3인방을 소개한다


김새벽

김향화 역

김새벽(가운데)

그 이름은 참 유별난데, 영화 속 그의 얼굴은 참 다양하다. “작품마다 느낌이 정말 달라서 <그 후> 촬영 중간에야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그 새벽이 이 새벽이라는 걸 알았다 권해효의 언급처럼, 김새벽은 때로는 차분하게 분노를 억누르는 얼굴이 되기도, 학생에게 동기 부여에만 힘 쏟는 엉뚱한 얼굴이 되기도 한다.
 

<사려깊은 밤>(왼쪽), <한여름의 판타지아>

김새벽을 떠올렸을 때 멜로’, ‘연애’, ‘사랑등의 단어를 떠올린다면, 단편 <사려깊은>이나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그를 처음 봤을 가능성이 높다. “넌 통금 시간도 없냐 타박하는 남자에게 어긴 건데?”라며 씩 웃어 보이는 <사려깊은>의 여자나, 12역을 능숙하게 연기하면서도 특유의 매력을 스크린 곳곳에 흩뿌리는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혜정은 김새벽이란 이름을 관객에게 새기기 충분했다.
 

<초행>
<줄탁동시>

하지만 그를 수줍은 미소로 기억하지 않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줄탁동시>,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초행>을 떠올린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조선족 여성으로 출연해 진짜 조선족이냐는 오해를 받을 만큼 빼어난 존재감을 보여준 데뷔작 <줄탁동시>를 시작으로,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에선 편의점 진상 손님들을 상대하는 지친 20대의, <초행>에선 7년 연애 상대와 결혼이란 현실적인 전환점에 부딪힌 청년세대의 얼굴을 됐었으니까.
 

<걷기왕>
<누에치던 방>

그것뿐인가. 심은경과 호흡을 맞춘 <걷기왕>에선 학생의 사소한 점을 대단한 것으로 포장해주는 동기부여사선생님으로 엉뚱함을, <누에치던>에선 여고생과 김유영 역으로 사라져버린 시간과 추억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안 가본 곳을 가보겠다며 동분서주하는 <얼굴들> 혜진이나 홀로 떠돌듯 유럽을 다니는 <국경의 왕> 유진도 모두 김새벽이란 이름이 그려졌다단 한 번도 연기를 배우지 않고 무대에 서는 것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김새벽은 이렇게 다채롭다.

김새벽(가운데)

<항거>는 그가 실존 인물을 맡은 첫 영화다. 실존 인물이지만, 기록은 적고 상상의 여지는 많았다. 몇 줄 되지 않는 기록을 붙잡고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되짚어 김향화 선생을 찾아냈다. “만세, 누가 시켜서 했습니까?”라고 묻는 그만의, 김새벽만의 배려심 많고 동시에 단호한 김향화는 그렇게 태어났다. <항거>가 지나가면, 김새벽은 <벌새>로 돌아올 것이다. 상처 입은 청소년 은희(박지후) 처음으로 이해해줄 김새벽의 영지선생님은 어떨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예은

권애라 역

김예은

김예은은 낯설 수 있다. 그러나 <항거> 속 그의 연기는 안정적이고 무게감 있다. 그럴 만도 하다, 2013년부터 19편의 단편과 6편의 독립영화로 다져진 베테랑 배우니까. 단편 대부분은 영화제 상영해야만 항목이 추가된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영화제 단골 배우수준이다. <분장> 남연우 감독, <파수꾼> 윤성현 감독도 단편 영화에서 김예은과 함께 했었다. 그 외에도 많은 감독들의 캐스팅이, 김예은의 연기가 얼만큼 믿을 만한지 알려준다.  

<은하비디오>
<양치기들>

김예은이 단연 도드라졌던 건 2015. 저예산 영화 <퇴마: 무녀굴> 젊은 돌순어멍 역과 <양치기들> 미진 역으로 장편 영화에 얼굴을 비췄고, 단편영화 <은하비디오> 은하 역으로 제5회 충무로단편영화제 청년, 대학생 부문-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거기에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된 <겨울꿈>, 인디포럼에서 상영된 <연애영화>까지, 배우로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다.  

<소공녀>
<너와 극장에서>

이후 그는 <소공녀> 재경,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대리손님, <너와 극장에서> 에피소드 중 극장 쪽으로선미 등 조금씩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한편으론 여전히 단편 영화 <야간근무>,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 <갈 수 없는 나라> 등으로 영화제에도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예은(맨 앞쪽)

그렇게 수많은 역할을 소화한 김예은에게도 권애라 선생은 어려운 역할이었다. “개성 지역의 첫 만세시위를 이끈 인물”, “유관순 열사와는 이화학당 선후배 사이”. 이외의 정보는 전무했다. 김예은은 시나리오에서 정답을 찾았다. 유독 유관순과 대화가 많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그를 아끼는, 다소 독립적인 인물로 설정했다. 단식으로 핼쑥해진 얼굴로 “기도 삼아 했다 태연한 말투, 흔들리는 후배를 다독이는 나직한 목소리. 그렇게 김예은의 권애라는 8호실 인물들이 아우러지는 순간에도 듬직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정하담

이옥이 역

정하담(가운데)

그의 얼굴은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앙다문 입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듯하지만, 동그란 눈망울은 언제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연약해 보인다. 정하담이 그리 길지 않은 연기생활에도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건 다른 배우와는 다른, 강건함과 유약함을 동시에 표출하는 배우였기 때문이다.

<들꽃>

그의 첫 작품은 <들꽃>. 한겨울에 집도 없이 떠도는 세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배우 모두 각자의 이름(수향, 은수, 하담)으로 출연한 이 작품에서 정하담은 박석영 감독과 차기작을 약속한다. 그렇게 3년간 독립영화계가 주목한 꽃 삼부작이 시작된다. <들꽃>에서 이어진 <스틸 플라워>는 정하담의 단독 주연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정하담이란 배우가 하담이란 인물을 연기하지만, 연관성은 느슨해졌다. 대신 이 벅찬 세상에서 홀로 서는 소녀의 이미지를 보다 확실하게 내세웠다. 하담이란 소녀를 통해 이 세상에 찢어질 듯 팽팽해진 인간의 피로와 비루한 삶을 형상화했다. 정하담은 <스틸 플라워>41 서울독립영화제, 제4회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과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한다.

<스틸 플라워>

꽃 삼부작의 마지막 영화 <재꽃> 하담이 캐리어를 끌고 시골에 나타난 해별(장해금) 함께 나온다. 다른 영화의 자신처럼 캐리어를 덜덜 끌고 다니는 해별을, 하담은 친구처럼 여기고 동생처럼 아껴준다. 세상 풍파를 몸으로 맞아야 했던 이전의 하담과 <재꽃> 하담은 다른 위치에 서있다. 배우 정하담도 그간의 시간을 응축한 듯 시시각각 다른 감정선을 이질감 없이 끄집어내고, 폭발시킨다. 박석영 감독과 정하담 배우의 꽃 삼부작피날레는 아름답게 막을 내렸다.

<재꽃>
정하담(오른쪽)

<항거><재꽃> 이후 정하담의 첫 주연작이다. 줄곧 함께 한 감독과의 현장이 아닌데다, 주연 4인방 중 유일하게 실존 인물이 아닌 인물을 연기했다. 8호실의 막내 이옥이는 정하담이 서대문형무소에 걸린 수인들의 수많은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며 골라낸 인물이다. 극중 대사의 만주라는 단어를, 다방 종업원이란 직업을 단서로 인물을 조형해나갔다. 그렇게 평안도에서 건너온 독립운동가 이옥이, 순박한 모습 뒤에 마음에 멍에를 짊어진 여성이 정하담의 몸을 빌려 태어났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