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시시한 거짓말과 장난에도 마음이 들뜨는 4월의 첫날. 괜스레 마음이 허하다면 아마 당신이 장국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이 거짓말처럼 모두의 곁을 떠난 지도 16년이 흘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선, 여전히 장국영은 장국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가 빛났던 영화는 많으나 모두 소개할 순 없기에 딱 5편, 딱 다섯 장면만 골라봤다. 설령 본인의 최애 영화가 없더라도 노여워 말고 댓글로 함께 나눠주길 바란다.

※극중 인물 이름은 네이버 영화 DB를 기준으로 한다.


<영웅본색> 시리즈
송자걸 역

보통 <영웅본색> 삼부작이라고 하지만, 대다수의 팬은 <영웅본색>과 <영웅본색 2>만 ‘진짜’라고 여긴다. 감독이 바뀌고 내용이 달라진 것은 둘째치고, 이 두 편만이 송자호-송자걸 형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장국영은 <영웅본색>에서 범죄조직원 송자호(적룡)을 형으로 둔 경찰 송자걸 역으로 출연한다. 뿐만 아니라 직접 부른 테마곡 ‘당년정’과 ‘분향미래일자’이 대성공을 거둬 가수로서의 입지도 다시 확인했다.

<영웅본색> 시리즈의 장국영 명장면이라면, 누구라도 <영웅본색 2>의 ‘공중전화’ 장면을 뽑을 것이다. 하지만 1편의 성공이 없었다면, 속편이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영웅본색>의 한 장면을 뽑고 싶다. 자걸은 형 자호의 범죄 이력 때문에 승진에 실패하자 그를 찾아간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형에게 “그렇게 부르지 마! 형사님이라고 불러!”라고 소리치곤 ‘물건’을 언제 받느냐고 몰아세운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후 분노의 거울 깨기를 시전하며 스스로를 책망한다. 당시 여리여리한 미소년 이미지의 장국영이 다혈질적인 인물까지 소화하는 연기력의 소유자임을 보여준 장면이라 명장면으로 소개하기에 손색이 없다. 

영웅본색

감독 오우삼

출연 적룡, 장국영, 주윤발

개봉 1987.05.23. / 2016.02.17.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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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
아비 역

“오늘 밤 꿈에 날 보게 될 거예요” 장국영은 아비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장국영이 곧 아비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팬들이 늘어갔다. 아비는 가는 사람을 잡지 않는다. 그의 결핍은 그를 매력적이게 하지만 상대를 외롭게 한다. 양어머니가 친모의 행적을 알면서도 숨기고 있었던 걸 알자 그를 미워하면서도, 끝까지 아낀다. 그러다 홀연히 떠난다.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 홀연히 떠난, 결코 뒤돌아보지 않은 아비에게서 장국영을 지울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단연 명장면이라면, 초반부에 등장하는 ‘1분’ 장면이 아닐까. 아비는 수리진(장만옥)에게 “그냥 친해지고 싶다”면서 자신의 시계를 보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1분. 둘이서 가만히 시계를 들여다본 그 1분을 “1960년 4월 16일. 당신 덕분에 난 항상 이 순간을 기억하겠군요. 우린 이제 친구예요. 이건 당신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이제 지나간 과거니까.”라고 설명한다. 1분은 짧지만, 수리진은 물론이고 영화를 본 모든 관객들에게 그 1분은 영원히 남았다.

사실 기자의 <아비정전> 진심 최애 장면은 이것.
아비정전

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개봉 1990.12.22. / 2017.03.30.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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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
영채신 역

<영웅본색>에서 나쁜 남자 장국영이 보였다면, <천녀유혼>에선 로맨틱한 장국영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연기한 영채신은 한밤중에 오래된 절에서 만난 귀신 섭소천(왕조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남자를 유혹해 살해하는 요괴 섭소천의 마음마저 흔드는 영채신의 매력은 장국영의 순수한 표정을 통해 관객들까지 사로잡기 일쑤였다. 특히 섭소천 역의 왕조현이나 영채신 역의 장국영이나 ‘어여쁜 미모’를 자랑하는 게 이 영화의 최고 재미.

<천녀유혼>은 안 봤어도, 이 명장면은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소천을 못 잊고 다시 난약사에 찾은 영채신. 소천의 불안한 마음처럼, 소천이 할머니라 부르는 나무귀신과 소천의 동생 소청이 들이닥친다. 소천의 임시응변으로 욕조에 숨게 된 채신. 숨을 고르려는 찰나, 시녀들이 욕조로 다가온다. 소천은 목욕을 하려는 척 욕조로 몸을 기울이며 입맞춤으로 채신에게 숨을 불어넣어 준다. 장국영만의 명장면은 아니지만, 장국영의 깨알 같은 표정 연기는 장면에 유쾌함을 더한다.

천녀유혼

감독 정소동

출연 장국영, 왕조현

개봉 1987.12.25. / 2019.04.04.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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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두지

그의 유약한 외형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 열어둔 성 정체성 때문일까. 장국영은 동성연애자 역할도 거침없이 소화했다. 대표작은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와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 앞서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을 소개했으니 여기선 <패왕별희>를 소개하겠다. 장국영이 맡은 두지는 어릴 적부터 경극을 배워 경극 ‘패왕별희’ 우희 역을 연기하게 된다. 두지는 경극학교 동문이자 패왕을 연기하는 시투(장풍의)에게 사랑을 느끼는데, 정작 시투는 주샨(공리)과 사랑에 빠진다. 장국영은 1925년부터 1977년까지의 중국 근현대사 속에서 내성적이고 쉽게 마음을 접지 못하는 두지 역을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패왕별희>에는 아름다운 경극 장면도 많지만, 배우 장국영이 가진 얼굴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두지 대신 쓰야가 우희 역을 하려 하자, 시투는 무대를 포기할 것처럼 장신구를 벗는다. 하지만 이내 극이 시작되자 무대에 서야 하는지 스스로 혼란을 느낀다. 주샨조차 망설이는 이때, 두지는 시투에게 장신구를 씌워주고 분장실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주샨이 그에게 다가오자 그는 “고마워요”라고 말한 후 분장실을 떠난다. 이 장면에서 장국영은 대사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눈빛과, 두터운 분장 뒤 미묘하게 바뀌는 표정으로 두지의 심적 변화를 드러낸다. “한평생이어야 해” 같은 명대사가 나오는 장면도 좋지만, 이런 장면이야말로 장국영만이 해낼 수 있는 연기가 아닐까. 

패왕별희

감독 천카이거

출연 장국영, 공리, 장풍의

개봉 199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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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가성>
송단평

장국영은 배우이자 가수였다. 발표한 앨범만 스무 장이 넘을 만큼 열성적이었고, 실력도 출중했다. <야반가성>은 그가 가진 가수로서의 매력도 담고 있는 영화다. ‘오페라의 유령’이 모티브인 <야반가성>에서 장국영은 천재 오페라 가수 송단평 역을 맡았다. 송단평은 대지주의 딸 두운언(오천련)과 사랑에 빠지지만 두 가문의 반대에 부딪힌다. 둘은 사랑을 위해 도피를 선택하지만, 들통나고, 단평은 두 가문의 사주로 화재에 휩싸인다. 운언은 단평의 죽음에 미치게 되지만, 단평은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채 살아남아 복수를 갈망한다.

야반가성

<야반가성>의 명장면은 단연 송단평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다. 극중 오페라 가수를 맡은 만큼 장국영은 이 영화에서 연기와 노래를 한껏 뽐낼 수 있었다. 떠나보내는 연인에게 부르는 테마곡 ‘야반가성’은 장국영이 직접 작곡했고, 당연히 직접 노래했다. ‘야반가성’하면 영화보다 노래가 더 유명할 정도. 첨부한 영상의 ‘일배자실거료니’ 역시 감미로운 음률 위에 얹어진 장국영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일품이다.

야반가성

감독 우인태

출연 장국영, 오천련

개봉 1996.01.27. / 2009.03.27.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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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