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배우'로 인식되는 스타들이 있다. 파워풀한 액션이든 섬세한 연기력이든, 배우로서 인장을 확실히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샅샅이 뒤져, 대머리가 아닌 역할을 맡은 영화들을 쏙쏙 집어냈다. 물론, 폄하의 의도는 일절 없다.

브루스 윌리스

블루문 특급

브루스 윌리스가 처음부터 액션스타였던 건 아니다. 데뷔 후 5년간 무명이었던 그는 85년 ABC 드라마 <블루문 특급>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모델과 사립탐정이 탐정사무소를 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코미디, 로맨스, 미스터리, 판타지가 어우러지는 장르와 만나는 작품이다. 껄렁하고 까칠한 성격에 입만 산 탐정 역을 매끄럽게 소화하고, 상대배우 시빌 셰퍼드와의 케미까지 선보이며, 세계적인 배우가 됐다. 88년 여름 개봉한 <다이하드>의 큰 성공 이후, 영화 작업에만 매진했다.

J.K. 시몬스

스파이더맨

J.K. 시몬스는 출세작 <오즈> 시절은 물론, 25년 전 신인 때부터 대머리였다. 2002년 시작한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풍성한 시몬스를 만날 수 있는 첫 영화다.  바짝 서 있는 깍두기 머리마냥 늘 격양돼 있는 코믹스 속 신문사 편집장의 외모를 똑같이 구현하기 위한 헤어스타일이었을 터. 메간 폭스 주연의 <죽여줘! 제니퍼>에서는 곱슬곱슬한 장발을 시도했다.

빈 디젤

파인드 미 길티

데뷔 때부터 빈 디젤은 바짝 자른 헤어스타일로 액션스타의 풍모를 고집했다. 액션 <분노의 질주>와 <XXX> 시리즈와 코미디 <패시파이어>까지 성공으로 이끈 그는, 법정드라마의 대가 시드니 루멧의 2005년 작 <파인드 미 길티>에 출연했다. 수감된 상태로 자신을 변호해 무죄를 받아낸 마피아 두목 재키 디놀시오는 자신을 연기할 배우로 디젤을 지목했고, 그는 14kg를 찌우고 촬영 때마다 2시간씩 분장을 받으며 연기에 임했다.

드웨인 존슨

허큘리스

레슬러 '더 록' 시절을 비롯, 배우로 데뷔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드웨인 존슨은 삭발 스타일을 유지했다. 머리에 털끝 하나 남기지 않기 시작한 건 2011년 <분노의 질주> 5편으로 시리즈에 합류하면서부터였고, 배우로서의 탄탄대로도 그때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힘센 남자'를 연기한 <허큘리스>에선 드물게 장발 스타일로 활약했고, 흥행 성적도 꽤나 준수했다.

제이슨 스타뎀

리볼버

다이빙 선수/모델 출신의 제이슨 스타뎀은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에 캐스팅 돼 배우로 데뷔 했다. <트랜스포터>와 <이탈리안 잡>이 연이어 성공할 때에도 그의 헤어스타일은 한결같았다. 가이 리치와의 세 번째 영화 <리볼버>에선 변신을 꾀했다. 도박과 폭력 세계에 묶여버린 주인공 역을 맡은 그는 긴 장발을 하고, 액션보다는 감정 연기에 몰두했다. 트레이드마크 둘을 포기한 야심찬 도전이었지만, 산만하리만큼 복잡한 이야기 탓에 흥행/비평적으로 실패했다.

에드 해리스

아폴로 13

에드 해리스 역시 데뷔 때부터 줄곧 적은 머리숱을 봐온 배우다. 연출까지 맡은, 화가 잭슨 폴록의 삶을 영화로 옮긴 <폴록> 속 걸출한 연기는 그와 비슷한 외모에서 비롯된 바도 크다. 머리에 변화를 꾀한 작품이 해당 배우의 대표작인 경우가 드물지만, 실존인물 진 크랜츠의 크루컷의 외모를 그대로 재현한 <아폴로 13>은 해리스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패트릭 스튜어트

남과 북

<스타 트렉>의 피카드 선장과 <엑스맨>의 프로페서 엑스. 영국의 대배우 패트릭 스튜어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두 캐릭터다. 터럭 한 올 없는 머리가 마치 지혜의 비결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대머리는 두 수장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에 지대하게 작용했다. 패트릭 경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싶다면, 시간을 조금 많이 돌려 TV에서 활동하던 70년대의 흔적을 찾아보자.

마크 스트롱

올리버 트위스트

열일 하기론 누구 부럽지 않은 마크 스트롱.  참여한 작품들 중 특히 시대극이 많았던 까닭에 가발을 쓰고 캐릭터를 소화했던 경우가 많다. 찰스 디킨스의 명작 소설을 영화화 한 <올리버 트위스트> 속 토비 역이 특히 인상적이다. 독특한 머리 모양도 모양이지만, 그가 주로 보여준 과묵한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트롱의 근사한 목소리와 발음은 여전했다.

스탠리 투치

헝거 게임

마크 스트롱과 스탠리 투치의 닮은 꼴은 외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투치 역시 대머리의 시그니처를 유지하면서도 꽤나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보여줬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품일수록 그 경향이 두드러는 편. <퍼스트 어벤져>의 슈퍼솔져 세럼 개발자와 <스포트라이트>의 변호사가 희끗희끗하되 평범한 머리였다면, <헝거게임> 시리즈의 시저 플리커맨은 쇼 MC다운 기괴한 스타일이 도드라졌다.

우디 해럴슨

헝거 게임

<헝거 게임>에 가발을 쓰고 등장하는 배우가 또 하나 있다. 헤이미치 역의 우디 해럴슨이다. 해럴슨의 필모그래피는 가발 썼거나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 대단한 배우라 어떤 변신을 하든 출중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좀비랜드>, <트루 디텍티브>, <혹성탈출: 종의 전쟁>, <쓰리 빌보드> 등 제 머리를 그대로 보여줬을 때의 연기가 특히 좋았다.

새뮤얼 L. 잭슨

펄프 픽션

새뮤얼 L. 잭슨이 영화에서 선보인 헤어스타일은 필모그래피를 이룬 장르의 면면만큼이나 다양하다. 그가 보여준 머리만 모아도 기획 하나가 너끈히 채워질 것이다. (어디 한번 해볼까요...?) 하나만 콕 집어본다면 역시 타란티노와의 첫 작품 <펄프 픽션>이다. 피투성이가 된 수트를 갈아입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부부 강도단을 보다 말고 성경 구절을 읊는 줄스와 짧은 아프로 헤어의 조합은 영화사에 남을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다.

벤 킹슬리

아이언맨 3

TV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은 벤 킹슬리는 실질적인 첫 영화 <간디>에서 간디를 연기해 그 즈음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캐릭터부터 대머리였던 셈이다. 명연을 보여준 <쉰들러 리스트>와 <섹시 비스트> 역시, 캐릭터의 온도차와는 별개로, 넓은 이마의 벤 킹슬리의 얼굴이 짙게 새겨졌다. 떠들썩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 3>의 만다린은 여러모로 킹슬리의 지난 역할들과 달랐다. 원작 코믹스의 만다린과도 별로 비슷하지 않은 오리엔탈리즘이 물씬한 머리 하며, 캐릭터 자체가 주는 매력이 너무나 약했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