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개봉한 <퍼스트 리폼드>엔 만삭 그대로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했다. 극도의 조심을 요하는 임신과 연기라는 고된 작업은 서로 동떨어져 보이지만, 많은 여성 배우들이 아이를 가진 채 명연을 선보인 경우가 은근히 많다. 어머니와 배우의 역할을 모두 소화한 이들의 흔적을 모았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퍼스트 리폼드>

아이를 품은 여성은 <퍼스트 리폼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이렇게 망가진 지구에 생명을 태어나게 할 수 없다며 아이를 원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고뇌하는 메리는, 마찬가지로 세상에 환멸을 느끼는 톨러 목사(에단 호크)의 황량한 마음을 거세게 뒤흔든다. 사이드프리드의 현실적인 육체가 영화가 던지는 진중한 질문에 힘을 싣는다.

줄리아 로버츠

<오션스 트웰브>

초호화 캐스팅에 빛나는 <오션스 일레븐>의 홍일점이었던 줄리아 로버츠. 그녀는 속편 <오션스 트웰브>(2004)를 촬영하기 직전 쌍둥이를 가졌다. 임신우울증으로 인한 난항도 겪고,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로버츠의 상황에 맞게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명장면이 탄생했다.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테스(줄리아 로버츠)가 ‘쌍둥이를 임신한 줄리아 로버츠’를 연기하는 대목이다.

리즈 위더스푼

<베니티 페어>

리즈 위더스푼은 시대극 <베니티 페어>(2004)를 촬영하던 당시 둘째 디콘을 품고 있었다. 19세기 유럽에서 유행이었던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는 그 시대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했을 뿐만 아니라, 위더스푼의 몸매도 영화에 어색하지 않게 가려주는 역할도 해냈다.

사라 제시카 파커

<섹스 앤 더 시티> 시즌 5

사라 제시카 파커는 <섹스 앤 더 시티> 시즌 5 촬영 첫 날에 임신 소식을 알게 됐다. 의상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아이콘인 캐리의 몸을 적절히 가려줄 스타일을 다시 물색해야 했다. 본래 시즌 당 18개 에피소드를 이뤄져 있었지만, 파커의 컨디션에 맞춰 다섯 번째 시즌은 8개 에피소드로 마쳐야 했다.

나오미 왓츠

<이스턴 프라미스>

영화 시작 3분 만에 사람 목이 면도날로 그어진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이스턴 프라미스>(2008). 나오미 왓츠는 이 무시무시한 영화를 촬영하던 2주 째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어린 임산부 소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부터 만만치 않았지만, 왓츠는 조산원 역할을 위해 병원에 머물며 산모들의 분만 과정을 지켜보며 캐릭터를 구축해갔다.

질리안 앤더슨

<X 파일> 시즌 2

<X 파일> 두 번째 시즌(1994)을 촬영할 당시 질리안 앤더슨은 이미 만삭에 가까웠다. 그녀의 몸매를 가리기 위해 코트를 입히고, 카메라 앵글도 오브제에 가리도록 교묘하게 잡아보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출산일이 가까워져 올 즈음, 스컬리가 외계인에게 납치 당했다는 설정으로 <X 파일>은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었다.

문소리

<다른나라에서>

“내 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컸구나 싶었다.” 문소리는 출산하기 불과 3주 전 홍상수 감독의 <다른나라에서>에 출연했다. 남편 종수(권해효)와 함께 전북 부안으로 여행 온 금희 역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홍상수 영화답게, 아이를 가진 몸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임산부 캐릭터를 톡톡히 소화해, 출산을 임박한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한테 한눈이나 파는 남자의 한심한 모습이 더 제대로 보였다.

헬레나 본햄 카터

<스위니 토드>

임신한 배우의 남편이 감독인 경우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팀 버튼의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에 출연하기로 계약한 후에 아이를 가졌다. 팀 버튼은 본햄 카터의 배가 불어오는 것의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그녀가 나오는 신을 최대한 먼저 촬영했고, 몸매를 가려줄 만한 조명을 사용했다.

케이트 윈슬렛

<다이버전트>

<다이버전트> 시리즈의 악역 지니 매튜스를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은 촬영 당시 임신 5개월이었다. 촬영을 시작한 지 4주도 채 지나지 않아 배가 눈에 띄게 불러왔고, 이를 가리기 위해 파일 폴더나 아이패드가 적극 활용됐다. 한편 주인공 트리스(셰일린 우들리)와의 격투 신은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스칼렛 요한슨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스칼렛 요한슨의 임신 소식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4) 촬영 전에 전해졌다. 그로 인한 별도의 시나리오 수정은 없었고, 몸에 딱 붙는 수트는 여전했다. 촬영 일정 정도를 조정하고, 가능한 한 실내를 중심으로 촬영하는 걸로 조율된 걸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진행한 촬영에 요한슨이 함께 하지 못했던 것도 이와 관련 있었을 것이다.

할리 베리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에서 스톰의 분량은 유독 적어 보인다. 스톰 역의 할리 베리가 촬영 당시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늘을 날거나 싸우는 신은 어렵다고 판단해 비중을 대거 줄였기 때문이다. 베리가 출연하는 분량을 최대한 먼저 찍긴 했지만, 스톰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갤 가돗

<원더 우먼>

무려 <원더 우먼>을 아이를 가진 채 촬영했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임신 5개월이었던 갤 가돗은 <원더 우먼>의 ‘재촬영’을 진행했다. 의상 디자이너들은 가돗의 복부를 밝은 녹색 천을 가렸고, 후반 작업을 통해 흔적을 완벽히 지웠다.

안젤리나 졸리

<체인질링>

안젤리나 졸리는 한창 <체인질링>을 촬영하던 중에 임신 소식을 알게 됐다. 하지만 졸리는 막바지까지 그 사실을 숨긴 채 촬영에 임했다. 이미 4명의 자식을 둔 졸리는,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해 부패한 경찰과 맞서 싸우다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 실존인물을 연기하면서 또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되길 원하게 됐다고 한다. 촬영 마친 후 몇 달 후 졸리는 쌍둥이 비비엔과 녹스의 엄마가 되었다.

에밀리 블런트

<걸 온 트레인>

아이를 가진 채 괴물에 맞서 가족을 지키는 엄마로 활약한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에밀리 블런트. 그녀는 영화 촬영 중에 슬하의 두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숲속으로>(2014)를 찍을 땐 첫째 헤이즐, <걸 온 트레인>(2016)을 촬영할 땐 바이올렛과 함께였다. <걸 온 트레인> 당시엔 임신 중 감정기복으로 주인공 레이첼의 불안한 심경을 더 잘 구현할 수 있었다고.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