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도리는 방금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관객들은 다르다. 무려 13년이나 지났지만 <니모를 찾아서>의 신스틸러인 이 작고 파랗고 조금은 노란 물고기를 절대 잊지 못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헤엄쳐, 계속 헤엄쳐”라고 흥얼대는 도리의 콧노래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니모를 찾아서>의 감독 앤드류 스탠튼(픽사의 아홉번째로 입사한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새로운 이야기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그러다 이전에 만들었던 작품들을 다시 떠올리며 아이디어를 다듬어보기도 하는데 문득 내가 ‘도리’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리’의 건망증도 그대로였고, 이로 인해 또 ‘도리’가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다면? ‘도리’에게도 분명 가족이 있었을 텐데 그들과도 헤어졌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속에 ‘도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렇게 13년이 지나 스탠튼 감독은 <니모를 찾아서>의 속편 <도리를 찾아서>(7월6일 개봉)를 세상에 내놓게 됐다.
13년 만에 돌아왔다
13년 만이다. 내가 이 얘기 했던가. 도리처럼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나? 13년 만이다. 아, 이 얘기 했구나. 미안. 2003년 개봉한 해양 어드벤처(?)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서 도리는 조연이었다. 도리는 스쿠버다이버에게 잡혀간 니모를 찾아나선 아빠 말린을 옆에서 도왔다. 자신의 ‘특기’인 단기기억상실증으로 관객에게 큰웃음을 주면서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
이번엔 니모와 말린이 픽사가 애용하는 버디무비의 ‘도리’를 다 할 차례다. 도리가 주인공인 <도리를 찾아서>는 스쿠버다이버에게 잡혀간 도리가 아니라 잃어버린 도리의 기억 속 가족을 찾아나서는 얘기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제목을 ‘도리의 가족을 찾아서’로 정하는 게 맞겠다.
니모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1년 후, 니모, 말린, 도리는 함께 지내고 있다. 도리는 가오리 떼의 이동을 보다가 어린 시절 기억이 번쩍 떠올랐다.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놓은 건 아니지만 단편적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 둘 떠올리던 도리는 자신이 살던 곳이 캘리포니아 바다 생물 연구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도리는 당장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물론, 이 여정에는 니모와 말린이 함께 한다. <니모를 찾아서>에서 도리와 말린은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시드니까지 니모를 찾아 간 적이 있다. 이번에는 캘리포니아까지 가야 한다. 태평양을 건너야 하다니. 너무 멀잖아. 걱정하지 말자. 말린에겐 <니모를 찾아서>에서 만났던 151살 먹은 친구 바다거북이 있다. 이들은 태평양의 해류를 다 알고 있는 길잡이다. 절대 막히지 않는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 같은 해류를 타면 태평양쯤이야 (영화 속에서) 2분이면 건널 수 있다. 그렇게 도리와 일행은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도리는 그곳에서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엄마, 아빠 찾아 캘리포니아에 온 도리의 목소리는 엘렌 드제너러스가 연기했다. 픽사는 성우를 캐스팅할 때 할리우드 스타의 이름보다는 그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엘렌은 13년 전 <니모를 찾아서>에서 도리의 목소리 연기하게 됐다. 그런데 엘렌 드제너러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엘렌? <엘렌쇼>?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잭 블랙이 미국에 돌아가서 <무한도전>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은 토크쇼 <엘렌 드제너러스 쇼>의 그 금발 커트머리 진행자 맞다. 엘렌은 <도리를 찾아서>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이날만을 기다렸다. 긴 기다림이었다. 전편의 훌륭한 부분들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감동과 재미는 더해졌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도리가 전보다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엘렌은 다시 도리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소감을 전했다. 도리뿐만 아니다. 니모의 아빠 말린의 목소리를 연기한 앨버트 브룩스도 13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합류했다. 니모의 목소리 연기자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 <니모를 찾아서>에서 니모를 연기한 알렉산더 굴드(1994년생)는 이제 어른이 됐다. 제작진은 12살 헤이든 롤렌스를 니모 목소리에 기용했다.
새로운 친구들
성우는 그대로지만 <도리를 찾아서>에는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도리의 찾아서>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도리, 말린, 니모가 태평양을 건너 도착한 캘리포니아에 있는 해양 생물 연구소에서 일어난다. 도리는 연구소 앞 바다에서 연구원들에게 잡혀 말린과 니모와 헤어져버렸다. 말린과 니모는 ‘도리를 찾아’ 연구소를 헤맨다. 혼자 남은 도리가 가족을 찾는 과정을 도와준 건 연구소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다. 위장술의 대가인 문어 행크, 도리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근시가 심한 고래상어 데스티니, 음파 탐지 능력이 있는 벨루가 고래 베일리가 그들이다. 도리가 연구소에서 만난 세 친구는 전편의 주인공이었던 말린과 니모보다 사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세 캐릭터는 <니모를 찾아서>의 채식주의자 상어 삼형제만큼 아니 더 귀엽고 매력적이다. 특히 행크의 활약이 눈부시다. 행크의 완벽한 변장술 장면만 따로 모아서 러닝타임을 다 채워도 웃음을 멈추기 힘들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서 나오긴 한다.) 물론 근시 때문에 늘 수조의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데스티니와 “우~” 하고 소리를 내면 발동하는 음파 탐지 능력을 이용해 도리를 돕는 베일리 역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다
전편의 조연을 주연으로 바꾼 섬세한 배려에서 시작한 <도리를 찾아서>는 새로운 캐릭터와 재미, 감동을 만들어내면서 일종의 ‘신구조화’를 이뤄냈다. <니모를 찾아서>를 기억하는 오랜 팬이나 전편을 보지 못한 어린 관객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흥행 성적에도 반영됐다. <도리를 찾아서>는 전편의 영광을 뛰어넘었다. “역대 애니메이션 오프닝 1위” “역대 전체 관람가 등급 영화 오프닝 1위”의 수식어가 이를 증명한다. <도리를 찾아서>는 “픽사 스튜디오 박스오피스 누적 100억 달러 돌파”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주토피아>보다 재밌나?
<도리를 찾아서>의 초반 성적으로 미루어 보면 자연스레 비교 대상이 떠오를 지도 모르겠다. <주토피아> 혹은 <겨울왕국>보다 재밌나? 아니면 <도리를 찾아서>와 같은 제작사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보다 재밌나? 섣불리 대답을 하기 힘든 질문이다. 대신 이렇게 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글의 독자가 거의 어른이라는 전제 하에 <도리를 찾아서>는 <주토피아>와 <겨울왕국>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작품이라고. 질문을 살짝 바꿔서 대답했다. “어른이 봐도 재밌나?”라는 질문의 답이다. <도리를 찾아서>는 사실상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던 <인사이드 아웃>의 감성과는 거리가 멀고 어른들을 위한 재미가 깨알 같이 들어 있는 <주토피아>와 아이들과 어른이 동시에 함께 웃을 수 <겨울왕국> 사이쯤 놓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좀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긴 하다.
덧, <도리를 찾아서>의 상영 전에는 픽사의 전통에 따라 삽입된 단편 애니메이션을 먼저 감상할 수 있다. 이번에는 배고픈 도요새 ‘파이퍼’가 엄마의 도움 없이 먹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의 <파이퍼>를 만날 수 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