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를 다룬 영화 <봉오동 전투>가 꾸준한 흥행 곡선을 그리고 있다. 포스터에 적힌 슬로건, “모두의 싸움, 모두의 승리”와 같이 <봉오동 전투>는 함께 봉오동 골짜기에서 사투를 벌였던 인물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을 더 풍성하게 만든 주역들, 주연배우 못지않은 존재감을 선보인 조연 배우들의 이력을 간단히 짚어봤다. 

봉오동 전투

감독 원신연

출연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개봉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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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캐릭터

성유빈 개똥이 역
일본군에게 부모를 잃고 독립군에 자원한 소년. 성유빈이 연기한 개똥이는 부족한 실력으로라도 어떻게든 작전에 참여해 일본에 맞서 싸우려는 강한 의지를 지닌 소년이다.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행동이 먼저인 개똥의 눈엔 늘 일본에 대한 분노가 서려있다. 그랬던 그가 바뀌기 시작한 건 일본군 포로 유키오(다이고 코타로)와 함께 지내면서부터다. 그는 인생의 모든 걸 명백한 흑백논리로 나눌 순 없다는 걸 깨닫는다.

첫 장면과 다른 마지막 장면의 얼굴. 러닝타임 내내 한 뼘 성장한 성유빈의 얼굴을 우리는 익히 많은 작품에서 봐온 바 있다. 성유빈은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얽매인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 <살아남은 아이>로 수많은 신인상을 수상하며 충무로에 눈도장을 찍었다. 알고 보면 데뷔작 <블라인드>를 시작으로 <완득이> <마이웨이> <신과함께-죄와벌> 등에서 수많은 배우의 아역 시절을 연기해왔던 잔뼈 굵은 배우. 들쑥날쑥한 감정을 모두 섬세하게 짚어내 평면적인 캐릭터로 입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연기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앞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성유빈의 차기작은 <입술은 안돼요>(가제). 류승룡, 이유영, 오나라와 함께 출연한다.

<살아남은 아이>

이재인 춘희 역
관객의 몰입도를 배로 높이는 캐릭터, 바로 춘희다. 갑작스러운 일본군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마을 주민 춘희는 독립군과 함께 다니며 소일거리를 돕는 소녀다. 유키오에게 "살아서 네가 본 사실을 그대로 일본에 알리라" 말하던 춘희의 대사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관객에게 뜨거운 울분을 전한다. 이재인의 믿음직한 연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울림이다.

올해로 연기 7년 차를 맞은 이재인 역시 <센스 8> <육룡이 나르샤>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에서 아역을 연기하며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어왔던 배우다. <아이 캔 스피크>에선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옥분(나문희)의 친구, 정심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고 <어른도감>에선 철없는 삼촌을 휘어잡는 어른 아이 경언을 연기하며 들꽃 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을 꼽으라면 <사바하>. 1인 2역으로 출연했고, 성인 배우 못지않은 이재인의 포스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선 직접 머리와 눈썹을 밀고 촬영에 임해 화제에 올랐다. 

<사바하>

최유화 임자현 역
<봉오동 전투>에서 최유화는 독립군 양성 학교 출신의 저격수 임자현을 연기했다. 임자현은 남동순 열사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다. 남동순 열사는 3.1운동에 참여했고, 후에 독립자금을 전달하고 무장투쟁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 역의 모델 역시 남동순 열사다. 

자현을 연기한 최유화는 중학교 3학년 때 모델로 연예계에 입성했고,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러브픽션> <쎄시봉>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여가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비밀은 없다>에서부터. 반전의 키를 쥔 인물 손소라를 연기한 그녀는 이후 이정출의 비서를 연기한 <밀정>, 특별출연으로 함께한 <레슬러> 등 굵직굵직한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차기작 역시 기대되는 배우. 추석 시즌 개봉 예정인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다. 포커판을 휘어잡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 마돈나를 연기한다. 

<타짜: 원 아이드 잭>

양현민 아가리 역
미음에 가까운 음식으로 식사를 마친 독립군. 이튿날 떠날 준비로 동료들이 바쁜 틈을 타 몰래 먹으려 품에서 감자를 꺼내들었으나...! 그를 단번에 들켜버렸던 독립군이 기억나시는지. 감자 한 알을 수십 명의 동료들과 나눠먹어야 했던 캐릭터, 아가리는 배우 양현민이 연기했다. 

이병헌 감독의 작품을 즐겨보는 이들이라면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을 터. <힘내세요, 병헌씨>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스물>에선 주인공들의 아지트인 소소반점의 사장 소중을, <바람바람바람>에선 맹인 안마사 범수를 연기하며 개성 넘치는 모습을 선보였다. 올해 첫 천만 영화 <극한직업>에선 이무배(신하균)의 오른팔, 홍상필을 연기하기도. 이무배의 보디가드, 선희에게 무자비한 다리 폭행을 당했던 캐릭터가 바로 그다. 그 외 <공작> <챔피언> <레슬러> 등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극한직업>

홍상표 재수 역
속사포로 제주 사투리를 쏟아내며 영화 속 상황과 극장의 분위기를 모두 어색한 침묵으로 몰아넣다 빵 터지게 만들던 <봉오동 전투>의 신스틸러. 감칠맛 나는 제주 사투리만으로 제 존재감을 명확히 뽐내던 캐릭터, 재수는 배우 홍상표가 연기했다. 알고 보면 극 중 재수가 언급한 감자의 제주도 방언, ‘지슬’은 알고 보면 <봉오동 전투>의 이스터 에그나 다름없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분장> 등 다수의 단편영화와 독립영화, 연극 무대 위에서 연기력을 다진 홍상표가 충무로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오멸 감독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그는 긴 다리와 빠른 속도를 뽐내며 긴박한 상황에도 웃음을 불어넣던 청년 상표를 연기했다. 그의 제주 사투리가 특출난 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봉오동 전투>는 팽팽한 긴장을 대사 한 마디로 누그러뜨릴 줄 아는 그의 유연함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앞으로 충무로의 굵직굵직한 작품에서 그의 얼굴을 자주 만나볼 수 있을지, 눈여겨봐도 좋을 듯하다. 


일본군 캐릭터

키타무라 카즈키 야스카와 지로 역
호랑이 가죽을 벗겨내는 모습의 첫 등장부터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월강 추격대의 대장, 야스카와 지로는 야만스러움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야스카와 지로를 연기한 키타무라 카즈키는 1996년부터 활동해왔던 일본의 유명 배우다. <킬 빌> <피와 뼈> <좋은 친구들> 등 일본 외 다양한 나라의 작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온 배우. 드라마 <밤비노>와 <시그널-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에 출연해 국내에도 꽤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봉오동 전투>와 180도 다른 그의 반전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은 <고양이 사무라이> 시리즈. 무서운 얼굴을 지녔지만 상냥한 마음씨를 타고난 덕에 사람은 물론 고양이도 죽이지 못하는 사무라이, 큐타로를 연기했다. 사무라이 대신 집사가 되어 고양이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귀여움(!)을 보고 나면 <봉오동 전투> 속 야스카와 지로를 연기한 이와 같은 배우인지 의심하게 될 것. <봉오동 전투> 출연 이후 키타무라 카즈키는 일본의 우익 세력에게 “매국노라 비난받을지도 모를 영화에 출연한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의 소속사는 키타무라 카즈키가 “대본대로 연기하는 것이 배우의 본분이라는 배우로서의 신념을 지니고 있고, 그에 따라 작품 출연 의지를 꺾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양이 사무라이 2>

이케우치 히로유키 쿠사나기 역
극 후반 황해철(유해진)과의 전투 신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 야스카와 지로 밑에서 그의 지령을 받들던 월강 추격대 중위, 쿠사나기는 이케우치 히로유키가 연기했다. 그 역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해온 일본의 유명 배우다.

콜롬비아와 일본의 혈통을 물려받은 그는 이국적인 외모를 앞세워 패션 잡지 모델로 활동하다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드라마 <GTO>에 출연하며 일본의 될성부를 떡잎으로 인정받은 후 <신선조!> <인간의 증명> 등 일본의 굵직한 드라마에 출연해 경력을 쌓았고, 이후 <엽문> <맨헌트> 등 홍콩, 중국 작품에도 출연해 해외 관객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한국 작품은 <봉오동 전투>가 처음.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봉오동 전투> 촬영 당시 사진을 업로드하며 “한국 작품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스태프와 출연진 모두 멋졌다. 고맙다”는 캡션을 남겼다. 

<맨헌트>

박지환 아라요시 시게루 역
이제는 모를 수가 없는 그의 이름과 얼굴. 박지환이 연기한 아라요시 시게루는 텐트폴 영화의 단골손님, 얄밉고 빈틈 많은 악역 캐릭터다. 비열함으로 똘똘 뭉친 데다 무게감도 없는 비호감 끝판왕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독립군에게서 도망치기 바쁜 모습으로 통쾌함을 전하던 캐릭터. 이 균형감은 박지환의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1999년 <노랑머리>에 출연하며 영화판에 입성해 <베를린> <남자가 사랑할 때> <검사외전> <대호> <아수라> 등에 출연하며 오랜 시간 무명 배우로 활동한 박지환은 <범죄도시> 속 장이수를 연기하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 이후 <1987> <성난황소> <마약왕> 등 충무로의 대형 영화엔 모두 얼굴을 비추며 인지도를 쌓았다. 차기작 역시 기대되는 배우. 전도연, 정우성, 윤여정을 비롯해 충무로의 핫한 배우들이 모두 모인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윤계상 주연작 <유체이탈자>(가제)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범죄도시>

다이고 코타로 유키오 역
월강 추격대 대장 앞에서 일본인이야말로 열등한 존재인 것 같다 말하던 유키오는 <봉오동 전투>에 등장한 일본인 캐릭터 중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일본의 미래라고 믿고 싶은 캐릭터, 유키오는 신예 배우 다이고 코타로가 연기했다.

올해로 18살인 다이고 코타로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 연극 무대 위에서 먼저 경력을 다졌다. 자국 작품이 아닌 한국 작품, <봉오동 전투>가 그의 영화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조금 이색적이다. 그의 두 번째 영화는 <너의 이름은.>으로 신드롬적인 인기를 자랑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 다이고 코타로는 날씨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가출 소년, 호다카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