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대형 배우들도 넘기 힘든 해외 영화제 장벽. 이를 신인 시절에, 그것도 데뷔작으로 넘어버린 배우들이 있다. 첫 작품으로 국내의 인정을 받는 건 물론, 해외 영화제에 초청돼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배우들. 감독, 주연 배우의 장편 데뷔작으로 전 세계 25관왕의 기록을 세운 <벌새>의 개봉을 맞아, 데뷔작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봤다.
조승우의 데뷔작은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다.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이몽룡 역에 캐스팅됐다. 더 대단한 사실은 따로 있다. <춘향뎐>은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조승우는 몽룡의 복장을 하고 칸영화제 레드 카펫 포토존에 서서 전 세계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 춘향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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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임권택
출연 이효정, 조승우
개봉 2000.01.29.
이유영의 데뷔작 <봄>은 국내 개봉 전,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으로 먼저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혼자 힘으로 아이 둘을 먹여 살리느라 허드렛일을 전전하던 민경(이유영)이 제 삶을 포기하려는 조각가 준구(박용우)의 모델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봄>은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수상한 제23회 아리조나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각국의 영화제에 초청받아 해외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놀라운 성과는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 데뷔한 이유영이 제14회 밀라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 한국 배우로선 최초의 수상이다.

-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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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근현
출연 박용우, 김서형, 이유영
개봉 2014.11.20.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 그 과정의 시행착오에서 오는 마음의 파동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한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이 작품으로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윤가은 감독과 동행한 이가 있었으니, 역시 데뷔작으로 베를린에 발을 들인 <우리들>의 ‘선’을 연기한 아역 배우 최수인이다. 여느 아이처럼 한없이 맑다가도, 단번에 서운함과 배신감, 두려움으로 얼룩지는 최수인의 얼굴은 선의 복잡한 속내를 선명히 투영해낸다. 성인 배우 못지않은 깊이 있는 연기는 전 세계인을 깜짝 놀래키기 충분했다.

-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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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가은
출연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 강민준
개봉 2016.06.16.
박찬욱 감독이 미리 알아본 충무로 톱배우의 떡잎. 김태리의 장편 데뷔작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세상 물정 다 아는 히데코(김민희)의 마음마저 뒤흔들어놓은 하녀, 숙희를 연기했다. <아가씨>는 제69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박찬욱 감독은 신인 김태리를 캐스팅한 이유로 “주눅 들거나 그러지 않는 면을 높이 샀다”고 밝힌 바 있다. 데뷔작으로 생애 첫 칸 레드 카펫에 선 김태리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후에 인터뷰를 통해 “유럽 자체에 처음 와봤고 칸영화제도 실감 나지 않아 얼떨떨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 센세이션 한 데뷔 이후, ‘김태리’는 뛰어난 신인배우를 지칭하는 하나의 대명사가 됐다.

-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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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개봉 2016.06.01.
‘제2의 김태리’라고 불렸던 배우, 바로 <버닝>의 전종서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예 배우가 8년 만에 공개된 이창동 감독의 신작 속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단 사실이 이 작품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했음은 분명하다. 전종서는 <버닝>에서도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 해미를 완벽히 소화하며 평단에 눈도장을 찍었다. 알고 보면 소속사를 만나고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간 영화가 <버닝>이었다고. <버닝>은 제7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전종서 역시 함께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아 전 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 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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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창동
출연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
개봉 2018.05.17.
2018년 ‘올해의 발견’이란 수식어를 싹쓸이한 배우, <마녀>의 김다미다. 김다미는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비밀스러운 과거를 지닌 <마녀>의 주인공, 자윤 역에 캐스팅됐다. 그간 충무로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한국형 슈퍼히어로 캐릭터인데다, 러닝타임 내내 극을 이끌어야 했던 원톱 주연물. 김다미는 흔들림 없는 연기로 오래 기억될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벨기에에서 열리는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등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된 이 영화가 거둔 빛나는 성과 중 하나라면 김다미의 수상. 캐나다에서 개최된 제22회 판타지아영화제에서 김다미는 슈발누아경쟁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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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훈정
출연 김다미, 조민수, 박희순, 최우식
개봉 2018.06.27.
장편 데뷔작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한 명 더 있다. <벌새>의 박지후다.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을 배경으로 한 <벌새>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미세한 균열이 일어난 은희(박지후)의 일상을 조명한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펼치는 소녀 은희. 보고 난 후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에 머무는 은희를 만들어낸 박지후의 섬세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제너레이션 14PLUS 부문 대상을 수상한 <벌새>는 이후 시애틀국제영화제, 로스엔젤레스아시안퍼시픽영화제 등 수많은 해외 영화제에 초청돼 25관왕의 영광을 안았다. 그중 하나는 박지후의 몫. 박지후는 뉴욕에서 개최되는 제18회 트라이베카 필름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연소 기록까지 함께 세웠다는 점이 눈에 띈다.

- 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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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보라
출연 박지후, 김새벽
개봉 201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