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애초 시작은 드래그 레이싱버전의 <폭풍 속으로>였다. 언더커버 형사가 폭주족 패밀리에 잠입해 범죄자를 색출해가는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을 깨닫고 그들과 동화되어가지만, 숙명적으로 범죄를 막기 위해 대결한다는 1편의 기둥 줄거리는 익히 여러 장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플롯이다. 하지만 여기에 현란하게 개조된 튜닝카들과 폭발적인 스피드, 적절한 긴장감의 액션 씬, 그리고 아름다운 미녀들에 피를 끓게 만드는 강렬한 비트의 노래들로 중무장하며 이 중소 규모의 영화는 놀랄 만한 성공을 기록한다. 그리고 무려 16년간 7편의 속편이 이어지며 <분노의 질주>는 액션영화 프랜차이즈 사상 가장 히트한 시리즈가 되었다.
 

액션 프랜차이즈의 흥행 신화

 
사실 레이싱이 주가 된 1편과 2, 그리고 외전 격에 해당하는 3편이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스케일이 커질 거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리지널 멤버들이 다시 뭉치게 된 4편을 시작으로 전 세계 각국을 누비며, 유조차에서 기차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비행기로, 탱크 추격전에, 핵잠수함까지 끌어들이는 미친 상상력의 요란벅적한 블록버스터로 재탄생되었다. 이제 영화에서 레이싱 승부는 일개 양념일 뿐이고, 케이퍼물과 첩보물의 외피를 적절히 혼합해 덧씌운 채, 사기급의 멤버들을 점점 더 보강해가며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모든 흥행기록을 다시 쓰려 하고 있다.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차량 100대쯤은 가볍게 부숴버리는 물량공세에, 일본·멕시코·영국·브라질·아랍에미리트·러시아·쿠바 등 눈이 휘둥그레지는 로케이션, 그리고 물리 법칙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뻥튀기된 스펙터클로 오로지 할리우드에서만 가능한 판타지임을 명료하게 각인시킨다. 이 시리즈의 중심축이었던 폴 워커의 비극적인 사고사가 있었음에도 202110편까지 공공연하게 개봉일이 잡혀있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현재 유니버셜 영화사가 가장 자신있게 미는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선 개봉 첫주 만에 140만 명이 관람했고, 미국에선 1억불을 가볍게 넘겼으며, 중국에서는 무려 18천만 불을 넘기는 흥행돌풍에 힘입어 개봉 첫주 월드와이드 수익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블랙뮤직과 라틴 스타일의 조화,
<분노의 질주> 송 트랙 앨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즐거운 건 비단 눈만이 아니다. 화려한 블랙 뮤직들이 수놓는 사운드트랙으로 귀까지 호강한다는 게 이미 시리즈 내내 정평이 났다. 숨막히는 레이싱의 서스펜스와 스릴, 승부의 짜릿함을 강력한 비트와 흥겨운 그루브, 미끄러지듯 흐르는 플로우로 전달하는 힙합 사운드는 기본이요, 소울과 R&B, 일렉트로닉 그리고 라틴 뮤직까지 섭렵하며 영화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리즈 초반엔 유니버셜 뮤직 산하의 데프잼 사운드가 전면에 나서며 공격적인 쾌감과 시원한 질주감의 래핑으로 무게중심을 잡아줬다면, 최근 작품들에선 라틴 스타일을 접목시킨 뜨거운 사운드로 이국적인 분위기와 흥겨움을 동시에 잡고 있다.

1편 사운드트랙 / 어브 고티

폭발적인 성공을 기록한 1편 사운드트랙의 면면을 보면 만만치 않은 네임밸류의 아티스트들이 포진돼 있다. 영화에 직접 배우로도 등장했던 자 룰을 비롯해, 림프 비즈킷과 R 켈리, 디엠엑스, 페이스 에반스, 캐딜락 타, 레드맨, 노리에가 등 가히 올스타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전체적으로 조율한 건 머드 아이엔씨를 만든 탁월한 프로듀서이자 DJ인 어브 고티의 솜씨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7위까지 올랐으며, 미국과 캐나다에선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 성공으로 시리즈에선 유일하게 DVD 발매에 맞춰 컴필레이션 앨범이 한 장 더 나왔으며, 여기엔 후바스탱크나 인젝티드, 설라이버, 머신 헤드 등 얼터너티브 록과 뉴메탈 등을 담고 있다.
 

뒤로 갈수록 더욱 진화되는 <분노의 질주> 송 트랙

2편에선 자 룰 대신에 출연을 꿰찬 루다크리스가 프로듀싱에 공동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취향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전편의 R 켈리와 팻 조는 물론, 조 버든과 핏불, 데드 프레즈, 릴 플립, 칭기 등 개성 넘치는 힙합 뮤지션들이 더해져 더욱 짙어진 블랙 뮤직의 파워를 과시하는데, <분노의 질주>의 개그 담당 타이레스 깁슨 또한 뮤지션의 본분을 잊지 않으며 루다크리스와 함께 빼어난 솜씨를 들려준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5위까지 올랐으며, 골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3편에선 일본이 배경인 만큼 테리야키 보이즈나 드래곤 애쉬, 5.6.7.8's 등 일본계 뮤지션들이 부각되는데, 무려 닥터 드레와 퍼렐 윌리엄스가 프로듀서로 명함을 내밀며 2% 아쉬웠던 영화를 사운드트랙으로 만회하고 있다.

2편, 3편 사운드트랙


핏불과 퍼렐 윌리엄스 / 4편 사운드트랙

퍼렐 윌리엄스는 4편에서도 자신의 프로듀싱 그룹 넵튠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사운드트랙을 감수했는데, 2편에서 모습을 비췄던 쿠바 혈통의 래퍼 핏불이 무려 앨범의 절반에 해당하는 곡들을 소화해내며 눈도장을 찍는다. 여기에 <분노의 질주> 3편부터 6편까지 줄곧 개근하고 있는 돈 오마르를 비롯해, 버스타 라임스, 타샤, 케냐 그리고 로빈 시크 등의 뮤지션들이 배치돼 드라이빙과 액션에 걸맞는 신명나는 사운드를 제공한다. 주요 무대가 브라질이었던 5편에선 더욱 더 라틴 스타일을 농밀하게 띄우는데,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마르셀로 D2, MV , 카를리뇨스 브라운, 에두 K 등 브라질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해 그들의 흥과 분위기를 뽐냈다.
 

6편 사운드트랙 / 'See You Again' 싱글

다시 데프잼 레이블에서 발매된 6편의 사운드트랙은 하우스와 힙합, 라틴이 사이좋게 배분돼 있다. 투 체인즈와 위즈 칼리파를 비롯해, 사이프레스 힐, 티아이, 루다크리스와 어셔 그리고 배우 출신의 다니엘 우(오언조)MC진과 함께한 유쾌한 사운드가 화면을 수놓는다. 6편의 연장선상에서 더욱 발전된 사운드를 선사하는 7편의 사운드트랙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 송 트랙 앨범들 중에서 가장 백미로 뽑을 수 있는데, OST로는 무려 12년 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올라 4주간 정상을 지켰을 만큼 상업적으로도 가장 큰 성공을 기록했다. 또한 폴 워커를 추모하는 ‘See You Again’의 경우 싱글 컷으로 그전까지 16주간 난공불락 1위를 달리던 마크 론슨과 브루노 마스의 ‘Uptown Funk’를 밀어내며 12주간이나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 그래미 올해의 노래에 후보로 오른 것은 물론, 여러 영화제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분노의 질주>의 일등공신
브라이언 타일러

 
송 트랙 못지않게 강렬한 사운드를 책임지는 건 스코어도 마찬가지다. <분노의 질주> 음악이라 하면 단연 시리즈 중 다섯 편을 책임진 영화음악가 브라이언 타일러가 일등공신으로 뽑히는데, 그의 단단하면서 박력 넘치는 오케스트럴 사운드는 영화가 가진 흥분과 쾌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저스틴 린 감독과 <아나폴리스>를 같이 한 인연으로 <분노의 질주> 3편부터 합류한 브라이언 타일러는 이 시리즈에서 드미트리 티옴킨이나 제리 골드스미스, 바질 폴레두리스의 뒤를 잇는 남성적이고 호쾌한 영화음악의 전형을 들려준다. 할리우드 주류로 자리 잡은 짐머레스크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인데, 단선적이지만 선 굵은 주제부와 과도한 일렉트릭 요소, 팝적인 접근법으로 인상적인 잔향을 남긴다.

튜닝카의 폭발적인 엔진음을 상징하는 파워풀한 퍼커션과 풀 출력으로 미친 듯이 질주해대는 스트링, 스키드 마크처럼 청각 세포에 강한 스크래치를 남기는 각종 이펙트들과 일렉 기타 사운드들의 조화는 그야말로 <분노의 질주>에 최적화된 스코어링을 구사하고 있다. 전작들의 음악을 맡은 BT나 데이빗 아놀드도 <드리븐>이나 ‘007 시리즈등을 통해 이런 사운드를 경험해본 작곡가들이었지만, 브라이언 타일러의 스코어만큼 효과적이고 직관적으로 발휘되진 않았다. 오히려 화려한 아티스트들의 삽입곡에 스코어가 다소 묻히는 경향이었다면, 브라이언 타일러의 스코어는 이를 뚫고 나와 확고하게 영화의 근간을 잡고 스타일을 제시한다.
 

<헌티드><타임라인>으로 주목받는 신예 영화음악가로 뽑혔던 그를 주류 대세 영화음악가로 만든 게 바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그는 이를 발판 삼아 <>20년 만에 나온 <람보 4>, <이글아이>, <익스펜더블> 시리즈 등을 거쳐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하다는 마블 유니버스까지 입성했다. 그 때문에 <분노의 질주> 6편 음악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타로 참여한 스페인 출신의 영화음악가 루카스 비달은 브라이언 타일러의 테마들을 토대로 비슷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안타깝게도 브라이언 타일러 외에 시리즈에 참여한 다른 영화음악가들의 스코어를 듣기란 쉽지 않다. 1편을 담당한 BT만 두 번째 컴필레이션에 스코어 3곡이 실려 있을 뿐, 2편의 데이빗 아놀드와 6편의 루카스 비달의 스코어는 따로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덟 번째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이번에 개봉한 8편의 사운드트랙과 스코어 역시 시리즈의 전통을 훌륭하게 잇는다. 가장 주목받는 R&B 신예 켈라니가 G-Easy와 함께 엔딩 곡을 합작하고, 전작들에 참여했던 위즈 칼리파와 투 체인즈, 핏불을 비롯해, 영 서그, 트래비스 스캇, 미고스의 멤버 콰보와 릴 우지 버트, 포스트말론 등과 같은 젊은 힙합퍼들이 모습을 비추며 더욱 영화에 혈기와 열정을 불어넣고 있다. 여전히 사운드트랙은 합합과 R&B, 라틴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브라이언 타일러가 매만진 강력한 존재감의 스타일리시하고 압도적인 액션 스코어링도 그대로다. 이제는 또 어떤 기가 막히고 놀라운 액션을 9편과 10편에서 펼쳐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데, 그 만큼 사운드트랙의 라인업과 브라이언 타일러가 맡을 스코어도 손꼽아 기다려진다.


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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