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이 없는 디즈니 영화를 상상하긴 힘들다. 주인공에게 고난과 역경을 부여하는 빌런이 없었다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부여하는 디즈니 캐릭터라고 한들 긍정 왕에 그치고 말았을 터.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실사화되며 수많은 배우들이 디즈니의 악당을 연기해왔다. 실사 영화 속에서 주인공보다 더한 존재감을 뽐냈던, 혹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디즈니 빌런 실사 캐릭터와 그를 연기한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말레피센트, 안젤리나 졸리
출연 영화 <말레피센트> <말레피센트2>

디즈니 빌런 중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지닌 캐릭터.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힘을 지닌 말레피센트는 디즈니 역사상 가장 사악한 마녀로 불렸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실사화하기로 결정한 디즈니는 죽음 같은 잠에 빠졌다가 키스를 받고 일어나는 게 분량의 전부인 오로라 공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보다, 그녀에게 저주를 퍼부은 말레피센트의 사연에 더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관객이 몰랐던 말레피센트의 과거사에 모성애를 결합한 <말레피센트>는 애니메이션에서 한 발짝 나아가 새로운 세계관을 펼쳐냈다. 무엇보다 말레피센트 역에 안젤리나 졸리를 캐스팅한 것이 신의 한 수. <바이 더 씨> 이후 4년 만에 <말레피센트 2>를 통해 배우로서 스크린에 컴백한 안젤리나 졸리는 첫 등장 장면부터 녹슬지 않은 포스를 선보이며 관객을 단번에 휘어잡는 데 성공했다.

말레피센트 2

감독 요아킴 뢰닝

출연 안젤리나 졸리, 엘르 패닝, 미셸 파이퍼

개봉 2019.10.17.

상세보기

트리메인 부인, 케이트 블란쳇
출연 영화 <신데렐라>

초능력도 없는데 이렇게 무서울 일? 신데렐라의 계모, 트리메인 부인은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예민함과 비열함으로 보는 이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안기는 캐릭터다. 창조적인 방식으로 신데렐라에게 정신적인 학대를 일삼는 캐릭터. 어쩐지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더 무서운 스타일이다. 실사 영화 속 트리메인 부인은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했다. 케이트 블란쳇의 설명에 따르면 트리메인 부인은 “신데렐라만큼 어리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을 것. 욕망을 크게 품을수록 반짝반짝 빛나던 트리메인 부인은 착하기만 한 신데렐라보다 훨씬 입체적인 인물이다. 우아한 몸짓과 고상한 표정으로 탄성을 자아내다가도 곧장 경박한 웃음으로 모든 판을 깨고 마는 케이트 블란쳇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가 돋보였던 캐릭터.

신데렐라

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릴리 제임스, 리차드 매든, 케이트 블란쳇, 헬레나 본햄 카터, 홀리데이 그레인저, 소피 맥쉐라

개봉 2015.03.19.

상세보기

붉은 여왕, 헬레나 본햄 카터
출연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

디즈니 악당 대부분은 주인공을 밀어내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붉은 여왕은 계획이란 단어를 몰라 더 무섭고 위험한 캐릭터다. 제 기분에 따라 충동적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살리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에서도 제멋대로였던 붉은 여왕의 심성이 실사영화라고 좋아질 리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한 붉은 여왕은 팀 버튼 감독의 뮤즈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했다. 몸의 1/2 길이에 가까운 머리 크기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희귀한 메이크업까지, 외형만으로 관객을 충격을 빠뜨리는 캐릭터. 호통 빼곤 아무 말도 못 하는 붉은 여왕의 롤러코스터급 감정 기복을 유연하게 표현해낸 헬레나 본햄 카터는 본인 특유의 미친 연기로 캐릭터에 광기를 더하는 데 성공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감독 팀 버튼

출연 조니 뎁,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크리스핀 글로버, 미아 와시코브스카

개봉 2010.03.04.

상세보기

후크 선장, 더스틴 호프만/제이슨 아이삭스
출연 영화 <후크>(1991) <피터팬>(2003)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해서 꼭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만 실사 영화를 내놓는 건 아니다. 소설 <피터팬>을 바탕으로 트라이스타 픽처스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피터팬을 기반으로 한 실사 영화를 내 놨다. 여태까지 두 명의 배우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팬> 속 후크 선장의 이미지,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얇고 날렵한 콧수염,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한 쪽 손의 후크(hook)를 재현해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은 <후크>에선 더스틴 호프만이 후크 선장을 연기했다. 영화 제목은 후크지만, 어른이 되어 동심을 잃은 피터(로빈 윌리엄스)가 주인공인 영화다. <피터팬>에선 제이슨 아이삭스가 후크 선장을 연기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웬디의 아버지, 달링도 연기했다는 사실. 그의 1인 2역 연기가 쏠쏠한 재미를 더하는 영화다.  

후크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더스틴 호프만, 로빈 윌리엄스, 줄리아 로버츠, 밥 호스킨스

개봉 1992.06.20.

상세보기
피터팬

감독 피 제이 호건

출연 제이슨 아이삭스, 제레미 섬터, 레이첼 허드 우드, 올리비아 윌리암스, 루디빈 사니에, 리처드 브라이어스, 린 레드그레이브, 제프리 파머

개봉 2004.01.16.

상세보기

개스톤, 루크 에반스
출연 영화 <미녀와 야수>

가진 것은 힘과 허세뿐.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야수를 몰아내려 하는 <미녀와 야수>의 빌런, 개스톤은 뇌마저 근육으로 채워져있을 것 같은 마초 캐릭터다. 2017년 개봉한 <미녀와 야수>에선 루크 에반스가 개스톤을 연기했다. 각진 얼굴선과 짙은 눈썹, 우락부락한 체구까지 외형적으로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했던 캐스팅. 할리우드에 들어서기 전 영국 뮤지컬 무대 위에서 실력을 다졌던 루크 에반스의 노래 실력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거울을 보며 말도 안 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모습이라든가 우악스럽게 침을 뱉는 모습, 시대에 뒤떨어지는 대사들까지 찰지게 소화해낸 루크 에반스는 <미녀와 야수>를 통해 전 세계 다양한 연령층에 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미녀와 야수

감독 빌 콘돈

출연 엠마 왓슨, 댄 스티븐스, 루크 에반스

개봉 2017.03.16.

상세보기

크루엘라 드 빌, 글렌 클로즈/엠마 스톤
출연 영화 <101 달마시안>(1996) <102 달마시안>(2000) <크루엘라>(2020)

애니메이션 캐릭터보다 실사 영화 캐릭터가 더 유명한 사례. 강아지들을 보며 외투를 만들 생각에 행복해하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의 끔찍한 악당, 크루엘라 드 빌은 글렌 클로즈를 만나 디즈니 빌런 사이 레전드로 떠오른 캐릭터다. “달링(darling)”부터 “이 바보들, 백치들!(You fools! You idiots!)”까지, 크루엘라 드 빌의 말투를 애니메이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와 완벽 일치하게 소화한 것은 물론,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표독스러운 표정 연기와 말도 안 되는 화려한 의상까지 저만의 것으로 소화한 글렌 클로즈는 그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미국 영화연구소가 선정한 ‘최고의 악당 캐릭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글렌 클로즈를 이어 20년 만에 크루엘라 드 빌을 연기할 배우는 엠마 스톤. 올해 디즈니 엑스포 행사를 통해 그녀가 연기할 크루엘라 드 빌의 이미지가 선공개되어 팬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엉뚱하고 괴상한 연기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엠마 스톤이 크루엘라 드 빌을 어떻게 자신만의 캐릭터로 소화해낼지가 이번 작품의 기대 포인트다.

101 달마시안

감독 스티븐 헤렉

출연 글렌 클로즈, 제프 다니엘스

개봉 1996.12.21.

상세보기
크루엘라

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

출연 엠마 스톤

개봉 미개봉

상세보기

(번외)

자파, 마르완 켄자리
출연 영화 <알라딘>

주인공보다 존재감이 강했다는 데엔 동의할 수 없으나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면 서운할 빌런. 올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알라딘>은 “자파의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몇몇 이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자파를 연기한 마르완 켄자리의 외모가 원작 캐릭터와 별로 닮지 않은 데다, 목소리 역시 얇은 편이라 원작의 카리스마를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 마르완 켄자리의 출연 분량이 여럿 잘려나가 캐릭터의 기반이 허술해진 것 역시 자파의 존재감 부재에 힘을 더했다. 물론, 추악스러운 비열함으로 똘똘 뭉친 원작의 자파보다 2인자 콤플렉스에 치인 실사판 자파를 귀여워하는 팬들이 있었다는 점도 잊지 말자. 감상은 각자의 몫!

알라딘

감독 가이 리치

출연 나오미 스콧, 윌 스미스, 메나 마수드

개봉 2019.05.23.

상세보기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