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숀더쉽 더 무비: 꼬마 외계인 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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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윌 베처, 리처드 펠런
출연 저스틴 플레쳐, 아멜리아 비테일
개봉 2020.02.19.
명품은 기계가 만들지 않는다. 사람이 만든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명품’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처럼 말이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있다. 명품이라고 불러야 마땅해 보인다. 48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명가, 아드만 스튜디오가 만든 <숀더쉽 더 무비: 꼬마 외계인 룰라!>(이하 <숀더쉽 더 무비>)다. <숀더쉽> 시리즈의 두 번째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숀더쉽 더 무비>의 프로덕션 노트를 통해 이 애니메이션이 정말 명품인지 아닌지 알아보자.
스티븐 스필버그 스타일의 SF?
<숀더쉽 더 무비>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외계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양떼목장의 숀과 친구들이 지구에 오게 된 꼬마 외계인 룰라를 지켜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집으로 보내주는 이야기다. 자연스레 연상되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다. <숀더쉽 더 무비>를 연출한 윌 베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화려한 공상 과학물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시도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숀의 세계를 열고자 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스타일의 공상 과학 장르의 고전물 같은 영화 말입니다.” SF 고전에 대한 찬사를 담아내기 위해 제작진은 수년 간 연구를 거듭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만든 스탠리 큐브릭의 카메라 구도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보여준 캐릭터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연출 기법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이렇게 완성된 <숀더쉽 더 무비>에는 고전 SF영화의 오마주 장면도 숨겨뒀다.
<숀더쉽> 시리즈의 새 캐릭터 탄생의 비밀
<숀더쉽 더 무비>에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룰라는 태생부터 다르다. 외계인이라서? 물론 룰라는 다채로운 초능력을 겸비한 외계인 캐릭터이긴 하다. 태생이 다르다는 의미는 캐릭터를 만든 재료가 다르다는 의미다. 아드만 스튜디오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즉 찰흙으로 만든 캐릭터를 주로 사용했다. 사고뭉치 양, 숀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캐릭터, 월레스와 그로밋도 마찬가지다. 룰라는 다르다. 신축성 있게 늘어나는 인형(puppet)이다. 그러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다른 양들과는 다른 DNA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참고로 룰라(LU-LA)의 이름은 인류의 달(Luna) 착륙 50주년을 기념해서 짓게 됐다.
숀이 벌써 25살이라고?
1995년, 아드만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시리즈 <월레스와 그로밋>의 단편 <월레스와 그로밋: 양털 도둑>에 숀이 처음 등장했다. 그로부터 벌써 25년이 지났다. <월레스와 그로밋>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시작된 <숀더쉽> 시리즈는 2007년부터 TV 시리즈로 제작됐고 2015년에 첫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숀더쉽>의 세계관 속에서 여전히 10대 청소년 아니 어린 양인 숀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가 됐다. 숀을 탄생시킨 아드만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애니메이터이자 감독인 닉 파크는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숀더쉽> 캐릭터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예전에 영국의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가 숀더쉽 백팩을 메고 찍은 사진 때문에 판매량이 지붕을 뚫을 만큼 치솟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죠. 그리고 몇 년 전에 시리아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폭격이 있었고 사람들은 임시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숀더쉽> 티셔츠를 입은 소년을 봤어요. 매우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정말로요.”
하루 촬영 분량은 2초
<숀더쉽 더 무비>는 하루 2초 분량을 제작할 수 있다. 50개 이상의 세트를 제작하고 35명의 촬영 스태프가 동원된 결과다. 그렇다고 지금 시대에 모든 것을 손으로 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의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하루 2초라니.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순하게 계산해보자. <숀더쉽 더 무비>의 러닝타임은 87분이다. 87분(5220초)을 하루당 2초로 나눈다면 2610일이다. 7년이 넘는 시간이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창립자 데이비드 스프록스턴은 말한다. “(아드만 스튜디오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운영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했습니다. <월레스와 그로밋>이 오스카 트로피를 받기까지요. 1970년대 후반에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워너브러더스(<치킨런>), 드림웍스(<월레스와 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 같은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아드만 하우스와 함께 하게 됐고, CGI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게 시작됐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 모든 걸 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장인이 만든 명품이란 이런 것
아드만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은 분명 아이들을 위한 컨텐츠다. 대사 없이 표정과 동작만으로 관객을 웃기는 영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 미스터 빈과 유사한 유머를 사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전 세계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이 보기에 유치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어른들이 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단순 비교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말해보자. 미국에 픽사가 있다면, 영국엔 아드만이 있다. 두 스튜디오의 작품은 어른이 봐도 아이가 봐도 각각 그 나름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다만 둘은 다르다. 픽사의 작품은 독창적인 디자인의 정밀한 전자제품 같다. 고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회사여서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아드만은? 역시 한 땀 한 땀 장인이 만든 명품 가죽 제품 같은 느낌이다. 다시 공통점을 말하자면, 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도 실패는 없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