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시대를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지배한다. 우리는 그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통과하는 중이다.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신작 개봉은 연기되고 제작현장이 멈췄다. 극장을 찾는 발길은 점점 준다. 반대로 OTT(Over the Top) 서비스 시장은 일종의 호황을 맞는 것처럼 보인다. 2월 개봉예정이던 기대작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에서 공개하기로 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OTT 서비스 이용시간이 늘었다. 모바일인덱스는 “안드로이드 사용자의 넷플릭스 사용시간은 1월 첫째 주 671만분에서 2월 넷째 주 817만분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팬데믹과 뉴 OTT
해외 매체 ‘벌처’는 3월 20일 코로나19 시대와 TV 시장을 분석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단기적으로는 분명 OTT 서비스는 호황일 것이다. ‘벌처’는 “비디오 소비가 앞으로 몇 달 안에 60% 급증할 수 있다”는 닐슨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만약 코로나19 여파가 오래 지속된다면 어떨까. ‘벌처’는 이때 OTT 시장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예측했다. 기사의 대략적인 내용을 추려 국내 사정과 엮어서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벌처’의 기사에서 주목한 것은 미국에서 새롭게 선보일 OTT 업체 퀴비(Quibi)다. 퀴비는 4월 6일 미국에서 런칭 예정인 서비스다. 1994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드림웍스를 설립한 제프리 카젠버그가 만들었다. 유능한 인물의 사업이라는 말이다. 알리바바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에서 투자를 받은 퀴비는 다른 서비스와 차별화된 전략을 가지고 있다. 8~10분 정도의 짧은 분량의 영상을 하루에 한 편씩 업데이트한다. 당연하게도 이 전략은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35세 미만의 젊은 시청자를 겨냥한 것이다. 또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유명 영화인들의 오리지널 컨텐츠를 서비스할 예정이다.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 동안 볼 수 있게 만든 퀴비의 전략이 집안에 갇혀 있는 젊은 관객에게도 통할지 미지수다. 또 퀴비는 디즈니+의 최고 장점인 컨텐츠 라이브러리를 풍부하고 갖고 있지 못하다. 이것 역시 약점이 될 수 있겠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불황이 장기화된다면 퀴비는 더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것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컴캐스트의 자회사 NBC유니버설이 4월 런칭을 준비 중인 피코크(Peacock)이나 AT&T의 자회사 워너미디어가 5월 런칭을 준비 중인 HBO max와는 사정이 다르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지면 보통의 사람들은 적은 돈을 들이는 것부터 절약하기 시작한다. 한달에 4.9달러 하는 퀴비 같은 서비스부터 해지하는 것이다. 또 넷플릭스 가입자인데 퀴비를 추가 가입했다면? 퀴비부터 탈퇴할 가능성이 높다.
웨이브와 시즌의 경우
국내에서 퀴비와 직접적으로 비교될 만한 서비스는 찾기가 어렵다. 우선 웨이브(WAVVE)와 시즌(SEEZN) 서비스를 떠올려 보자. 두 서비스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TV가 아닌 모바일을 주로 사용하고, 2시간짜리 영화 대신 지난 드라마, 예능의 짧은 클립을 본다고 가정해보면 언뜻 퀴비와 유사해보인다. 다만 퀴비와 다른 점을 꼽으라면 두 서비스 모두 기존에 있던 것(옥수수, 올레TV 모바일)을 리뉴얼한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통신사를 등에 업고 있어서 퀴비와 같은 신생 OTT 서비스와는 다르다.
왓챠플레이의 경우
왓챠플레이는 어떨까. 왓챠플레이는 넷플릭스와 함께 국내에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OTT 서비스로 알려졌다. 웨이브, 시즌과는 달리 독점 TV 시리즈, 영화 등에서 강점을 보인다. 최근 왓챠플레이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전국민 3일 무료 이벤트를 진행했으며 코로나19 확진자와 대구, 경북 지역 영유아들을 위한 무료 이용권을 주기도 했다. 또 왓챠플레이는 신규 이용자 확보를 위해 독점 컨텐츠인 영국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를 선보였다. 왓챠플레이 역시 앞서 소개한 미국의 퀴비와는 다른 맥락의 서비스처럼 보인다. 다만 비슷한 점이 있다면 왓챠플레이는 거대 기업의 그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티빙의 경우
티빙(TVING)도 생각해보자. CJ ENM에서 운영하는 티빙은 tvN 등 자사 케이블 채널과 JTBC의 컨텐츠를 서비스한다. 거대 통신사와 함께 하는 웨이브, 시즌과 달리 티빙은 생존전략은 오리지널 컨텐츠에 집중돼 있다. 곧 선보일 것으로 추측되는 CJ ENM과 JTBC의 새 합작 OTT 서비스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티빙 역시 퀴비와 비교를 해보자. 자체 오리지널 컨텐츠를 제작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그 여파
지금 미국은 국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뉴욕주의 자택근무가 이뤄지면서 주요 토크쇼는 결방하고 몇몇 TV 시리즈의 방영은 연기됐다. NBA 등 스포츠가 중단된 것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만약 국내 TV산업도 이런 정도로 타격을 입게 된다면 OTT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앞서 살펴본 퀴비라는 미국의 신생 OTT를 통해 비교해보자. 새로운 가입자는 독점 컨텐츠와 방대한 영화 라이브러리를 갖춘 왓챠플레이가 가장 많을 듯하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면 러닝타임 긴 영화 혹은 TV 시리즈에도 눈길이 가는 법이다. 자체 컨텐츠로 무장한 티빙도 무시할 수는 없다. 미국처럼 방송 제작 자체가 이뤄지지 않게 된다면 웨이브와 시즌의 이용 시간이 줄어들 듯하다. 새로운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없이 재방송 등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제 놓친 방송’도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경제 불황이 닥쳐온다면 왓챠플레이가 가장 먼저 사용자들을 잃기 시작할 것이다. 왓챠플레이는 거대 모기업의 그늘이 없다. 웨이브와 시즌 등은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스마트폰을 해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시대는 역사에 중요하게 기억될 듯하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연구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영화와 TV산업, 특히 넷플리스가 촉발시키고 아마존, 디즈니, 애플이 불을 붙인 OTT 시장도 코로나19 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수 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