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망작으로 손에 꼽히는 영화들이 있다.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범위를 좁혀보자. 슈퍼히어로 영화로만 한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2011)이다. 벤 애플렉의 <데어데블>(2003)도 여기에 포함된다. <판타스틱 4>(2015)도 빼놓을 수 없다. <판타스틱 4>는 제목 앞에 배우가 아닌 감독의 이름이 붙는다. 팬들은 조쉬 트랭크 감독을 ‘빌런’(villain)으로 취급한다. 그는 술과 마약에 찌든 모습으로 촬영장에 나타났다. 영화의 실패를 스튜디오의 간섭 때문이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 상에서 여러 논쟁을 벌였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고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할리우드에서 사라졌다. ‘영화 감옥’에(Movie jail) 갇힌 것이다. 트랭크 감독에 대한 실망감은 <크로니클>(2012)의 엄청난 성공에서 비롯됐다. 그 화려한 성공은 젊은 나이의 재능 오만으로 바꿔놓았다.

- 크로니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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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쉬 트랭크
출연 마이클 B. 조던, 알렉스 러셀, 데인 드한, 애슐리 힌쇼
개봉 2012.03.15.
나락으로 떨어진 트랭크 감독은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았다.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그는 스스로 재기의 기회를 만들었다. 미국 시카고의 유명한 갱스터 알 카포네의 삶을 그린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2018년 이 시나리오로 <폰조>(가제)라는 영화의 연출까지 맡았다. (네이버 영화에는 <카포네>가 <폰조>라는 제목으로 등록돼 있다.) 그에게 힘이 돼준 배우는 톰 하디다. 그가 알 카포네를 연기했다. 린다 카델리니, 잭 로던, 맷 딜런, 카일 맥라클란 등도 <카포네>에 출연했다. <카포네>는 10년 간 복역하고 퇴소한 47살의 카포네의 말년을 그린 영화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버라이어티’는 트랭크 감독에게 “감옥에서 나온 알 카포네와 자신을 동일시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왜냐면 트랭크 감독 자신도 영화 감옥에 갇혔기 때문이다. 트랭크 감독은 “공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 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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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쉬 트랭크
출연 톰 하디
개봉 2020.00.00.
4년 6개월의 제작기간을 거친 <카포네>는 코로나19 여파가 아니었다면 극장 개봉했을 것이다. 다만 좀더 기다려 극장에서 개봉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을까. <카포네>는 5월 12일(현지시각) VOD 서비스를 통해 공개됐다. 미국 현지 매체들은 트랭크 감독의 복귀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극장이 아예 문을 닫은 코로나19 시대이기에 새 영화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트랭크 감독의 인터뷰는 여러 매체에서 보도됐다. 높은 관심과 기대만큼 <카포네>는 좋은 평가를 받았을까. 트랭크 감독을 나락에서 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포네>는 또 다른 실패로 기록될 것 같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5월 25일 기준, 42%를 기록하고 있다. <판타스틱 4>의 9%에 비하면 거의 5배 가까이 높은 수치지만 혹평은 혹평이다. 일반 관객들 역시 평론가, 기자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관객 지수는 33%에 그쳤다. <카포네>에 대한 ‘베니티페어’의 기사 제목은 자극적이다. “톰 하디의 <카포네>는 할리우드의 악몽에서 태어났다”(Tom Hardy’s Capone Was Born Out of a Hollywood Nightmare)라고 제목을 붙였다. 부제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일 필요는 없다”라는 트랭크 감독의 말을 인용했다. ‘인디와이어’에서는 혹평을 받아들이는 트랭크 감독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혹평에도 “여전히 <카포네>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 <판타스틱 4>와는 다른 감정”이라고 밝혔다. 담담히 혹평을 받아들인다는 태도다. 트랭크 감독의 이 인터뷰는 속된 말로 ‘정신승리’일까지 아니면 ‘개과천선’일까.

- 판타스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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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쉬 트랭크
출연 마이클 B. 조던, 케이트 마라, 마일즈 텔러, 제이미 벨, 토비 켑벨
개봉 2015.08.20.
한때 트랭크 감독은 <스타워즈> 스핀오프 영화의 감독직에도 올랐던 인물이다. 할리우드의 반짝이는 재능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판타스틱 4> 사태로 해고되긴 했지만 말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금의 제임스 건,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과 비슷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친 고평가일까. 27살이던 그 시절의 그가 촉망받는 감독이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카포네>는 그를 영화 감옥에서 꺼내주지 못한 듯하다. 가석방은 유예됐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카포네>의 제작 과정에는 과거와 같은 사건사고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5월 초, 작은 소동이 있었다. ‘폴리곤’(polygon)이라는 매체는 트랭크 감독에 대한 긴 기사를 보도했다. 거기서 “트랭크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루즈벨트>(Roosevelt) 프로젝트의 각색으로 참여한다”고 썼다가 정정했다. 트랭크 감독이 참여하기로 한 영화는 <더 라이즈 오브 테오도르 루즈벨트>(The Rise of Theodore Roosevelt)라는 영화다. 둘은 다른 작품이다. 트랭크 감독은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스펙 스크립트(spec script)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펙 스크립트는 의뢰를 받지 않고 창작자가 본인의 아이디어로 쓴 시나리오를 뜻한다. 지금으로서는 <카포네> 이후 트랭크 감독의 차기작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빛나던 재능의 몰락을 보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랭크 감독의 다음 영화를 보길 희망해본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