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기억과 환상, 그 매력적인 혼란
★★★☆
미라(김호정)는 어디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다. 영화는 그 정체성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여러 층위의 경계를 펼쳐 보이고 또 적극적으로 넘나든다. 실재와 기억,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 심지어 연출의 측면에서는 영화와 연극의 경계마저 제한이 없다.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들의 충돌 사이에서 느끼는 미라의 혼란을 촘촘하게 쌓아올리던 영화가 당도한 곳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의 시공간이다. 이 결말이 주는 낯선 방식의 충격은 예술영화가 시도할 수 있는 과감한 선택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정유미 <더 스크린> 에디터
나는 나를 돌아볼 권리가 있다
★★★
주인공 ‘프랑스 여자’는 배우가 되기 위해 프랑스로 갔지만 꿈을 포기한 여자, 사랑에 배신당한 여자, 프랑스 국적의 한국인이지만 두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여자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비련의 여주인공인데 영화는 인물의 고통을 전시하는 대신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방식을 취해 다각도에서 접근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중년 여성, 이방인이라는 존재가 겪는 소외감, 고독, 이질감을 개인의 문제로 다루지 않고 사회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애도의 감정으로 승화시켜 충격과 여운을 준다. 김호정 배우가 ‘한국의 이자벨 위페르’라고 불리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