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진영이 메가폰을 잡고 돌아왔다. 오랜 기간 연기를 해온 배우들이 감독 데뷔를 하는 경우는 더러 있다. 배우 출신 감독들의 강점은 현장에서 직접 연기를 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배우들을 잘 이해한다는 점인데, 때문에 연기파배우들의 연출작은 더욱 주목받기 마련이다? 장편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 연기도 잘하고 연출도 잘하는 명배우들을 모아보았다.


정진영
<사라진 시간>

무대에서 배우 인생을 시작해 액션,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특유의 연기를 보여준 정진영이 데뷔 33년 만에 감독으로 나섰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품고 있었던 그의 오랜 꿈을 드디어 이루게 된 것. 그는 영화의 연출뿐 아니라 각본과 제작까지 도맡으며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한 시골마을에서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진영 감독 스스로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밝힌 만큼 영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며 관객들에게 신선하고도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김윤석
<미성년>

<미성년>은 연극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2014년 원작의 옴니버스 연극 중 한 편을 본 김윤석이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고 후에 연출과 출연도 하게 된다. 스릴러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배우 김윤석이 감독으로서 들고 온 영화 <미성년>은 아주 의외였다. 부모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두 명의 고등학생이 각자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이 영화는 탄탄한 드라마가 눈에 띄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개봉 후 국내외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고,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도 한다. 김윤석이 감독으로서 성공한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1988년 연극으로 배우 데뷔를 하기 전 대학 시절 연극회에서 연출, 조명, 음향, 무대 등 총괄을 맡아 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영화배우 데뷔 이후로도 틈틈이 아이템을 준비하고 시나리오를 쓰며 줄곧 감독 데뷔를 준비해오고 있었기 때문. 그의 차기 연출작이 벌써 궁금하다.


문소리
<여배우는 오늘도>

1999년 영화 <박하사탕>으로 데뷔 후,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 등 유수의 시상식을 휩쓸며 일찍이 배우로서 정점을 찍은 문소리. 그녀가 메가폰을 들게 된 계기는 2011년 출산과 육아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위기감을 느낀 그녀가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문소리의 감독 데뷔작 <여배우는 오늘도>는 그녀가 작업한 단편 영화 3편(<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모아 장편으로 낸 작품으로, 마치 배우 문소리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려내는 듯하다. 문소리는 영화의 연출과 함께 각본과 주연까지 맡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공개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큰 호평을 얻었고, 현실적인 여배우의 삶을 코믹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하정우
<허삼관>, <롤러코스터>

하정우는 배우뿐 아니라 감독, 화가로 활약하고 있는 진정한 만능 아티스트다. 2003년 영화배우로 데뷔 후 12년 만에 연출한 첫 작품은 영화 <롤러코스터>. 한류스타가 탑승한 비행기가 태풍에 휘말려 추락 직전의 위기에 빠지며 펼쳐지는 코미디를 그린다. 당시 그는 연출 데뷔 동기에 대해 오래전부터 영화 연출을 꿈꿔왔는데, 도전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2년 후 소설가 위화의 대표작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허삼관>의 각본, 감독, 주연을 맡으며 연출과 연기 모두를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감독이 연예계 대표 마당발인 만큼 영화 <롤러코스터><허삼관>에는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보는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박중훈
<톱스타>

1985년 데뷔 후 줄곧 최고의 배우 자리를 지켜온 배우 박중훈도 연출에 도전했다. 그의 첫 입봉작 <톱스타>박중훈의 실제 경험담을 기초로, 연예계 비화부터 스타들의 흥망성쇠까지 자신이 30년간 몸담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는 영화의 제작, 기획과 함께 각본과 연출까지 맡으며 1인 4역을 해냈고, 영화는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그는 인터뷰를 통해 영화를 보는데 어느 순간 연기를 하는 내 모습이 신선하지 않게 느껴지더라. (중략) 더 이상 스스로 성에 차는 연기는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른 걸 해볼 만한 타이밍이 되었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감독 데뷔 계기에 대해 밝혔다. 더불어 차기 연출작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체화시키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내기도.


유지태
<마이 라띠마>

유지태는 벌써 5편의 작품을 연출한 베테랑 감독이다. 2003년 단편영화 <자전거 소년>을 통해 감독 데뷔 후 2005<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나도 모르게>, 2009<초대>까지 4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2013년 장편 영화 <마이 라띠마>를 발표한다. 영화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국제 결혼한 태국 이주민 여자와 변변찮은 직업도 없이 빚만 가득한 남자의 위태로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며, 국내에 공식 개봉도 전에 도빌아시아영화제에 초청되며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유지태는 인터뷰를 통해 "1998년 배우 데뷔작 <바이 준> 때부터 현장에 장비를 가지고 다니면서 단편을 찍었다"고 말하며 "감독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를 위해 영화사 유무비를 설립하기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틈틈이 시나리오도 쓰고 연기도 하는 영화인이 되고 싶다는 그, 영화를 향한 순수한 애정이 오롯이 느껴진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B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