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왬(Wham!)의 사진을 보며 막연하게 앤드류 리즐리가 팀의 중심일 거라 생각했다. 너무 눈이 부리부리한 조지 마이클보다는 곱상하게 생긴 앤드류 리즐리가 더 인기가 많을 줄 알았다. 앤드류 리즐리가 이른바 쩌리였다는 걸 알게 된 건 음악을 좀 찾아 듣고부터였다.

보컬은 물론 작곡을 도맡고 있는 조지 마이클에 비해 기타만을 연주하는 앤드류 리즐리의 비중은 작을 수밖에 없었다. 한 명에 과도한 조명이 쏟아지는 팀이 오래 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결국 둘은 서로의 길을 걸었고 반전따위는 없었다. 조지 마이클은 최고의 팝 스타가 됐고, 앤드류 리즐리는 솔로 활동에서도 변변한 경력을 쌓지 못하고 잊혀져갔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시작과 함께 가상의 팀 팝(PoP)의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연출만 봐도 “내가 바로 ‘80년대야!”라고 웅변하는 듯한 뮤직비디오다. 노래의 제목은 ‘Pop! Goes My Heart’, 이 노래를 가지고 팝은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팝의 중심은 리드 보컬인 콜린 톰슨(스캇 포터)으로 솔로로 데뷔해 더 큰 성공을 거둔다. 알렉스 플레처(휴 그랜트)도 팝 해체 뒤 솔로 앨범을 발표하지만 실패하고 잊힌 팝 스타의 삶을 살아간다.

여기에서 알렉스 플래처라는 캐릭터를 왬의 앤드류 리즐리에서 가져왔다는 건 슬프지만 사실 같다. 모든 상황과 배경이 많이 닮아있다. 알렉스는 동창회나 지역 특산물 축제, 테마파크, 유람선 등에서 추억팔이로 노래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가 앤드류 리즐리와 달랐던 건 그래도 팝 시절에 콜린 톰슨과 함께 작곡을 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생계에 매달리고 매너리즘에 빠지며 10년 넘게 새로운 곡을 만들고 있지 않지만.

그런 그에게 흔치 않은 기회가 온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보다도 유명한 당대 최고의 팝 스타 코라 콜만이 듀엣을 제안한 것. 코라 콜만은 팝의 노래를 들으며 부모의 이혼을 견뎠고 특히 알렉스를 좋아했다. 코라는 알렉스에게 흘러간 옛날 노래는 관심 없다며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달라 요청한다.

노래를 만들며 알렉스와 소피 피셔(드류 베리모어)의 인연은 시작된다. 친구를 대신해 알렉스의 집 화초에 물을 주러 온 소피는 엄청난 수다쟁이지만 그만큼 언어적 능력이 뛰어났다. 곡은 어떻게든 써보겠지만 가사엔 도무지 자신이 없던 알렉스에게 소피는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피아노에 앉아 멜로디를 노래하는 알렉스, 그 옆에서 소피는 공책과 펜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가사를 써 내려간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하다. 로맨틱하고 자연스레 웃음을 자아낸다. 서로에게 끌리고 오해가 생겨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이 뻔한 패턴에 드류 베리모어와 휴 그랜트가 연기하는 캐리터의 힘으로 사랑스러움을 채워 넣고, 명색이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화인만큼 훌륭한 노래를 전면에 내걸어 차별화를 준다.

앞서 언급했듯 ‘Pop! Goes My Heart’는 그 시대를 경험한 이에게 친숙한 감흥을 안겨준다. 단순히 반가움 정도의 감흥 정도가 아니라 잘 만든 노래를 만났을 때의 기분 좋은 감흥이다. ‘Pop! Goes My Heart’는 1980년대 빌보드 차트 1위 자리에 툭 떨어뜨려놓아도 아무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한 팝송이다.

알렉스와 소피의 합작으로 만들어지는 ‘Way Back Into Love’는 어떤가. 낭만적으로 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큰 역할을 하지만, 선명한 멜로디만으로도 노래는 한 번만 들어도 계속 귀에 머문다. ‘Meaningless Kiss’와 ‘Don't Write Me Off’ 역시 복고란 특수성에 모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보편성까지 가지고 있는 노래들이다. 휴 그랜트와 드류 베리모어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영화의 매력이다.

이건 취향의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알렉스가 콜린과 함께 정교하게 편곡된 ‘Way Back Into Love’를 부르는 것보다 알렉스의 집에서 가이드용으로 알렉스와 소피가 수줍게 노래하는 ‘Way Back Into Love’가 훨씬 더 사랑스럽게 들린다(두 버전 모두 사운드트랙에 담겨 있어 비교해 들을 수 있다). 단순히 이 곡뿐만이 아니다. 스튜디오 작업을 거친 매끈한 정식 버전보다 거친 데모 버전이 더 좋게 들리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노래란 건, 음악이란 건, 이처럼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오랜만에 그 여자가 작사하고 그 남자가 작곡하고, 둘이 함께 부른 노래를 듣는다.


김학선 /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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