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시상식은 백인, 남성들의 잔치였다. 오랜 기간 그랬다. 첫 시상식이 열린 이후 2010년 중반까지 그랬을 것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오스카 시상식은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AMPAS, 이하 아카데미)에서 주관한다. 오스카 시상식을 아카데미 시상식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아카데미 회원의 투표로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할 후보작과 수상작을 결정한다. 이 회원의 대다수가 백인, 남성이었다.

변화가 시작됐다. 오스카 시상식이 백인, 남성들의 잔치라는 말은 이제 과거형이다. 트위터에 ‘#OscarSoWhite’라는 해시태그가 들불처럼 번지던 게 2015년이었다. 당시 연기 부문의 후보 20명이 전부 백인이었다. 이후 아카데미는 여성,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을 비롯해 해외 국적의 회원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2020년은 오스카 시상식 역사에서 상징적인 해다.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정말 <기생충>은 상징적인 영화다.

이제 아카데미는 다양성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9월 8일 아카데미는 홈페이지에 작품상을 받기 위한 다양성 조건을 공개했다. 2021년부터 이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영화는 작품상 후보의 자격을 얻지 못한다.

아카데미의 새 기준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논란의 핵심은 다양성을 강조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강제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다. 어떤 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최근 5년간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들에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보면 뭔가 해답이 보이지 않을까. 한번 따져보자. 작품상 후보의 새 기준은 아래에 있다.


오스카 작품상 기준

기준 A. 영화 속 표현, 주제 및 내러티브(ON-SCREEN REPRESENTATION, THEMES AND NARRATIVES)
A1. 영화의 주요 인물 중 비백인이 한 명 이상 있을 것. 아시아인, 히스패닉,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동인, 북아메리카나 하와이 원주민 등이 이에 해당한다.
A2. 조단역급 배우 30%가 여성, LGBTQ. 성소수자, 소수민족이나 종교인, 신체적·인지적 장애인 등을 포함해야 한다.
A3. 영화의 주요 줄거리, 주제 또는 내러티브가 소수자 집단에 관한 내용일 것.

세 가지 조건 중 하나 이상 해당하면 기준 A 충족.

기준 B. 크리에이티브 리더십 및 프로젝트 팀(CREATIVE LEADERSHIP AND PROJECT TEAM)
B1. 크리에이티브팀의 책임자(예를 들어 작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사운드엔지니어, 캐스팅 디렉터, 메이크업 아티스트, 프로듀서 등) 중 두 명 이상이 여성, LGBTQ. 성소수자, 소수민족이나 종교인, 신체적·인지적 장애인이어야 한다. 그들 중 한 명은 아시아인, 히스패닉,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동인, 북아메리카나 하와이 원주민일 것.
B2. 책임자 직급이 아닌 기술직 스태프 중 6명 이상이 소수인종, 민족 출신일 것. 
B3. 제작진의 30% 이상이 여성, LGBTQ 성소수자, 소수민족이나 종교인, 신체적·인지적 장애인에 해당할 것. 

세 가지 조건 중 하나 이상 해당하면 기준 B에 충족한다.

기준 C. 산업 접근 및 기회(INDUSTRY ACCESS AND OPPORTUNITIES)
해당 작품을 배급하는 회사와 제작하는 회사는 유급 견습·인턴십에 여성, LGBTQ 성소수자, 소수민족이나 종교인, 신체적·인지적 장애인을 기용하고, 이들에게 교육이나 작업 기회를 제공한다. 

이 두 가지 모두 실시하면 기준 C를 충족한다.

기준 D. 관객 발전(AUDIENCE DEVELOPMENT)
마케팅, 홍보, 배급팀 고위 임원에 여성, LGBTQ 성소수자, 소수민족이나 종교인, 신체적·인지적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나 아시아인, 히스패닉,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동인, 북아메리카나 하와이 원주민 등 비백인을 두어야 조건 D를 충족한다.

기준 A, B, C, D 가운데 두 개 이상 충족해야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있다.

2020년 <기생충> → YES

<기생충>
기생충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개봉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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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A 충족. 영화의 주요 인물 중 비백인 한 명 이상 있다. 심지어 다 비백인이다. 
기준 B 충족. 분장팀, 의상팀 등에 여성 책임자가 있다.
기준 C 충족? CJ엔터테인먼트에서 유급 견습 인터십 등에 여성, LGBTQ 성소수자, 소수민족이나 종교인, 신체적·인지적 장애인을 고용했을 걸로 생각된다.
기준 D 충족.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엔이 곽신애 대표, 총괄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CJ 이미경 부회장 등이 여성이다.

<기생충>은 모든 기준을 충족한 영화다. 분명 아카데미의 변화, 오스카 시상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그린 북> → YES

<그린 북>
그린 북

감독 피터 패럴리

출연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개봉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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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A 충족. 영화의 주요 인물 중 비백인(마허샬라 알리) 한 명 이상 있다.
기준 B 충족. 분장팀, 의상팀 등에 여성 책임자가 있다.
기준 C 확인 불가. 
기준 D 충족(?). <그린 북>의 프로듀서 명단에서 배우 옥타비아 스펜서를 찾을 수 있다.

<그린 북>은 2개 이상 기준을 충족해서 작품상 후보 자격을 획득했다. 다만 <그린 북>은 흑인 피아니스트의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수상 당시 주요 스태프들이 모두 백인 남성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2018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YES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마이클 섀넌, 마이클 스털버그, 옥타비아 스펜서, 더그 존스, 샐리 호킨스, 리차드 젠킨스

개봉 201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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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A 충족. 영화의 주요 인물 중 비백인(옥타비아 스펜서) 한 명 이상 있다.
기준 B 충족. 각본가, 캐스팅 디렉터 등이 여성이다.
기준 C 확인 불가.
기준 D 확인 불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준 C, D 총족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A, B가 이미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에 작품상 자격을 얻을 수 있다. 


2017년 <문라이트> → YES

<문라이트>
문라이트

감독 배리 젠킨스

출연 알렉스 R. 히버트, 에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

개봉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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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A 충족. 영화의 주요 인물 대부분이 비백인이다.
기준 B 충족. 편집감독, 캐스팅 디렉터 등이 여성이다.
기준 C 확인 불가.
기준 D 확인 불가.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역시 기준 C, D 총족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A, B가 이미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에 작품상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흑인,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영화이니 기준 A의 다른 조건들도 충족했을 것이다.


2016년 <스포트라이트> → YES(?)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

감독 토마스 맥카시

출연 마크 러팔로, 마이클 키튼, 레이첼 맥아담스, 리브 슈라이버

개봉 201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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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A 충족. 영화의 주요 줄거리, 주제 또는 내러티브가 소수자 집단에 관한 내용이다.
기준 B 충족(?). IMDb에 등록된 스태프의 30% 이상이 여성이다.
기준 C 확인 불가.
기준 D 확인 불가.

<스포트라이트>는 직접 확인을 통해 명확하게 작품상 기준을 충족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준 C, D 등은 확인이 어려운 한계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고백하자면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를 통해 <스포트라이트>가 아카데미의 새 기준을 충족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보스턴의 카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기에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뉴스위크’는 <스포트라이트>가 새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영화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2015년 <버드맨> → YES(?)

<버드맨>
버드맨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튼,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개봉 201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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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A 불충족(?). 주요 배우는 모두 백인이다. 
기준 B 충족. 프로듀서, 분장팀 책임자 등이 여성이다.
기준 C 확인 불가.
기준 D 확인 불가.

<버드맨> 역시 물음표가 붙는 영화다. 새 기준을 충족했을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스포트라이트>와 마찬가지로 이 기사에 참고하고 있는 두 매체의 보도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기준을 충족한 영화로, ‘뉴스위크’에서는 기준에 맞지 않는 영화로 분류했다.


지난 5년간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들에 아카데미의 새 작품상 기준을 적용해봤다. 좀더 시간이 오래된 영화들 <스포트라이트>, <버드맨> 등이 자격 요견을 갖추지 못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새 기준을 반기는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자격 요건을 획득하는 게 아주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매우 엄격하게 작품상의 기준을 강제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강제한다는 태도 자체에 대한 거부감, 정치적 올바름의 강제가 하나의 검열 장치가 되고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인종, 성적 지향, 종교, 장애 등 다양한 차별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얻고자 하는 아카데미의 노력은 분명 박수를 보낼 일이다. 이 기준이 매우 보편화 돼서 나중에 그런 기준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기 힘들게 된다면 예술성, 창의성에 대한 우려도 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주장해본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