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나도 영화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너무 기자 중심적인 생각이라면 사과드린다.) 영화인이 되고 싶은 이들이라면 찾아봤을 '한국영화아카데미', 일명 KAFA로 불리는 이곳은 한국의 영화 사관학교로 불리며 수많은 걸출한 영화인들을 배출해 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봉준호 감독이 있다. 그외에도 <타짜>(2006)의 최동훈, <봄날은 간다>(2001)의 허진호,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의 이정향 등 수많은 감독들이 영화계에 발을 들이는 첫 관문으로 KAFA에 입학했다. 매년 씨네필들의 사랑을 받았던 KAFA의 졸업영화제가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왓챠에서 개최된다. 11월 1일부터 11월 25일, 4주간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2020 KAFA 졸업영화제. 많은 영화들 중 뭘 봐야 할지 고민인 사람들을 위해 추천작을 소개하고자 한다. 리스트에 없더라도 충분히 좋은 영화들이 많으니 취향에 따라 고르면 실패는 없을 듯하다.
피터팬의 꿈
감독 엄하늘 출연 김신비, 김동휘 러닝타임 29분 장르 드라마/로맨스
12세관람가
2020 제20회 한국퀴어영화제 상영작이자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 대상 수상작인 <피터팬의 꿈>은 남자 고등학생 민하(김동휘)와 상범(김신비)가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일을 담고 있다. 두 소년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서로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정통 멜로를 지향하고 있는 <피터팬의 꿈>은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평에서 "머나먼 대만과 홍콩 옛날 영화의 향수를 진하게 자극해 오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꾸준하게 멜로 영화를 찍어온 엄하늘 감독의 '사랑에 관한 믿음'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순정이 있고, 진정성이 녹아드는 영화를 보고 싶은 이라면 추천.

- 피터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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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엄하늘
출연 김동휘, 김신비
개봉 미개봉
도와줘!
감독 김지안 출연 곽민규, 변중희 러닝타임 25분 장르 코미디
12세관람가
제19회 미쟝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출품작이자 울산단편영화제 우수상 수상작인 코미디 단편 영화 <도와줘!>는 공시생 종수(곽민규)와 치매 증상이 있는 정애(변중희)라는 독특한 조합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자취방에서 쫓겨나기 직전인 가난한 공시생 종수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큰 결심의 순간, 치매 증상이 있는 옆집 할머니 정애가 불쑥 찾아와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영화는 두 사람의 '도와줘'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를 도와주다 보면 뜻하지 못하게 내가 충만해지는 경험을 한 번쯤은 겪지 않나. 어쩐지 그날 하루는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고, 나도 누군가에겐 쓸모가 있는 사람인 것 같고. 영화는 도와주고, 도움받는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과정을 따스하게 그려낸다. 각박한 세상을 살고 있는 이라면 한 번쯤은 믿고 싶은 이야기다.
화천
감독 장민준 출연 윤경호, 윤정훈, 이하은, 송은석 러닝타임 29분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12세관람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단편 경쟁 초청작인 <화천>은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배경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인물들간의 알력은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고등학생 명준(윤경호)과 정호(윤정훈)는 성격은 다르지만 오랜 친구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화로운 어느 날, 정호는 새 자전거를 끌고 온다. "어디서 났어?"라고 묻는 명준에게 정호는 "새로 샀어"라고 답하지만, 명준은 영 미심쩍다. 훔친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던 차에 자전가 주인이 나타난다. 명준은 그에게 자전거를 돌려주라고 하지만, 정호는 그럴 생각이 없다. '자전거'라는 일상적인 물건에 욕망을 덧씌워 드러내는 이 영화는 마지막 명준의 흔들리는 눈빛과 닮아 있다.
수리불가
감독 장현호 출연 김진수, 강말금, 김송일, 박예찬, 고유준 러닝타임 22분 장르 드라마, 가족
12세관람가
8년간의 기나긴 투쟁 끝에 복직에 성공한 에어컨 기사 동수(김진수)는 과연 가족 관계도 수리할 수 있을까. 영화 <수리불가>는 오랜만에 아내의 연락을 받고 간 집에서 자신보다 더 아들과 가까워 보이는 연경의 남자친구를 만나며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동수의 이야기다. 아내와의 미묘한 침묵, 아들의 깍듯함, 어디서도 가족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들에게 고기 한 점을 주지 못해 애매하게 맴도는 젓가락처럼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돌기만 한다. <수리불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역시 김진수 배우의 얼굴이다. 지나가다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그의 얼굴은 지나간 시간을 고치지 못해 씁쓸해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대변하고 있다. 노동운동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다만, 전과 같을 순 없다. 다른 곳에 몰두해 있는 동안, 가족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니까.
한낮의 방문
감독 조경원 출연 김한나, 한해인 러닝타임 11분 장르 판타지, 로맨스
전체관람가
영화 볼 시간이 없다고? KAFA고 뭐고, 집에 오면 잠깐 유튜브 켰다가 자기 바쁘다면 <한낮의 방문>을 추천한다. 짧은 순간, 반짝거리는 이별을 11분이면 볼 수 있다. 해인(한해인)은 1년 전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하며 지낸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가족들은 결국 해인을 이사시키기로 결정하고, 영화는 해인이 이사짐을 싸면서 시작된다. 남편의 옷을 입은 채 짐을 정리하고 있는 해인. 1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해인은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방문객 한나(김한나)가 찾아온다. 새로운 입주자라며 불쑥 찾아온 한나가 영 달갑지 않은 해인. 해인의 시간은 과연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제 나 없이도 괜찮지?"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엄마자격시험
감독 김경연 출연 류지훈, 신연우 러닝타임 14분 장르 드라마
전체관람가
<엄마자격시험>은 엄마자격시험에 통과하지 않으면 엄마가 될 수 없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부모가 가정폭력을 잔인하게 휘두른 기사를 보면, '부모도 자격 시험을 봐야 해'라고 한 번쯤은 생각해보지 않나. 만약, 정말로 엄마가 되기 위해선('부모가 되기 위해선', 이 아닌 점이 아쉽다) 자격시험을 봐야 하는 사회가 온다면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 주인공 명재(류지훈)는 남성이지만 엄마자격시험을 통과해 사회가 인정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한다.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그는 진짜 엄마로 인정받기 위해 시험에 응시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과연 그는 딸에게 '진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뉴스를 보며 한 번쯤은 품어봤던 상상을 짧게 풀어낸 영화다.
ㅈ교생
감독 김경연 출연 박도규, 권한솔, 한해인, 황영국 러닝타임 29분 장르 액션, 드라마
12세관람가
29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액션을 선보인 단편 영화 <ㅈ교생>. 교생실습 마지막 날을 앞두고, 주인공 찬수(박도규)는 폭탄테러범의 문자를 받는다. 단, 폭탄테러범을 막기 위한 평범한 교생 선생님의 사투는 아니다. 폭탄테러범은 찬수의 치명적이고 유해한 비밀을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해 그에게 지시를 내린다. 찬수는 비밀을 지킬 것인가, 학생들을 구해낼 것인가를 두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ㅈ교생>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주제를 단편 액션을 통해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다만 후반부에 갑작스러운 주인공의 변화와 비약은 아쉬움이 남는다.
둥지
감독 조경원 출연 조은형, 김나연, 장해금 러닝타임 20분 장르 드라마
12세관람가
사춘기 감성은 종잡을 수 없다. <둥지>는 왕따인 한둥지(조은형)가 처음으로 동급생의 집을 간 후에 벌어진 일들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중학생 한둥지는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왕따에게 조별과제는 가장 잔혹한 일이다. 모두가 그와 함께 조를 짜기 꺼려하고 있을 때, 반장 최진아(장해금)가 그를 포함해 조를 짠다. 우정이나 책임감 때문은 아니다. 진아는 단지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과제를 위해 진아의 집에 가게 된 둥지는 비싼 노트북과 카메라를 훔치게 된다. 이유는 자기소개영상을 잘 찍기 위해서였다. 전체적으로 연출이 더욱 돋보였던 영화다. 분홍색 반짝이 피처럼 독특한 연출로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표현해 낸 <둥지>는 그 시절, 단단하지 못했던 소녀의 모습을 그려낸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