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웹툰 원작 드라마로 제작 확정 때부터 기대를 모으던 <모범택시>. 이제는 시청률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5월 6일 기준 최고 시청률 17.6%) 간단히 말하면 <모범택시>는 무지개 운수가 그들만의 방법으로 영업하는 이야기다. 택시기사, 경리, 엔지니어. 그럴듯한 구성원과 시설을 갖춘 이 운수 회사의 정체는 복수 대행업체. 무지개 운수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해 복수를 대신하는 택시 회사다. 허름한 차고지 땅 아래에는 <킹스맨> <배트맨> 시리즈에서나 볼 법한 아지트가 있다. 한국 패치를 한 배트모빌과도 같은 ‘모범택시’를 타고 도시를 순회하며 이들의 방법으로 선을 집행한다.

상반기 화제작 <빈센조>의 바통을 받아 인기를 잇고 있는 <모범택시>, 그 중심에는 소위 사기캐로 불리는 김도기(이제훈)가 있다. 특수부대 출신의 그에게는 스물댓 명이 한 번에 달려들어도 거뜬한 체력과, 본래 성격과는 전혀 다른 능청스러움을 연기하는 재치도 있다. 김도기가 만능캐로 그려질 수 있는 데에는, 판을 깔아주는 무지개 운수 직원들의 덕이 있다. 덤 앤 더머 못지않은 최&박 주임을 비롯해, 주축이 되는 캐릭터 곁에서 극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모범택시>의 배우들. 이들의 지난 활약상을 되짚어본다.

모범택시

연출 박준우

출연 이제훈, 이솜, 김의성, 차지연, 장혁진, 배유람, 이유준, 표예진, 이호철, 유승목

방송 2021,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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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운수

표예진경리 안고은
 
지상의 무지개 운수에서 경리를 보는 안고은을 보면 그냥 마냥 발랄한 직원 같지만. 고은의 본래 직무는 자칭 IT 전문가, 타칭 해커. 운수의 지하 본영과 이들의 업장에서 고은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작전 최전선에 투입되는 도기의 뒤를 지키며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업데이트하는가 하면, 때로는 정신이 산만한 동료에 윽박지르기도 할 줄 아는 야무진 직원.

<쌈, 마이웨이>

제작 중간에 투입된 만큼 부담도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청자는 어쩌면 기존 캐스팅보다 어울리는 배우가 연기하게 되었다며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최근 방영분에서는 과거 불법 웹하드 회사에 성범죄 피해를 입었던 친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을 다뤘는데. 세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언니의 동영상을 다시 웹하드 서버에서 발견한 고은은,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이 에피소드가 잘 전달된 것도 배우의 덕을 본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표예진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는 2012년 연기를 시작해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배우다. 시작은 단역이었지만, 숏폼 웹드라마로 경험을 쌓았고. <닥터스>, 인지도 책임지는 KBS 주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거쳐 <쌈, 마이웨이>를 만났다. <쌈, 마이웨이>에서 그는 설희(송하윤)와 만난다는 것을 알고도 주만(안재홍)에게 밑도 끝도 없이 다가가는 주만의 동료 장예진을 찰떡같이 연기해 얄미움을 산 바 있다. 이후에 <VIP>에서도 박성준(이상윤)과 불륜 관계인 온유리 역을 맡아 다시 한번 시청자 뒷골 당기며 커플 브레이커 전문(?) 배우로 등극하기도 했다.


장혁진 엔지니어 최경구
배유람 엔지니어 박진언

무지개 운수의 엔지니어 듀오, 최 주임과 박 주임. 뽀글머리 최 주임과 바가지머리 박 주임은 남다른 케미를 자랑한다. 묵묵한 도기와 대비되어 허당기가 있고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이 두 명 역시 없으면 무지개 운수는 안 돌아간다. 잠입 수사를 하는 도기의 백업을 담당하는 둘, 장혁진과 배유람이 연기했다.

<모범택시>에서 주연 못지않게 조연 배우가 중요한 이유. 조연 캐릭터들이 겉보기에 명랑한 듯하지만 다들 저마다의 과거사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 잔망스러운 연기뿐만 아니라 깊은 감정 연기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기에 극 중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지만, 뒤로 동생의 죽음이라는 아픈 상처를 공유하는 최 주임과 박 주임 역의 경우가 그렇다.

<낭만닥터 김사부>
<찬실이는 복도많지>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배우 중 데뷔가 가장 빠른 장혁진. 1993년 김광석의 ‘그날들’ 뮤직비디오로 연예계에 진출한 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명품 조연으로 주목받아왔다. 스크린과 TV, 무대를 오가며 워낙 다작하는 배우이기에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은 모르는 이들이 많을 터. 장혁진은 지금도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지만, 특히 2016년과 2017년에는 한 해에 10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했다. 대표 캐릭터로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외과장/센터장 송현철, <18 어게인>의 JBC 아나운서국 팀장 허웅기 등이 있다. 그의 차기작은 송혜교장기용 주연의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데뷔는 장혁진보다 당연히 훨씬 느리지만, 필모그래피 길이로는 뒤지지 않는 배유람. 역시 알아주는 신스틸러다. 대중이 기억하는 그의 얼굴은 <응답하라 1988> 속 한국기원의 유유람 과장,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이찬실(강말금)이 잠시 좋아했던 김영, 그리고 <런 온> 속 오미주(신세경)의 영화감독 전 남자친구 한석원 정도겠지만. 독립영화까지 합하면 수백 편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다. 배유람은 곧 <파이프라인>으로 극장을 찾을 예정이다.


낙원신용정보

차지연 회장 백성미

무지개 운수의 대표이자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파랑새 재단의 대표, 장성철(김의성)의 말을 빌려보자. “백 회장에게 조도철은 그냥 우리가 맡긴 물건에 불과하니까. 그런 놈들 맡기기엔 백 회장만한 사람이 없어.” 백 회장은 잔인하기로 알아주는 사채업자다. 장 대표가 범죄자 조도철의 감금을 그에게 의뢰한 건, 그에게 사람은 돈이 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인간 정도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돈에 움직이는 백 회장의 살기에 무게감을 얹은 배우는 차지연.

<레베카>

차지연은 사실 필모그래피 정리로 구태여 설명을 붙일 필요도 없는, 뮤지컬계에서는 ‘믿보’ 배우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인 배우다. <서편제> <아이다> <위키드> <레베카>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뮤(지컬)알못’도 알만한 주요 뮤지컬엔 다 출연했다. 그렇지만 어찌됐든 그의 주 무대는 뮤지컬. TV 출연작으로는 <나는 가수다> <더블 캐스팅>과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드라마에 얼굴을 비친 것은 2011년 <여인의 향기>에서 동명의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10년 만의 드라마에서 짧은 분량과 반비례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으니, 성공적인 복귀라 할 수 있겠다.


이호철 백성미 비서 구석태

백 회장의 수족 구 비서. 지금까지 방영된 전 회차 통틀어 대사가 몇 마디 안 될 만큼 과묵하다. 그저 백 회장의 지시에 따를 뿐. 언제나 우직하게 그의 ‘대모’를 섬기는 충신, 구 비서는 이호철이 연기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혹시 이호철의 얼굴이 익숙하다면 <슬기로운 감빵생활> 덕분일 거다. 극 중 김제혁(박해수)의 첫 감방 룸메이트(?) 중 한 명으로서, 이제 막 구치소에 들어와 혹독한 수감 생활이 익숙하지 못한 제혁과 갈등을 빚기도 했던 갈대봉, 일명 갈매기가 그다. 무표정일 때 특히 험상궂어 보이기 쉬운 외모 때문일까. 갈대봉을 비롯해 지금까지 그가 맡아온 캐릭터는 범죄자 혹은 제2금융권과 관련된 인물이 많았다. 데뷔작 <친구2>에서는 교도소에서 이준석(유오성)을 보좌하는 감방건달을 연기했고, <더 킹> <말모이> <낭만닥터 김사부 2> 등의 작품에서도 건달을 연기했다. 그렇다고 꼭 험악한 캐릭터만 맡아온 건 아니다. <택시운전사>에서는 무려 막둥이, 대학생 홍용표를 연기하기도 했다.


서울북부검찰청

유승목 차장검사 조진우

장 대표의 30년 지기 절친이자 서울북부검찰청 차장검사 조진우. 무지개 운수의 비공식 법조계 연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의와 열정에 불타 담당도 아닌 조두철 사건에 매달리는 후배 검사 강하나(이솜)와는 앙숙인 듯 앙숙 아닌, 알고 보면 애정과 신뢰로 가득 찬 관계를 맺고 있다. 꽤 높은 자리에 서서도 호탕함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조 검사는 유승목이 연기했다.

<1987>

<살인의 추억>에서 수사팀 주위를 맴돌며 기삿거리를 찾던 박 기자. 남일(박해일)과 노숙자(윤제문)을 태우던 <괴물>의 택시기사. 그리고 <해무>의 광기 어린 경구까지. 유승목은 봉준호 영화에만 세 번 출연했다. (<해무>는 봉준호 기획제작.) 그는 감독들이 다시 찾는 배우로 유명한데. 봉준호 감독 말고도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허진호 감독의 <외출> <행복>에 출연하는 등, 한 번 호흡을 맞춘 감독들과 연달아 작업했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터널>과 <1987>을 꼽을 수 있겠다. <터널>에서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를 당장 구하는 것보다 최장 고립 기록이 더 중요한 조 기자를, <1987>에서는 박 처장(김윤석)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악행을 저지르는 유 과장을 연기했다. 지금까지 60편도 넘는 작품에 참여하며 꾸준히 활동해온 유승목은, <파이프라인>과 <유체이탈자>로 곧 극장을 찾을 예정이다.


이유준 수사관 왕민호

백 회장에게 구 비서가 있다면, 강 검사에게는 왕 수사관이 있다. 밤낮으로 나쁜 놈 잡아넣을 걱정뿐인 담당 검사 강하나의 끼니를 걱정해주는 건 왕 수사관뿐이다. 든든한 보필, 왕민호는 검경 전문 배우 이유준이다.

<시그널>

<시그널> 광역수사대 감식 요원 정 경사, <순정에 반하다> 조 형사, <추리의 여왕> 박 경장. 푸근한 인상과, 정갈한 가르마에 얇은 테를 한 안경이 주는 믿음직한 이미지 덕분인지 이유준은 <모범택시> 전에도 수사 기관에 종사하는 인물을 몇 차례 맡았다. 반대로 앞서 소개한 이호철과 같이, 누아르물에서 수사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도 종종 연기했는데. 그가 맡아온 캐릭터명은 대충 이런 식이다. 판호조직원 9(<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도끼(<파파로티>), 박 사장(<암수살인>), 황 사장(<뷰티풀 데이즈>), 클럽양아치(<퍼펙트맨>). 데뷔작도 <바람>이었다. <모범택시>에서는 강하나와 일하지만, 실제 같은 작품에서 연기한 적이 있는 건 무지개 운수 직원들. 이제훈과는 <시그널> <파파로티>로, 표예진과는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함께했다. 이유준의 차기작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다룬 <균>이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