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영화판에선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해마다 수천억을 영화에 쏟아붓는 영화사나 배급사들은 때로 생존을 위해 경쟁상대에게 인수되거나, 결국 합병되는 길을 선택한다. 최근 할리우드 빅 딜로 떠오른 아마존-MGM 인수 소식을 비롯해 그간 할리우드 영화판을 발칵 뒤집은 영화사들의 인수합병사를 정리했다.
아마존 스튜디오 / MGM
84억 5천만 달러
최근 영화 산업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OTT'일 것이다. 코로나19가 극장 산업을 압박한 후 OTT 산업은 영화계의 새로운 활로로 떠올랐다. 기존 OTT 강자 넷플릭스에 이어 월트 디즈니 컴퍼니, 타임 워너, 애플, 파라마운트 등이 이 산업에 칼을 빼든 상황에서 아마존은 자사의 OTT '프라임 비디오'에 힘을 실을 방법을 강구했다. 그래서 아마존이 선택한 초강수, MGM을 인수하는 것이다. MGM은 1930년부터 각종 대작과 사극을 제작한 할리우드의 터줏대감이지만 2010년 파산한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UA의 산하에 들어갔다. MGM이란 이름의 파워가 강한 만큼 2020년부터 여러 회사에서 인수합병을 제안했는데, 2021년 5월 아마존 스튜디오가 최종 인수자로 결정 났다. 이들이 MGM 인수에 들인 돈은 84억 5천만 달러, 한화로 약 9조 원이 넘는다. 회사만 두고 본다면 거액처럼 보이지만 MGM이 소유한 각종 프랜차이즈들, 예를 들어 <007> 시리즈나 <록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로보캅> 등을 고려하면 아마존(과 프라임 비디오)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월트 디즈니 / 루카스필름, 폭스
713억 달러, 40억 5천만 달러
2010년대를 가장 격하게 흔든 영화사라면 단연 월트 디즈니 컴퍼니일 것이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는 타노스에 비유될 정도로 큼직한 인수합병 소식을 두 번이나 전했다. 포문을 연 건 2012년 루카스필름의 인수. 루카스필름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SF 신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작사로 조지 루카스가 제작한 <인디아나 존스> 판권도 가지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40억 5천만 달러(당시 기준 4조 4천만 원)에 루카스필름을 인수했는데 이 금액은 조지 루카스가 월트 디즈니의 마블 스튜디오 인수액 40억 달러보다 높은 금액을 원해서 책정된 것이라고 한다. 월트 디즈니는 루카스필름 인수 이후 그간의 스타워즈 작품 중 실사영화 6부작과 애니메이션 <클론 워즈>만 정식 작품으로 인정해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시퀄 삼부작 7~9편 역시 전체적으로 팬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작품이었는데, 다행히 <만달로리안>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며 현재는 <스타워즈>의 주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근래 월트 디즈니가 전한 폭발적인 뉴스는 20세기 폭스 인수. MGM처럼 1930년대부터 영화계를 쥐락펴락한 기업인데, 영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방송까지 거느린 뉴스 코퍼레이션 산하에 있었다. 사실 20세기 폭스는 위의 MGM만큼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으나 수장 루퍼트 머독과 월트 디즈니의 이해관계가 맞아 인수합병된 케이스다. 당시 루퍼트 머독은 자신이 가진 언론(폭스 뉴스 등)에 집중하고자 했고, 월트 디즈니는 20세기 폭스와 나눠가진 마블 캐릭터의 판권과 (21세기 폭스로 통합된) 20세기 폭스의 각종 방송 채널이 탐났던 것. 월트 디즈니가 20세기 폭스를 인수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했는데, 월트 디즈니가 524억 달러를 제안하자 컴캐스트(유니버설 픽처스의 모기업)가 600억 달러를 부르며 20세기 폭스를 낚아채려 했다. 이에 월트 디즈니는 이보다 한참 높은 713억 달러(현금과 주식으로 당시 78조 9천억 원)를 제안해 20세기 폭스의 주인이 됐다. 월트 디즈니는 20세기 폭스를 20세기 스튜디오라고 명명한 후 1년에 4편 제작하는 방안으로 운영 중이다. <엑스맨> 시리즈, <판타스틱 포>, (구)<스타워즈>를 비롯해 <심슨 가족> <에일리언> <킹스맨>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판권을 소유하게 됐다.
타임 워너 / 뉴라인 시네마
모회사 따라 인수 후 합병
영화 사상 최고의 판타지 대작 <반지의 제왕>을 제작해 일약 스타가 된 뉴라인 시네마는 엄밀히 말해 초특급 스튜디오는 아녔다. <반지의 제왕> 이전 작품들을 쭉 봐도 굉장히 장르와 저예산 영화 친화적인 곳이었다. 대표작도 <닌자 거북이> 시리즈, <나이트메어> 후기작들, <덤 앤 더머>, <마스크>, <세븐>, <모탈 컴뱃> 시리즈 등이니까. 뉴라인 시네마는 1994년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TBS)에 인수됐는데, 1996년 모회사가 타임 워너에 인수되면서 타임 워너의 자회사로 브랜드를 이어갔다. 이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개봉해 수익도, 명성도 챙겨갔으나, 그 후 그만한 대작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2008년 타임 워너는 뉴 라인 시네마를 아예 워너 브러더스 엔터테인먼트에 합병하는 결단을 내린다. 현재 뉴라인 시네마는 워너 브러더스 산하에서 공포 영화나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맡는 공동제작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완다 그룹 / 레전더리 픽처스
35억 달러
2005년 설립한 제작사 레전더리 픽처스는 할리우드식 상업영화를 적극적으로 제작한 곳이다. <다크 나이트> 삼부작을 비롯해 <타이탄> 2부작, <행 오버> 시리즈, <맨 오브 스틸> 등 블록버스터와 소규모 영화 모두 성공시키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빠르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런 성공과는 별개로 현재는 다소 기대 반 의심 반의 제작사가 됐는데, 2016년 중국 대기업 완다 그룹에 인수됐기 때문. 그때를 기점으로 <그레이트 월> 같은 중국 배경 영화나 <퍼시픽 림: 업라이징>에 중국 배우를 출연시키는 등 한국 관객들도 자주 언급하는 '중뽕'이 첨가돼버린 것. 그러나 이후에 정신을 차렸는지 현재는 <명탐정 피카츄>나 <고질라 VS. 콩>처럼 할리우드식 맛을 다시 되찾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굳이 따지면 역사도 짧고 판권을 다수 쥔 배급사가 아니라서 이들의 인수가 할리우드판을 크게 흔든 건 아니다. 다만 중국 자본이 어떤 식으로 할리우드에 접근하고 있는지 보여준 단적인 예. 35억 달러(약 4조 원)를 현금으로 들이부은 완다 그룹의 할리우드 침공을 어떻게 결론 내려질지는 대작 <듄>에게 달린 듯하다.
소니 픽처스 / 콜롬비아픽처스 & 트라이스타 픽처스
34억 달러 / 31억 달러
사실 중국보다 먼저 할리우드를 '인베이드'한 나라는 일본이다. 소니 픽처스가 그 주인공인데, 이야기를 하면 조금 길다. 본래 콜롬비아 픽처스는 1924년 설립된 오래된 메이저 스튜디오인데 수많은 히트작을 남기면서도 여러 번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1982년, 코카콜라 컴퍼니(우리가 아는 그 코카콜라)가 7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던 것. 코카콜라는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와 함께 영상 매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바 픽처스, 지금의 '트라이스타 픽처스'를 설립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87년 코카콜라는 트라이스타에 콜럼비아 픽처스의 지분을 31억 달러에 매각해 두 회사를 '콜롬비아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로 통합시킨다.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분야의 사업을 아우르는 콜롬비아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는 각 분야를 매각하다가 1989년 소니가 과감하게 콜롬비아 픽쳐스를 34억 달러(당시 약 2조 3천억 원)로 사들였다. 소니는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각종 소송과 스튜디오 건설 등 7억 달러가량을 더 소비했다. 인수한 직후 흥행이나 실적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버티면서 현재는 의외로 대박을 자주 터뜨리고 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현재 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 스파이더맨 판권을 톡톡히 활용하고 있으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007 카지노 로얄>부터 <007 스펙터>까지 배급하며 재미를 쏠쏠히 봤다. 모회사가 미국이 아닌 일본 기업인데도 이만큼 버티고 있단 부분에서 독특한 케이스. 현재 모회사 소니의 소프트파워를 이용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실사화'를 기획하고 있고, <베놈> 세계관을 확장한 '소니 픽처스 유니버스 오브 마블 캐릭터스'(SPUMC)를 활성화 중이라서 성공만 한다면 다른 메이저 영화사들을 앞설 기회가 될지도.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