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공포영화 시리즈, '여고괴담'이 무려 12년 만에 후속작을 내놓았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한국 현대 호러 영화 장르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한국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여고괴담>은 소복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나타나는 고전적인 공포영화에서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현대적인 한국의 정서를 세련되게 반영했다. <여고괴담>의 등장으로 한국에서 호러 영화는 변두리에 있는, 마니악한 장르가 아닌 메이저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번에 개봉한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이하 모교)는 <여고괴담> 오마주를 통해 이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 <모교>는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 모교의 교감으로 부임한 은희(김서형)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학교의 문제아로 찍힌 하영(김현수)와 은희는 홀린 듯 학교 내 폐쇄된 화장실로 가게 되고, 그곳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일들의 시작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망각에 가려졌던 진실을 밝혀내는 게 <모교>의 핵심이다.
여고괴담의 제작자,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어, 더욱 많은 주목을 받았던 <모교>. 오늘은 국내 공포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여고괴담>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 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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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미영
출연 김서형, 김현수, 최리, 김형서
개봉 2021.06.17.
첫 번째
<여고괴담>
감독 박기형
개봉 1998년 5월 30일
출연 이미연, 박용수, 김규리, 최강희
1998년에 개봉한 <여고괴담>은 공포라는 장르적 한계를 넘어, 국민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이 성공으로 인해 <여고괴담>은 시리즈물로 기획될 수 있었고 결국 한국 최초, 최고의 공포 영화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마지막 윤재이(최강희)의 점프컷 신과 ‘내가 아직도 네 친구로 보이니?’는 여전히 패러디될 만큼 유명한 장면이다. 박진희, 김규리, 최강희 등 <여고괴담> 시리즈가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준다는 것도 첫 편부터 있었던 얘기다.
<여고괴담> 흥행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었지만, 가장 독특한 지점은 바로 한국 사회, 그중에서도 교내 문제를 다뤘다는 점이다. 왕따와 경쟁체계의 입시제도에 다른 폐해, 교사 개인의 부도덕성과 그로 인한 교내 부조리 등 학교에서 은밀히 행해지던 사회적 문제를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굉장히 매끄럽게 풀어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여고괴담> 시리즈는 ‘학교에 귀신이 찾아오는 것이 아닌, 학교가 귀신을 만들어 낸다’ 라는 주제를 잡게 되었다. 학생들의 울타리처럼 보였던 학교가 사실은 학생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공간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깊은 주제의식과 획기적인 연출, 세련된 공포가 맞물려 <여고괴담>의 성공이 시작되었다. 이후로 6번째 시리즈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1편을 최고로 꼽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한국 공포 영화 중 수작이다.

- 여고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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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기형
출연 이미연, 박용수, 김규리, 최강희
개봉 1998.05.30.
두 번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감독 김태용, 민규동
개봉 1999년 12월 24일
출연 김규리(김민선), 박예진, 이영진, 공효진
1편 흥행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시리즈물로 기획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이하 <여고괴담2>)부터다. <만추>(2011)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과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의 공동 연출작으로 두 감독 모두 첫 상업 영화 연출작이다. ‘동성애’라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소재와 서정적인 연출로 평단에서는 좋은 평을 주었으나, 흥행에는 처참히 실패했다. 지금보다 훨씬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1999년 당시 개봉한 작품이기 때문에 흥행은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에 들어선 <여고괴담> 시리즈 팬이라면 1편과 나란히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공포영화가 아닌, 퀴어 영화라는 얘기가 대부분인 만큼 <여고괴담2>는 무서운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주인공 효신(박예진)과 시은(이영진)이 함께 있는 모습은 어떤 멜로 영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전편 <여고괴담> 스타일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실망스러운 요소였지만, 완전히 새로운 영화라고 생각한 이들에겐 오히려 더 좋은, 새로운 방향성이었다. 실제로 민규동 감독은 전편이 여고‘괴담’이었다면, 자신은 ‘여고’괴담을 찍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학교라는 틀 안에 있기에 으레 학생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민규동 감독은 <여고괴담2>를 통해 ‘아시아에서 10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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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태용, 민규동
출연 김규리, 박예진, 이영진, 공효진
개봉 1999.12.24.
세 번째
<여고괴담 3 - 여우 계단>
감독 윤재연
개봉 2003년 8월 1일
출연 송지효, 박한별, 조안, 박지연
<여고괴담 3 - 여우 계단>(이하 <여우 계단>)은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소원 계단 괴담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28개의 층계로 되어 있는 계단이지만, 아주 간절히 소원을 품고 계단을 오르면 여우가 소원을 들어주고, 그 증표로 29번째 계단이 나타난다는 이야기. 층계는 다를 수 있어도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들어봤던 괴담을 소재로 하고 있는 <여우 계단>은 본격적으로 ‘괴담’에 방점을 찍는다. 사회적인 문제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던 1편과 2편에서와는 달리, 3편 <여우 계단>은 개인적인 욕망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때문인지, <여고괴담> 시리즈 중에서 공포라는 장르를 가장 잘 살린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항상 단짝친구 진성이 옆에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 천재 무용수 소희(박한별)와 서울 발레 콩쿨에 나가게 해달라고 비는 만년 2등 진성(송지효)의 관계는 친구지만 필연적으로 경쟁 구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진성은 소희의 토슈즈에 몰래 깨진 유리를 넣지만, 그걸 신고도 소희는 1등을 거머쥔다. 자괴감과 굴욕감에 고통스러워하던 진성은 소희와 말싸움을 하게 되고, 그러던 와중 실수로 소희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를 다치게 된다. 다시는 발레를 할 수 없게 된 소희 때문 혹은 덕분에 진성은 콩쿨에 나간다. 그렇다면 항상 함께 있게 해달라고 빈 소희의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배경이 된 예고를 굉장히 괴기스럽게 표현해 낸 작품으로 잘 만든 한국 공포영화를 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송지효의 연기자 데뷔작인 만큼, 풋풋한 송지효의 모습은 덤.

- 여고괴담 3 - 여우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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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재연
출연 송지효, 박한별, 조안, 박지연
개봉 2003.08.01.
네 번째
<여고괴담 4 - 목소리>
감독 최익환
개봉 2005년 7월 15일
출연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김서형
<여고괴담>의 네 번째 작품, <여고괴담 4 - 목소리>(이하 <목소리>)는 분류는 공포지만, 무서운 장면은 거의 없다. 오히려 소중한 사람에게 잊히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은 애틋하기까지 하다. 여고생들 간의 미묘한 애정 관계는 물론, 선생님의 애정을 갈구하는 학생까지 섬세한 관계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노래를 잘 부르지만, 조용한 영언(김옥빈)과 그런 영언의 노래를 사랑하는 활기찬 방송부 선민(서지혜)은 둘도 없는 단짝이다. 늦은 밤, 텅 빈 음악실에 홀로 남아 노래 연습을 하던 영언은 자신의 노래에 화음을 쌓는 소리를 들었고, 그렇게 살해당했다. 신체를 잃고 목소리만 남은 영언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선민에게 계속해서 다가간다. 선민은 그런 영언이 두려우면서도 친구기에 외면하지 못한다. ‘누군가 강한 애착을 품고 있으면 귀신도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 라는 설정은 완벽한 죽음은 망각에서 시작된다는 걸 보여준다. 배척되고 싶지 않다는 여고생들의 욕망과 동성애 코드, 마지막 반전까지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탄탄하다는 평이 대부분. 다만, 중간에 루즈해진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 여고괴담 4 -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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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익환
출연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김서형
개봉 2005.07.15.
다섯 번째
<여고괴담 5>
감독 이종용
개봉 2009년 6월 18일
출연 오연서, 장경아, 손은정, 송민정, 유신애
여고괴담 10주년 기념작으로 나온 <여고괴담 5>는 동반자살을 키워드로 진행된다. 하지만 <여고괴담> 시리즈 중 최악이라는 평과 함께 <여고괴담> 시리즈 팬들 사이에서도 잊힌 존재다. 10주년 기념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흥행과 평단 평가 모두 처참할 정도였다. 이 때문인지 2009년 <여고괴담 5>를 마지막으로 무려 12년간 속편이 나오지 않았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칠 정도로 꼬아 놓은 스토리와, 그럼에도 평평하고 빈약한 플롯이었다. 스토리가 탄탄하고, 서정시처럼 진행되는 영화라면 2편과 4편처럼 공포라는 장르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지만, <여고괴담 5>는 공부 잘하는 학생의 질투와 욕망을 굉장히 클리셰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남자친구의 등장은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여성 간의 긴밀한 유대와 관계를 표현했던 시리즈의 전통을 고려하지 않은 연출이었다.

- 여고괴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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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종용
출연 오연서, 장경아, 손은서, 송민정, 유신애
개봉 2009.06.18.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