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흥행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완성도? 스타 캐스팅? 적절한 개봉일? 그것들만큼이나 제작사, 배급사가 신경 쓰는 요소가 하나 있으니 바로 ‘관람 등급’이다. 특히 성민만 관람할 수 있는 청소년 관람불가(이하 ‘청불’)와 보호자가 있으면 누구라도 관람할 수 있는 15세 관람가는 관객 동원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최근 몇몇 영화들은 등급을 낮추기 위해 여러 차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문을 두드려 영화 팬들의 궁금증을 샀다. 재심, 삼심에 도전한 영화들은 어떤 등급을 받았을까.
<킬러의 보디가드 2>
15세 삼고초려, 실패
두 캐릭터의 입담과 킬러를 보호해야 하는 코믹한 설정, 그러면서도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2017년 의외의 흥행 돌풍을 만든 <킬러의 보디가드>. 이 영화는 원본에서 일부를 삭제, 블러 처리해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지난 6월 23일 개봉한 <킬러의 보디가드 2> 또한 1편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심의를 여러 차례 받았는데, 전편보다 폭력 수위가 높아진 탓에 3차 도전에도 결국 청불 판정을 받았다. 그 때문일까, 아니면 코로나19 때문일까. 전편이 세운 160만 관객 돌파에 비하면 일주일간 30만 관객에서 머물고 있다.

- 킬러의 보디가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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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패트릭 휴즈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사무엘 L. 잭슨, 셀마 헤이엑
개봉 2021.06.23.
<특송> & <인질>
15세 삼고초려, 마침내 성공
반면 아직 개봉 전인데도 심의 신청 사례 때문에 영화 팬들에게 뜨거운 감자가 된 한국 영화 2편이 있다. 바로 <특송>과 <인질>이다. 두 작품은 청불 판정을 받고 두 번이나 재심의를 신청했다. <특송>과 <인질> 모두 세 번째 심의에서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특송>은 박소담, 송새벽, 김의성, 정현준이 출연하는 범죄 영화로 뭐든 배송하는 은하(박소담)가 한 아이를 태워서 겪게 되는 사건을 그린다. 아마도 범죄 조직이 연루된 스토리에서 꽤 잔혹한 묘사가 있었던 모양. <인질>은 배우 황정민이 납치를 당해 탈출을 감행하는 이야기로 황정민이 직접 황정민을 연기한다(!). 코믹함이 느껴지는 설정인데, 첫 심의에서 청불이 나와서 기다리는 관객들의 궁금증만 증폭시켰다고. 두 영화의 행보를 두고 코로나19 시대에 한 명이라도 더 모으는 방법이 옳다는 의견과 그럼에도 원본을 보지 못하게 된 게 아쉽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특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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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대민
출연 박소담, 송새벽, 김의성, 정현준
개봉 미개봉

- 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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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필감성
출연 황정민
개봉 2021.08.00.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청불에서 15세로 일군 '판데믹 승자'
2020년 코로나 시국에서 가장 달달한 수익을 올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또한 재심의로 15세 관람가에 안착한 케이스. 최초 심사 버전은 공포감 조성과 폭력 수위로 청불을 받았으나 이후 50초 정도를 드러낸 재심의 버전은 15세 관람가로 등급이 낮아졌다. 사실 극장에 개봉한 15세 버전 또한 유혈 표현과 폭력 장면이 범상치 않긴 했다. 더 화끈한 액션을 꿈꾼 관객에겐 아쉬울 선택이지만, 등급을 낮춘 덕분에 청소년층까지 잡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기간 동안 435만 명을 동원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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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홍원찬
출연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 박소이
개봉 2020.08.05.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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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홍원찬
출연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
개봉 2020.10.28.
<타짜: 원 아이드 잭>
<신의 한 수: 귀수편>
시리즈를 이어받는 두 영화의 자세는?
청소년 관람불가로 대성공을 거둔 영화의 후속편이라면, 속편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전편 따라 청불을 간다, 아니면 보다 넓은 연령층을 잡도록 등급을 낮춰야 간다. <신의 한 수>의 속편 <신의 한 수: 귀수편>과 <타짜>의 속편 <타짜: 원 아이드 잭>은 둘 다 후자를 택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명확하게 달랐다.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전작처럼 바둑을 가미한 액션 영화로 노선을 잡았다. 때문에 첫 심의 결과는 청소년 관람불가가 나왔으나, 약 1분가량을 거둬내고 재심의를 거쳐 15세 관람가로 확정됐다. 인물들 간의 폭력이나 신체 훼손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데, 얼마나 직접적인 방법으로 해를 가하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 반면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재심의를 거쳤지만 그대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아 원판대로 개봉했다. <타짜> 시리즈가 처음부터 도박과 사기, 내기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청불을 피할 수 없었던 것. <타짜: 원 아이드 잭>, <신의 한 수: 귀수편>은 각각 210만 명, 220만 명을 동원해 엇비슷한 성적을 냈는데, 결과적으론 적은 제작비를 들인 <신의 한 수: 귀수편>이 우세승인 셈.

- 신의 한 수: 귀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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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리건
출연 권상우, 김희원, 김성균
개봉 2019.11.07.

- 타짜: 원 아이드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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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권오광
출연 박정민, 류승범, 최유화
개봉 2019.09.11.
<써니>
흥행 만든 신의 한 수
등급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겠어? 싶다면 <써니>의 사례를 보자. <써니>는 처음 심의에서 청불 판정을 받았다. 욕설이 너무 많고 폭력적인 묘사가 강했던 것. 그래서 제작진은 전체적으로 ‘매운맛’을 조금 빼고 좀 더 발랄한 이미지를 주력한 버전을 만들어 재심의를 받았다. 그렇게 15세 관람가를 받은 <써니>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중장년층과 학생들의 고민과 우정에 공감한 청소년층 모두를 사로잡아 824만 관객을 모아 초대박을 냈다. 이후 청불 버전을 ‘감독판’으로 공개했는데, 극장판보다 이야기는 풍부하지만 확실히 불필요한 부분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써니>가 어떤 걸로 개봉했더라도 흥행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추억으로 가득한’ 이미지는 아녔을지 모른다.

-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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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강형철
출연 유호정, 심은경, 강소라, 고수희, 김민영, 홍진희, 박진주, 이연경, 남보라, 김보미, 민효린
개봉 2011.05.04. 2011.07.28. 재개봉
<8마일>
<에일리언>
<해피 투게더>
시대의 흐름
반면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등급 변화도 있다. 재개봉이나 기획전 상영을 앞둔 영화들도 심의를 다시 받는데, 예전과 달리 유해진 사회 관념에 힘입어 청불에서 15세 관람가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에미넴이 주연을 맡은 <8마일>은 과격한 디스 장면이나 노출 없는 베드신이 있어 청불을 받았는데, 힙합문화가 대중화된 이후엔 15세 관람가로 하향 판정됐다. 선혈 표현이 뚜렷해 청불을 받은 <에이리언>도 기획 상영을 앞두고 재심의를 받았는데, SF 영화 속 폭력은 특히 관대하다는 풍문대로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이런 영화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건 <해피투게더>가 아닐까.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는 양조위와 장국영이란 스타가 출연했음에도 1997년엔 동성애를 그린다는 이유로 개봉을 금지당했다. 1998년 개봉하긴 했으나 삭제판이었고 2007년 무삭제 개봉도 청불을 받았었다. 그러나 2020년, 리마스터링 기념 재개봉으로 재심의를 받았을 땐 청불도 아니고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연배가 있는 관객이라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부분이다.

- 8 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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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커티스 핸슨
출연 에미넴, 킴 베이싱어, 브리트니 머피, 안소니 마키
개봉 2003.02.21. 2017.05.09. 재개봉

- 에이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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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톰 스커릿, 시고니 위버, 베로니카 카트라이트, 해리 딘 스탠튼, 존 허트, 이안 홈, 야펫 코토
개봉 1987.10.01.

- 해피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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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 양조위, 장첸
개봉 1998.08.22. 2021.02.04. 재개봉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