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오점도 없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박찬욱 감독도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을 두고 절대 안 본다. 내 흑역사다. 세계 어디서든지 내 회고전을 한다고 할 땐 데뷔작과 두 번째 영화 <3인조>는 빼고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데뷔작으로 알고 잇는 분들이 많은데 계속 그렇게 알았으면 좋겠다.”며 과거 자신의 작품을 부정했다. 이렇듯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영화감독이라면 비켜갈 수 없는 걸작과 졸작사이. 그 사이를 오고간 국내 감독들을 모아 보았다. 만약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차이가 있는 감독을 알고 있다면 댓글로 알려 주시길!


김지운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인랑>

(왼쪽부터)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네이버 영화에 김지운감독을 치면 거장, 한국 최고의 흥행 영화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뜬다. 실제로 그는 1998<조용한 가족>을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한 다음, <장화, 홍련>으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후 그는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를 연이어 만들며, 장르 불문, 스타일리시한 영화로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악마를 보았다>는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한국 영화 팬층을 만드는 데 기여한 작품이다로맨틱 코미디 단편 <사랑의 가위바위보>(2013) 이후 그는 다시 <밀정>(2016)으로 돌아와 제5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감독상을 수상하며 국내 최정상 영화 감독임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인랑>을 연출하게 된다.

영화 <인랑>(2018)

<인랑>1999년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이후인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은 이 이야기를 통일을 준비 중인 근미래 시점으로 옮겼고, 이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인랑>에서도 김지운의 스타일리시함은 여전히 존재했다.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인 미술적인 요소들이 <인랑>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갑형 갑옷과 붉은 눈동자는 어색함 없이 구현됐다. 하지만, 이게 다라는 게 문제였다. 어색한 연기에 시종일관 무표정함만을 유지하는 강동원, 내러티브 간 너무나 약한 연결성으로 인해 영화는 평론과 대중 모두에게서 외면받고 말았다. 전형적인 용두사미식 스토리에 대중은 실망을 금치 못했고, 이는 김지운의 필모그래피에 거대한 오점을 남기게 된다.

(왼쪽부터) 영화 <인랑> / 애니메이션 <인랑> (프로텍트 기어는 정말 잘 구현해냈다)
장화, 홍련

감독 김지운

출연 임수정, 염정아, 김갑수, 문근영

개봉 200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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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감독 김지운

출연 이병헌, 김영철, 신민아

개봉 200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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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

감독 김지운

출연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개봉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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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달은... 해가 꾸는 꿈>, <3인조>

(왼쪽부터) <달은... 해가 꾸는 꿈>(1992) / <3인조>(1997)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감독, 박찬욱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데뷔작 <달은해가 꾸는 꿈>과 다음 작품 <3인조>를 자신의 흑역사로 취급하며, “할 수만 있다면 그 두 작품을 없애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달은해가 꾸는 꿈>은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 이승철이 주연을 맡았음에도 첫날에 반짝 흥행한 후,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암흑가의 건달이 조직 보스의 정부(나현희)를 사랑하다가 살해당하는 내용으로, 그의 특징인 세밀한 미장센과 실험적인 음악 배치가 눈에 띈다. 다만, 지나치게 비장한 내레이션과 연기라고 하기에 머쓱한 배우들의 모습은 이승철과 박찬욱의 조합이라 해도 영화를 살리기 어려웠다. 서울 관객 6649명을 기록하며 쓸쓸히 막을 내린 덕분에, 박찬욱은 그 이후로 5년 간 연출을 할 수 없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

그로부터 5년 후, 그가 야심차게 선보인 작품이 <3인조>였다. B무비 감성을 한껏 집어넣으려 했던영화지만, 대중을 의식해 수위를 낮췄다고 한다. 영화는 조직폭력배 문(김민종)이 조직생활에 신물이 나 총들을 가지고 달아나면서 시작된다. 시나리오는 훨씬 거칠었으나, 원래대로 만들기엔 여러 가지 외부적 장애물이 많아 박찬욱 감독이 생각했던 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연이은 흥행 참패로 그는 3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들게 된다. 이후 복수 3부작, <박쥐>(2009), <아가씨>(2016) 등 줄줄이 흥행(<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는 의견이 분분하니 제쳐두자)하며 한국 영화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달은... 해가 꾸는 꿈>에 비해 <3인조>는 다소 어정쩡한 것 빼고는 박찬욱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구석이 있으니 한번 쯤은 봐도 좋을 듯하다. 무려 왓챠에 있다.

(왼쪽부터) <공동경비구역 JSA> / <올드보이>(2003)
달은... 해가 꾸는 꿈

감독 박찬욱

출연 이승철, 나현희, 송승환

개봉 199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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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조

감독 박찬욱

출연 이경영, 김민종, 정선경

개봉 199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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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

감독 박찬욱

출연 이영애, 이병헌, 송강호, 김태우, 신하균

개봉 2000.09.09. / 2015.10.15.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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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감독 박찬욱

출연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개봉 2003.11.21. / 2013.11.21.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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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왕의 남자>, <사도>, <동주>
 <키드 캅>

<키드 캅>(1993)

<왕의 남자>(2005)로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잡은 이준익도 실패는 있었다. 물론, 그가 한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나, 데뷔작 <키드 캅>은 무려 10년 동안이나 메가폰을 잡지 못하게 한 작품이다. 실제로 그는 데뷔작이 은퇴작이 됐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키드 캅>은 백화점에서 도둑을 잡는 초등생들의 모험담으로 어린이 영화의 형식을 빌려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고따위 없이 유치하다. 다만, 그가 당시로써는 굉장히 드문 아동이 주역인 어린이 영화로 데뷔한 이유는 아이들이 자막을 읽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쥬라기 공원>(1993)과 같은 날 개봉한 <키드 캅>은 흥행에 실패했고, 그는 이후에 무모한 시도는 진화를 더디게 한다. 그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기회마저 나로 인해 박탈당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왕의 남자> / <사도>(2015)

그는 <황산벌>(2003)10년 만에 감독직에 복귀해 소위 중박을 치고 이후 2년 뒤, <왕의 남자>로 천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초대박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지금도 천만 관객을 넘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당시 천만 관객 동원이 얼마나 거대한 성공인지 가늠이 간다. 이후 다시 <라디오 스타>(2006), <즐거운 인생>(2007), <님은 먼곳에>(2008)로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들을 만들던 그는 <사도>로 다시 한번 크게 흥행에 성공하고, 이후 초저예산 영화 <동주>(2016)까지 입소문을 타 흥행했다

<동주> / 타공인 역사물 장인, 이준익 감독
키드 캅

감독 이준익

출연 이재석, 김민정

개봉 199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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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감독 이준익

출연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이준기

개봉 200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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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화려한 휴가>
 <7광구>

<화려한 휴가>(2007)

최근에 개봉한 <싱크홀>(2021)의 감독, 김지훈도 한국 영화 역사에 다른 의미로 큰 획을 그은 감독이다. 그는 2007,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로 흥행에 성공하여 유명 감독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야심을 담아 한국 최초 3D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이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7광구>(2011).

<7광구>

<7광구>는 한국 영화 최초로 아이맥스 DMR 3D로 개봉한 야심 찬 영화였다. 바다 위 석유시추선에서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1802컷의 분량 중 CG1748컷을 차지할 만큼 CG에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18개가량의 세트 제작, 거기에 CG작업까지 자본을 총동원하며 만든 <7광구>는 추락도 거대했다. 가장 신경 쓴 CG가 어색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사이버 세계 같은 이질감 때문에 관객은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고, 스토리와 전개가 이를 뛰어넘을 만큼 탄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캐릭터 설정에 억지스러움이 있어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소였다.

<타워>(2012)

이후 그는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타워>로 재기를 꿈꾸지만, 이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2012년부터 2021년까지, 그는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2021, 그는 코미디 재난 영화 <싱크홀>을 선보였다. 그는 장르적인 결합이 어려웠다. 재난 상황 속에서 관객이 어떻게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할지 고민했고,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고 말하며 마음고생이 심했을 10년을 털어내고 있었다. 

(왼쪽부터) <7광구> / <싱크홀>
화려한 휴가

감독 김지훈

출연 김상경, 안성기, 이요원, 이준기

개봉 200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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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광구

감독 김지훈

출연 하지원, 안성기, 오지호, 박철민, 송새벽

개봉 201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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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감독 김지훈

출연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

개봉 201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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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감독 김지훈

출연 차승원, 김성균, 이광수, 김혜준

개봉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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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
 <우묵배미의 사랑>, <화엄경>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왼쪽부터) <우묵배미의 사랑>(1990) / <화엄경>(1993)

한국 영화에 장선우만큼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온 감독은 없을 것이다. ‘졸작과 걸작 사이라고는 하지만, 한 쪽이 너무나 강해 다른 쪽이 묻힐까 우려스러움도 있지만, 역시 한국에서 졸작의 최고봉하면 빼놓을 수 없기에 넣게 되었다. 사실 장선우는 백상예술대상,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을 정도로 촉망받던 감독이었다. 1986<서울황제>로 데뷔한 그는 샐러리맨의 야망을 다룬 영화 <성공시대>(1988)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이후 연출한 로맨스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으로는 흥행에 성공하여 촉망받는 감독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불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화엄경>은 무려 제4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화엄경>이 개봉했을 1993년 당시, 해외에서 주목받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고려해보면, 그의 이력은 굉장히 화려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꽃잎>(1996)까지 흥행과 평단 모두 호평을 받던 그는 정말로 촉망받던, ‘아방가르드한 한국 영화를 이끌 감독이 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던 감독이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전까지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인해 그는 다시는 영화감독직을 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당시 스타였던 임은경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는데, 가상현실게임이라는 당시로써는 굉장히 파격적인 소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작비 110억 원, 제작 기간 3년의 거대한 프로젝트였는데 개봉이 2002년이었음을 떠올렸을 때 110억 원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상상할 수 있다. 2000년엔 새우깡이 500원이었다. 현재는 1300.

바로 '그' 장면 / 힌트 : 짜장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가상현실과 현실이 혼재된 채로 성냥팔이 소녀(임은경)를 구하는 게 주요 골자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러한 간단한 스토리조차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범인이 이해하긴 어려운 난해한 스토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특히 110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퀄리티가 압권인데,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배우들의 연기 역시 영화를 끝장나게 한다. 말 그대로 끝장났다. 네티즌들은 감동의 연속, 돈 주고 본 게 눈물 난다.”, “먼 훗날 마약이 지구에서 사라졌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신 마약류다.”라며 영화를 평가했다. B급 정서가 먹히는 지금, 과거의 내가 사회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던 걸까, 하고 다시 영화를 다시 보았지만 아직은 시기가 이른 듯하다.

화엄경

감독 장선우

출연 오태경

개봉 199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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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감독 장선우

출연 임은경, 현성

개봉 200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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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