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이 인간이 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다양한 인종과 국적이 돋보였던 <이터널스> 출연진, 그중에서도 크레딧 최상단을 장식한 배우 젬마 찬의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초월적인 사랑으로 지구를 지키려 고군분투하던 세르시를 연기할 자로 조용한 카리스마와 따스한 눈빛을 지닌 젬마 찬이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하긴 어렵다. <이터널스>를 통해 할리우드의 핵에 자리 잡은 젬마 찬에 대한 사실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1. 법대생이었다

젬마 찬은 옥스퍼드 우스터 컬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런던의 대형 로펌 슬로터 앤 메이(Slaughter and May)에서 수습 변호사 계약 제안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성적을 자랑했지만, 전공 대신 꿈을 택했다. 콜린 퍼스, 마이클 패스벤더, 톰 하디, 에밀리아 클라크 등 다양한 배우들을 배출한 연기 학교, 드라마 센터 런던에 입학한 그는 배우로서 기본기를 다지며 자신에게 올 기회를 기다렸다. 이후 영국 영화 프로듀서 데미안 존스의 눈에 띈 그는 곧바로 에이전시와 계약했고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했다. 


2. 모델 출신 배우다

공포 시리즈 <웬 이블 콜스>(When Evil Calls)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 커리어를 쌓은 젬마 찬. 그가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배우이기 이전, 모델로서 런웨이를 걸으면서부터다. 젬마 찬은 차세대 최고 패션 디자이너들의 경쟁을 담은 리얼리티 쇼 <프로젝트 런웨이>의 영국 버전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캣워크> 시즌 1에 출연했다. <프로젝트 캣워크>는 12명의 패션 디자이너, 모델 지망생 중 최고의 한 명을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젬마 찬은 첫 시즌 결승에 오른 세 모델 중 한 명으로 얼굴을 알렸다. 젬마 찬은 ‘코스모폴리탄’을 포함한 수많은 잡지에 얼굴을 비추는 패션모델로 활동하며 드라마 스쿨의 학자금을 벌었다.


3.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2009년부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펼친 그지만, 한국에 그의 존재감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통해서일 터. 뉴요커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가 알고 보니 아시아의 최고 재력가였던 남자친구 닉 영(헨리 골딩)의 가족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지난 10년간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남았고, 관객과 비평가들의 호평을 동시에 얻었다. 

젬마 찬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아스트리드 영을 연기했다. 엄청난 부는 물론, 미모에 따스하고 이타적인 성품까지 지닌 아스트리드 영은 이 영화에서 가장 완벽한 인물이다. 알고 보면 젬마 찬은 아스트리드 영 역 대신 주인공 레이첼 우 역을 제안받았었다고. 하지만 원작 소설을 읽고 아스트리드와 사랑에 빠진 그는 “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인 아스트리드를 연기하길 원했다. 젬마 찬은 “아스트리드는 보이는 게 전부인 인물이 아니다. 겉보기엔 모든 걸 갖추고 있는 것 같지만, 겹겹이 레이어가 쌓인 복잡함을 지녔다”며 아스트리드 영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유를 설명했다. 캐릭터 그 자체가 된 듯,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 젬마 찬은 모든 장면을 빛나게 해주는 존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감독 존 추

출연 양자경, 젬마 찬, 콘스탄스 우, 아콰피나, 헨리 골딩

개봉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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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명 시리즈에 다수 출연했다
<닥터 후>
<셜록>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 출연하기 전부터 할리우드에선 제 구역을 분명하게 넓혀 나가고 있는 배우였으니.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유명 시리즈 크레딧 대부분에서 젬마 찬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배우라는 수식어를 막 얻었을 무렵, 그는 드라마 <닥터 후>의 스페셜 에피소드 ‘더 워터스 오브 마즈’에서 극중 화성 기지 보위 베이스 크루 중 막내인 미아를 연기했다. 드라마 <셜록> 시즌 1의 두 번째 에피소드 ‘더 블라인드 뱅커’에선 국립 고대 박물관에서 일하는 도자기 전문가 수린 야오 역을 맡았다.

<신비한 동물사전>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크리스 파인이 잭 라이언을 연기한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에선 CIA 요원 에이미를, <신비한 동물사전>에선 미국 마법 의회 MACUSA 의회의 일원인 마담 야저우로 얼굴을 비췄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에선 악의 세력 디셉티콘을 부리는 쿠인테사로 등장해 모션 캡처 및 실사 연기를 펼쳤다.

<휴먼스>

<휴먼스>는 그가 주연을 맡아 시즌 3까지 이끌었던 유명 시리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신스가 인간의 삶에 녹아들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SF 시리즈. 젬마 찬은 작품에 중심에 선 휴머노이드 애니타를 연기했다. 젬마 찬은 이 작품을 통해 영국 매체들이 그해 최고 작품과 배우를 꼽는 브로드캐스팅 프레스 길드 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5. MCU 작품 두 편에 출연했다

젬마 찬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두 명의 캐릭터를 연기한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다. MCU 내 그의 첫 캐릭터는 <캡틴 마블> 속 미네-르바. 크리 제국 산하 스타포스 소속의 저격수인 그는 극 중 캡틴 마블(브리 라슨)과 대립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젬마 찬은 미네-르바의 파란 피부를 위해 피부 위로 네 겹의 페인트를 덧발라야 했고, 4시간에 다다르는 분장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그녀가 다시 한번 마블 스튜디오의 러브 콜을 받은 작품은 <이터널스>다. 물질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터널 세르시를 연기했다. 짧은 기간 내, 같은 세계관에 속한 두 편의 작품에서 각각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는 드물었기에 젬마 찬의 캐스팅에 대해 모두가 궁금증을 품고 있었던 상황. 젬마 찬은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래와 같이 상황을 설명했다.

<캡틴 마블>에서 미네-르바는 세상을 떠나죠. 그래서 마블로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아쉬웠죠. 이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관련한 시상식에서 케빈 파이기와 마주했는데, 그가 갑자기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당신을 조금 더 잘 활용하고 싶어요.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또 다른 당신의 캐릭터를 원해요.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봅시다”라고요.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 빨리 그 시기가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

- 젬마 찬

<이터널스> 촬영 현장

젬마 찬은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로 우리 곁을 찾을 예정이다. 올리비아 와일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돈 워리 달링>에 해리 스타일스, 플로렌스 퓨 등과 함께 출연했고, Apple TV+로 방영될 <엑스트라폴레이션즈>(Extrapolations)를 촬영 중이다. 이후 존 데이비드 워싱턴, 베네딕트 웡과 함께 출연할 <트루 러브>(True Love), 소피아 부텔라, 존 말코비치와 함께 캐스팅된 영화 <쿠쿠>(Cuckoo)의 촬영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터널스>의 이후 이야기에서 그녀를 만나볼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 앞으로 더 다양한 캐릭터로 관객을 찾을 젬마 찬의 매력적인 필모그래피를 기대해 보자.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