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는 확실히 흥의 민족 DNA가 있는 것 같다. 뮤지컬, 음악 영화에 열광하고, 차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여 결국은 싱어롱 상영관으로 달려간다. 다 같이 하이라이트 OST를 노래할 때의 그 벅찬 기분이란. 뮤지컬 영화를 보며 한 번쯤은 따라 불렀던, 흥 많은 씨네인들을 위해 오늘은 영화 속 뮤지컬 OST들을 준비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곡 위주로 선곡했으니 흥의 민족 DNA를 잠시 깨워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단, 애니메이션까지 포함하게 되면 리스트가 끝도 없이 길어질 듯하여 아쉽지만 실사 뮤지컬 영화만 포함했다. 만약 내 인생 최고의 뮤지컬 영화 OST가 없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라라랜드>
Another Day Of Sun
뮤지컬 영화계의 스타, <라라랜드>(2016)의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해 보려 한다. <라라랜드>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뮤지컬 영화로, 많은 영화팬들의 인생작으로 꼽힌다. 1940년대 할리우드의 황금기의 미장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세련된 연출은 물론, OST 역시 빼어나 2017년 골든글로브 주제가상과 음악상을 수상했다. 수상한 OST는 영화의 메인테마라 할 수 있는 'City of Stars'지만, 오프닝 시퀀스의 ‘Another Day Of Sun' 역시 많은 팬들이 최고의 곡으로 꼽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라라랜드>를 인상깊게 보지 않은 관객들도 오프닝만큼은 기억에 남는다고 할 정도. 첫 장면이 가장 재밌었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라라랜드>의 제목, ‘La-la-land'는 한 마디로 환상의 세계, 꿈의 나라를 뜻한다. 현실과의 연결을 끊은 세계로, 행복을 보장하지만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공간이다. 1970년대 후반 즈음, 할리우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화산업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꼬집기 위해서도 쓰였는데, 영화는 이를 이용하여 “Here's to the fools who dream”(꿈꾸는 바보들에게)라는 태그라인을 만들었다. 꿈속에 살고, 현실을 모르는 바보 같은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그들이 필요하다. 'Another Day Of Sun'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라라랜드>가 말하는 ‘Fools'(바보)인 셈.

- 라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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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개봉 2016.12.07. 2020.12.31. 재개봉
<위대한 쇼맨>
This Is Me
단전에서부터 자신감이 차오르길 원한다면 고민 않고 <위대한 쇼맨>(2017)의 'This Is Me'를 추천하고 싶다. 괴물이라 불리며 차별받고 학대당해온 주인공들은 서커스라는, 어쩌면 그들을 가장 괴이한 존재로 만드는 그 공간 안에서 스스로를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힘 있는 자존감은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에너지가 아닐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위대한 쇼맨>의 OST 앨범은 국제음반산업협회 글로벌 앨범 세일즈 통계 결과, 2018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영화에 관한 논란과는 별개로, 앨범 수록곡 모두 명곡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건 단연 타이틀곡인 'This Is Me'. 이 곡은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차트인하며 영화 OST로서는 이례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다.

- 위대한 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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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이클 그레이시
출연 휴 잭맨, 미셸 윌리엄스, 잭 에프론, 레베카 퍼거슨, 젠데이아 콜먼
개봉 2017.12.20. 2020.05.21. 재개봉
<디어 에반 핸슨>
You Will Be Found
<디어 에반 핸슨>(2021)은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작사/작곡가인 파섹 앤 폴이 작사와 작곡을 맡은 작품이다. 동명의 뮤지컬이 원작인 <디어 에반 핸슨>은 사회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에반 핸슨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는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데, 어느 날 동급생 코너에게 편지를 빼앗기고 만다. 얼마 뒤, 코너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의 편지가 코너의 유서로 오해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토록 바라던 세상의 관심을 동급생의 죽음을 통해 얻게 된 에반 핸슨의 성장담을 다룬 작품이다.
뮤지컬 넘버 중 단연 돋보이는 건, ‘You Will Be Found'. 의역하자면, '우리가 당신을 찾을게요' 정도인데, 누군가 자신의 외로움을 알아주길 바랐던 에반 핸슨이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유독 지치고,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날 들으면 눈물 버튼이 되어 줄 노래.

- 디어 에반 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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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출연 벤 플랫, 케이틀린 디버, 줄리안 무어, 에이미 아담스, 아만들라 스텐버그, 닉 도다니, 콜튼 라이언
개봉 2021.11.17.
<시카고>
Cell Block Tango
<시카고>(2003)는 뮤지컬 감독이었던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영화로 1920년대 미국 시카고의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명인들의 화려한 스캔들과 비리, 부패 등을 다루며 단순히 음악적, 무대적 재미를 넘어 작품성도 거머쥔 작품이다. 뮤지컬 영화로서는 굉장히 드물게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영화는 문란한 밤과 재즈, 살인이 뒤섞인 시카고에서 무대를 동경하는 록시 하트와 그 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벨마 켈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재즈시대 시카고에서는 진실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다. 중요한 건, ‘얼마나 이슈가 되느냐’뿐. 록시 하트는 변호사 빌리 플린과 합작해 살인마저 하나의 쇼처럼 구성한다. 쇼는 성공적이었고, 모든 관심은 벨마 켈리에서 록시 하트로 옮겨져 간다. ‘All That Jazz'도 유명하지만 살인마저 쇼처럼 꾸며진, 진실이 중요치 않은 시카고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건 역시 'Cell Block Tango'가 아닐까. 여섯 명의 살인자들이 보여주는 교도소 탱고는 저마다의 사연을 통해 살인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장황히 늘어놓는다. 그중, 쇼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단 한 명의 진실된 자만이 유죄 판결을 받는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이다.

-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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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롭 마샬
출연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 존스, 리차드 기어
개봉 2003.03.28. 2016.12.15. 재개봉
<맘마미아!>
Dancing Queen
스웨덴의 전설적인 팝 그룹, ABBA의 노래들로만 구성된 뮤지컬 ‘맘마 미아!’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단숨에 할리우드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다. 그리스의 칼로카이리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싱글맘 도나(메릴 스트립)와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유쾌한 ‘아빠 찾기’ 이야기로 소피가 자신의 결혼식을 앞두고 우연히 엄마 도나의 일기를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빠가 누군지 모른 채 살았던 소피는 아빠로 추정되는 세 인물에게 모두 초대장을 보내 섬으로 불러들이게 되고, 도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만나게 된다. <맘마미아!>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영상미와 따뜻한 주인공들의 관계, 흥겨운 ABBA의 노래들 덕분에 힘든 날에 유독 꺼내 보고 싶어지는 영화로 손꼽힌다. 그중에서도 ‘Dancing Queen'은 관객이 몇 살이든 가장 아름다웠던 17살로 데려다준다. 마을 여성들 다같이 ’Dancing Queen'을 부르며 행진을 하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 <맘마미아! 2>에서는 호텔 개업 축하연을 망친 소피를 위해 아버지들이 선원들과 함께 호텔로 와 모여 노는 장면으로 재등장했다.

- 맘마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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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필리다 로이드
출연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스텔란 스카스가드, 아만다 사이프리드
개봉 2008.09.03.

- 맘마미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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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올 파커
출연 아만다 사이프리드, 릴리 제임스,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제레미 어바인, 콜린 퍼스, 휴 스키너, 스텔란 스카스가드, 조쉬 딜란
개봉 2018.08.08.
<드림걸즈>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
<드림걸즈>(2007)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드림걸즈’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미국의 흑인 여성 트리오 ‘슈프림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60년대 비틀즈 못지않게 엄청난 인기를 끈 3인조 그룹이었지만, 다이애나 로스와 슈프림즈, 라고 불릴 만큼 다이애나 로스가 주축이었다. 영화에서는 그 역을 당대 최고의 디바, 비욘세가 맡아 화제가 되었다. 최고 디바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 오리지널 곡인 ‘Listen'으로 비욘세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표현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가장 주목을 받은 곡은 바로 제니퍼 허드슨의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 그는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제6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드림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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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빌 콘돈
출연 제이미 폭스, 비욘세, 에디 머피, 제니퍼 허드슨
개봉 2007.02.22. 2021.08.26. 재개봉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클래식은 영원하다' 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작품, <오페라의 유령>(2004)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1911년에 출판한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큰 틀로,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을 각색해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1860년 프랑스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소위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가진 크리스틴과 그의 뒤에서 그를 돕는 정체불명의 사내 팬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뮤지컬로 제작된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영화화를 결심한 조엘 슈마허 감독은 무려 16년간 영화화를 시도하고, 뮤지컬의 형식을 스크린에 옮겨 오는 데 성공해 여전히 뮤지컬 영화하면 회자되는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OST 중, 메인테마인 ‘The Phantom Of The Opera’는 영화의 미스테리함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명곡으로 손꼽힌다.

- 오페라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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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슈마허
출연 제라드 버틀러, 에미 로섬
개봉 2004.12.08. 2016.12.15. 재개봉
<레미제라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역시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레미제라블>(2012)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어야 하지 않을까. 'Do you hear the people sing?’(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이라며 외치는 민중의 함성은 관객을 순간, 프랑스 혁명 시절의 파리로 데려간다. 자유를 위해 연대하는 끈끈함, 그리고 숭고한 가치를 위해 희생한 자들을 하나하나 비춰주며 마무리되는 마지막 연출은 많은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이에는 배우들의 열연과 노래 실력이 한 몫 크게 했는데, 러셀 크로우를 제외하고 모두 노래 경력이 있는 배우들이었다. 휴 잭맨은 연극/뮤지컬 분야에서는 최고의 상으로 꼽히는 토니상 수상자며, 본래 뮤지컬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아만다 사이프리드 역시 <맘마미아!>를 통해 실력을 입증한 바 있다. 앤 해서웨이는 어렸을 적부터 합창단 활동을 하며 메조소프라노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사만다 바크스는 본업이 뮤지컬 배우이며, 이미 뮤지컬에서 에포닌 역을 맡은 바 있었다. 탄탄한 배경 덕분에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되었으며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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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톰 후퍼
출연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헬레나 본햄 카터, 사샤 바론 코헨
개봉 2012.12.19.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