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와 2위의 간극은 컸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압도적인 성적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이하 <퍼스트 에이전트>)는 개봉 주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2위의 자리를 굳건히 기록했다. 매튜 본 감독은 2015년부터 <킹스맨> 시리즈에 매달렸다. 2015년 이전 몇 년간은 연출작이 없다. 그런 까닭에 그의 전작들이 어떤 작품이었는지 단번에 떠올리지 못했다. 이런 사소한 이유를 빌미로 <킹스맨> 이전, 매튜 본 감독의 전작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
감독 매튜 본
출연 랄프 파인즈, 해리스 딕킨슨
개봉 2021.12.22.
<레이어 케이크>(2004)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한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 등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리던 매튜 본. 그가 직접 감독 의자에 앉아서 연출한 첫 영화가 <레이어 케이크>다. 2004년 개봉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 시대의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다. 다만 <레이어 케이크>는 크레이그가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가 <007> 시리즈처럼 부각되는 영화는 아니다. 복잡하게 엃힌 구도, 꽉 짜인 플롯이 진짜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수백만 파운드의 가치를 지닌 마약을 둘러싼 갱단, 세르비아 민병대 출신들, 마약상, 판매책, 중개상 등이 모두 주인공이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여러 배우들이 출연하는 앙상블 캐스팅과 같은 요소는 리치 감독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영상 테크닉 역시 리치 감독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레이어 케이크>의 원작자 J. J. 코널리는 “매튜 본이 가이 리치보다 훨씬 훌륭한 감독”이라고 평했다. 이유는 리치와 달리 복잡한 플롯에 캐릭터를 희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름 없는 주인공 크레이그의 존재감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크레이그는 이 작품으로 본드 역을 따냈을지도 모른다.

- 레이어 케이크
-
감독 매튜 본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톰 하디, 시에나 밀러, 제이미 포어맨, 샐리 호킨스, 번 고먼, 조지 해리스, 타머 해선, 콤 미니, 마르첼 유레스, 프란시스 매지, 디미트리 안드레아, 케네스 크랜햄
개봉 2005.09.16.
<스타더스트>(2007)
<레이어 케이크>의 후속작 <스타더스트>는 의외의 선택처럼 보인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매튜 본 감독과 판타지 장르는 어쩐지 어색한 조합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의 원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1997년작인 동명 원작 소설은 닐 게이먼이 썼다. 게이먼은 현존하는 10대 포스트모던 작가라는 평가를 듣는다.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의 소설을 쓰며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하다. 매튜 본 감독은 이 원작을 충실히 영화로 옮겼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높은 완성도와 낮은 흥행 성적을 얻었다. 게이먼과 본의 만남은 성공적이면서도 한편으로 낯선 판타지라는 점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스타더스트>는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같은 판타지와는 다른 영역의 작품이었다. 그럼 점에서 상상을 해보자. 만약 <스타더스트>가 10년 뒤에 나왔다면? 이를테면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 사이에 나왔다면 전혀 다른 흥행 스코어를 기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스타더스트
-
감독 매튜 본
출연 찰리 콕스, 클레어 데인즈, 미셸 파이퍼, 로버트 드 니로, 시에나 밀러
개봉 2007.08.15.
<킥 애스: 영웅의 탄생>(2010)
보라색 가발을 쓴 11살의 히로인. 그의 이름은 힛걸이다. <킥 애스: 영웅의 탄생>(이하 <킥 애스>)에서 어린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한 이 작은 영웅은 그 나이 소녀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한다. 거친 욕설은 기본이고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장면을 가감 없이,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묘사한 것도 물론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랬던 것 같다. 지금, <킥 애스>를 처음 보게 본다면 어떨까. <데드풀>과 <로건>을 본 관객이라면 그다지 놀랍지 않을지도 모른다. <데드풀>의 B급 정서와 짓궂은 농담, <로건>의 로라(다프네 킨)가 보여준 19금 액션이 더 수위가 높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이런 가정을 한 것은 <킥 애스>가 당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더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온갖 농담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이상한 영웅의 성장 스토리가 은근히 감동적이라는 점이다. 그게 <킥 애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 킥 애스: 영웅의 탄생
-
감독 매튜 본
출연 애런 존슨, 클로이 모레츠, 니콜라스 케이지, 마크 스트롱, 크리스토퍼 민츠 프래지
개봉 2010.04.22.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
말하자면 <킥 애스>는 슈퍼히어로의 마이너 리그에 속한 작품이다. 1부 리그는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이 등장해야 한다. 사실 아이언맨도 처음엔 2부 리그 소속이라고 봐야 할 테다. 물론 2008년 MCU의 시작인 <아이언맨> 이후 모든 게 달려졌지만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매튜 본 감독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이하 <퍼스트 클래스>)를 통해 메인스트림에 입성했다는 거다. <엑스맨>이라는 거대한 프랜차이즈의 리부트를 책임질 정도로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엑스맨>의 부활을 알린 훌륭한 리부트를 완성해내기까지 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퍼스트 클래스>에서 <레이어 케이크>부터 <킥 애스>까지 이어지는 본 감독 특유의 정서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굳이 우리가 아는 다른 유명 감독과 비교를 해보자. 저예산 공포영화 <쏘우> 시리즈를 만들던 제임스 완이 <분노의 질주: 더 세븐>과 <아쿠아맨>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정말 실력 있는 감독은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
감독 매튜 본
출연 제임스 맥어보이, 마이클 패스벤더, 케빈 베이컨, 제니퍼 로렌스, 재뉴어리 존스
개봉 2011.06.02.
<퍼스트 에이전트>의 개봉을 맞아 <킹스맨> 시리즈 이전의 매튜 본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봤다. <킹스맨> 시리즈의 감독으로 워낙 익숙해졌지만 과거에 그가 만들었던 다양한 영화를 다시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