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이제훈
이제훈이 다채로운 배우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에겐 <파수꾼>, <고지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처럼 예민함이 서려 있는 얼굴도 있는 한편, <건축학개론>, <아이 캔 스피크>와 같이 순수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표정들도 들어있다. 그중에서도 이제훈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인상 깊었던 작품을 하나 선정하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박열>을 고르고 싶다. 실제 1920년대 일본 열도를 흔들었던 조선 청년 박열을 주인공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작품 <박열>에서 이제훈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얼굴을 선보였다. 사방으로 지저분하게 뻗친 머리, 낯선 수염, 거친 피부에서 그간의 멀끔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훈은 “테스트 촬영 때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라며 “내가 이런 모습을 해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 역시 촬영장에서 알아보지 못했다고. 그는 “누가 앞에서 걷는데 이제훈이었다. 내가 내 작품의 주연배우 얼굴을 못 알아봤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