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칸 영화제가 5월 17일 개막을 앞두고 초청작들을 발표했다. 특히 올해엔 박찬욱의 새 영화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한국영화' <브로커>가 경쟁부문에, 배우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 <헌트>가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다.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그리고 두 작품과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합을 벌일 경쟁부문 후보작들을 추려 소개한다.


헤어질 결심
박찬욱

박찬욱은 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한국 감독이다. 2003년 <올드보이>가 처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으면서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렸고, <박쥐>(2009)와 <아가씨>(2016) 역시 경쟁부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발표하는 새 장편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실족사를 수사하는 형사가 사망자의 아내를 만나 그를 의심하면서도 매혹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평소 박찬욱이 존경을 바쳐온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이 떠오르는 설정. 사망자의 아내를 탕웨이, 형사를 박해일이 연기하는 가운데 이정현, 고경표, 박용우 등이 조연을 맡았다. 오랜 시나리오 파트너 정서경과 함께 각본을 썼고, (할리우드에서 맹활약 중인 정정훈의 자리에) <달콤한 인생>, <밀정>, <남한산성> 등을 찍은 김지용이 촬영감독을 맡았다.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헤어질 결심>만큼이나 한국 관객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또 다른 작품,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다.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는 프랑스에서 제작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외국어 영화 <브로커>를 연출했다.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배두나, 이주영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빚에 허덕이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과 보육원에서 자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는 베이비 박스에 있던 아이를 몰래 데려가지만, 다음날 엄마 소영(이지은)이 아이를 찾으러 오고, 소영은 상현 동수와 함께 아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형사 수진(배두나)과 후배(이주영)이 조용히 뒤쫓는다. <기생충>의 촬영감독 홍경표와 음악감독 정재일이 참여했다.


크라임스 오브 퓨처
Crimes of the Future
데이빗 크로넨버그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맵 투 더 스타>(2014) 이후 8년 만에 신작 <크라임스 오브 퓨처>를 공개한다. 신체 변형이 보편화된 머잖은 미래, 유명 퍼포먼스 아티스트 사울(비고 모텐슨)은 파트너 카프리스(레아 세두)과 함께 공연 중에 자기 몸이 변형되는 걸 보여준다. 국립 장기 등록소의 수사관 팀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사울을 이용해 인간의 다음 진화 단계를 밝혀내려는 의문의 집단을 추적한다. 1970년에 발표한 초기작과 제목이 같지만, 리메이크는 아니다. 다만 칸 경쟁부문 초청 소식과 동시에 배급사가 공개한 티저 예고편과 시놉시스는 '바디 호러'의 선구자였던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크로넨버그의 의지가 물씬하다. <비디오드롬>, <플라이>, <크래쉬>, <엑시스텐즈> 등에 열광한 이들이라면 <크라임스 오브 퓨처>를 학수고대할 수밖에.


토리와 로키타
Tori et Lokita
Tori and Lokita

다르덴 형제

1999년 <로제타>부터 여덟 작품 모두가 칸 경쟁부문 후보에 올라, 황금종려상만 두 번이나 수상한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은 3년에 한 편 꼴로 새 영화를 발표하고 있다. 신작 <토리와 로키타> 역시 어김없이 올해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사춘기 소녀 토리와 그보다 어린 소년 로키타가 각자 홀로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와 망명하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나누는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여덟 편 중 여섯이 굵직한 상들을 차지했던 다르덴 형제이기에, 필모그래피 처음으로 흑인 캐릭터를 주인공 삼아 '망명'과 '우정'을 파고드는 <토리와 로키타>는 무슨 상을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RMN
RMN
크리스티안 문쥬

처음 칸 경쟁 후보에 오른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의 작품 역시 때마다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한번도 빈손으로 돌아간 적이 없다. 2012년 작 <신의 소녀들>은 여우주연상을, 2016년 작 <엘리자의 내일>은 감독상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문쥬의 신작 <RMN>은 다르덴 형제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외국에서 일하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 트란실바니아로 돌아온 마티아스는 옛 연인인 키실라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갈등하게 되면서 마을의 평화롭던 분위기는 산산조각 난다. 미지의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의 두려움과 본능을 파고드는 <RMN>은 두 주연 배우를 제외하곤 비전문 배우들을 섭외해 사실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슬픔의 트라이앵글
Triangle of Sadness
루벤 외스틀룬드

스웨덴의 루벤 외스틀룬드 또한 칸 영화제가 꾸준히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다. <분별없는 행동>(2008)이 '주목할 만한 시선', <플레이>(2011)가 '감독 주간'에 초청된 데 이어 한국에서도 개봉한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2014)은 주목할 만한 시선의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그리고 <더 스퀘어>는 2017년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됐다. <슬픔의 트라이앵글>의 이야기는 이렇다. 부유한 모델 커플이 열혈 마르크시스트 소유의 호화 유람선에 초대되지만 곧 무인도에 좌초되고, 요리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청소부가 먹이사슬 꼭대기로 올라서면서, 지금까지의 위계질서는 완전히 뒤집힌다. 돌연한 사고를 통해 기존의 질서가 일거에 무너지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린다는 점에서 <포스 마쥬어>가 떠오른다.   


홀리 스파이더
Holy Spider
알리 압바시

2018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2010년 홍상수의 <하하하>가 수상한 바 있다)을 받은 <경계선>의 감독 알리 압바시는 4년 만의 새 영화 <홀리 스파이더>로 처음 칸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가부장적인 남자 사이드는 이란의 매춘부 도시 마샤드를 정화하고자 여성들을 살해하고, 세상이 자기의 사명을 알아주지 않자 절망에 빠진다. <경계선>이 판타지와 로맨스가 만난 독특한 설정이 돋보였다면, <홀리 스파이더>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란에서 나고 자라 20대 초반 유럽으로 적을 옮겨 덴마크에서 영화 공부를 시작한 압바시는 <경계선>에서부터 서서히 고국 이란의 현실에 관한 날선 시선을 영화에 담아내고 있음을 내다볼 수 있다.  


아마겟돈 타임
Armageddon Time
제임스 그레이

<아마겟돈 타임> 촬영 현장

각각 20세기 초 아마존, 21세기 말 우주를 배경으로 한 근작 <잃어버린 도시 Z>(2016)와 <애드 아스트라>(2019)를 만든 제임스 그레이는 <이민자>(2013) 이후 9년 만에 칸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범상치 않은 제목이 마치 전작들의 웅장한 설정을 떠올리게 하는데, <아마겟돈 타임>은 뉴욕 퀸스에서 자란 감독의 유년 시절을 기반으로 한 자전적 영화다.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2020)에서 톰 홀랜드의 아역을 맡은 마이클 뱅크스 레페타가 주인공 소년을, 그 부모를 앤 해서웨이와 제레미 스트롱이, 소년이 존경하는 할아버지를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했다. 2020년 당시엔 케이트 블란쳇, 로버트 드니로, 오스카 아이작, 도날드 서덜랜드 등이 캐스팅 돼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이 미뤄지면서 현재와 같은 배우진이 모이게 됐다.


스타스 앳 눈
The Stars at Noon
클레어 드니

<파이어>

지난 2월 <파이어>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클레어 드니는 또 다른 신작 <스타스 앳 눈>으로 칸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아스트 가운데 하나지만 칸은 도통 드니를 경쟁부문에 초청하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그의 데뷔작 <초콜렛>(1988) 이후 34년 만에 칸 경쟁부문에 올랐다. 미국 소설가 데니스 존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타스 앳 눈>은 니카라과 혁명 당시 영국인 사업가와 미국인 기자가 음모에 휘말려 니카라과를 탈출하던 중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HBO 드라마 <레프트오버>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의 마거릿 퀄리가 미국인 기자를 연기했고, 본래 로버트 패틴슨과 태런 에저튼 등이 예정돼 있었던 영국인 사업가 역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출연한 조 앨윈이 맡았다. 드니는 설정대로 니카라과에서 찍길 원했지만 독재자 다니엘 오르테가가 재선하게 되면서 파나마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쇼잉 업
Showing Up
켈리 라이카트

<어떤 여자들>

유수의 영화 전문가들이 2020/2021년 최고의 영화로 선택한 <퍼스트 카우>의 켈리 라이카트 역시 그 이름값에 비해 유독 칸 영화제와 연이 없었던 감독이다. <웬디와 루시>(2008)가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게 전부다. <웬디와 루시>를 시작으로 <믹의 지름길>(2010), <어떤 여자들>(2016) 등에 출연해온 미셸 윌리엄스가 다시 한번 주인공에 캐스팅된 새 영화 <쇼잉 업>은 커리어의 터닝포인트가 될 전시회를 앞두고 일상과 주변의 관계로부터 마주하게 되는 혼란 속에서 영감을 얻는 여성 아티스트의 이야기다. 라이카트의 오랜 시나리오 파트너 조나단 레이몬드와 함께 쓴 <쇼잉 업>은 그의 거의 모든 전작처럼 오리건 주 포틀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아내
Жена Чайковского
Tchaikovsky's Wife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야만적인 폭력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 칸 영화제의 편애를 받는 러시아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새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아내>도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그는 작년 칸 경쟁 부문에서도 <페트로프의 독감>을 선보인 바 있다. 제목 그대로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아내 안토니나 밀류코바가 중심에 선 영화인데, 아마도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키와 그에게 열렬히 구애했던 음악원 제자 밀류코바의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채 파탄나버린 결혼 생활을 그릴 전망이다. 세레브렌니코프는 한국 배우 유태오가 러시아 뮤지션 빅토르 최로 캐스팅 한 <레토>를 연출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이오
Hi-Han
EO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당나귀 발타자르>

폴란드의 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는 지난 30년간 4개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과작의 감독이다. 그동안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각본상을 받았던 스콜리모프스키의 작품이 최근 칸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건 '감독 주간' 개막작이었던 <안나와의 나흘 밤>(2008)이었다. <11분>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EO>는 무려 로베르 브레송의 걸작 <당나귀 발타자르>(1966)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한 농장에서 사랑받고 자라 온갖 고난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는 <당나귀 발타자르> 속 숭고한 시선을, 스콜리모프스키는 폴란드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