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다룬 영화 <공기살인>이 지난 22일 개봉했다. 모티브가 된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 대참사다. <공기살인>은 봄이면 나타났다 여름이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의 실체와 17년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와 증발된 살인자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투를 그린다. 김상경은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아내를 잃는 의사 정태훈 역을 맡아 피해자이자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로 등장해 극을 이끈다.
김상경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1급기밀>이 그랬고 <타워>, <몽타주>, <살인의뢰> 등 김상경의 많은 필모그래피가 재난, 범죄, 사회고발 영화들로 채워졌다. 그중 다섯 편을 추려 소개한다.

- 공기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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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용선
출연 김상경, 이선빈, 윤경호, 서영희
개봉 2022.04.22.
<살인의 추억>(2003)
김상경은 유독 형사 역을 많이 맡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살인의 추억> 서태윤 형사다. 1986년 경기도, 젊은 여성이 무참히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2개월 후, 비슷한 수법의 강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서울 시경에서 자원해 온 형사 서태윤과 지역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이 특별수사본부에 배치된다. 서태윤은 사건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고, 육감으로 대표되는 박두만은 동네 양아치들을 만나 자백을 강요한다. 둘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김상경은 수사본부 형사 중 가장 이성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극 후반부로 갈수록 범인이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에 분노하며 감정적으로 변해가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실화극이며,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 와요>가 원작이다. 2019년 9월, 사건의 증거품에서 발견된 DNA 분석 끝에 진범은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춘재로 밝혀졌다. <살인의 추억>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미국 LA타임즈와 인터뷰를 통해 “범인을 잡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 온 경찰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 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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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김상경
개봉 2003.04.25.
<타워>(2012)
<타워>는 <화려한 휴가>로 함께 호흡을 맞춘 김지훈 감독의 작품이다. 김상경은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의 시설관리 팀장인 싱글대디 대호를 연기했다. 영화는 108층 초고층 빌딩 타워스카이에서 벌어진 대형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다. 크리스마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 예기치 못한 화재 사고가 발생한다. <타워>는 최악의 화재 속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아낸다. 김상경은 화재 발생 후 소방관들에게 건물의 내부 구조를 설명하고 길을 안내하며 화재를 진압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주는 캐릭터로 등장해 몸을 사리지 않은 연기 투혼을 펼친다.
설경구가 전설의 소방관 영기를 맡았고, 타워스카이의 푸드몰 매니저로 손예진이 출연한다. 여기에 김인권, 이한위, 김성오, 박철민 등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고 차인표, 안성기, 송재호가 극의 무게감을 더한다. 특히 이들은 타워스카이 곳곳에서 불과의 사투를 벌이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분해 각자의 이야기를 가슴 뭉클하게 풀어내며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위기 상황이 연속적으로 벌어지지만, 꼭 살아서 나가야만 하는 이들의 드라마는 인간애와 가족애의 메시지를 전하며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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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지훈
출연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
개봉 2012.12.25.
<몽타주>(2012)
15년 전, 한 유괴범이 종적을 감춘다. 범인은 공소시효가 끝나기 5일 전, 사건 현장에 꽃 한 송이를 갖다 놓는다. 그로부터 며칠 후 15년 전 사건과 동일한 범죄가 되풀이된다. <몽타주>는 미제 유괴사건의 공소시효가 단 5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나뿐인 아이를 잃고 깊은 슬픔 속에 살아 온 엄마 하경(엄정화)과 미제사건에만 매달려 온 형사 청호(김상경), 그리고 동일한 방식의 유괴사건으로 눈앞에서 손녀를 잃은 한철(송영창)까지. <몽타주>는 15년 만에 나타난 범인을 다시 잡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을 맞은 세 인물을 쫓는다.
<해운대>, <댄싱퀸>, <오로라 공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엄마 역을 선보인 엄정화가 <몽타주>에서는 가슴 시린 아픔을 간직한 모성애를 그려낸다.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 이후 10년 만에 미제사건 담당 형사를 연기했다. “그동안 의도적으로 형사 역할을 피한 적도 있었다. <몽타주>의 청호는 지금까지의 형사 캐릭터들과 분명 다르다”라며 작품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살인의 추억>에서 죽도록 잡고 싶었던 바로 그 범인을 <몽타주>에서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몽타주>를 통해 그동안 풀지 못했던 카타르시스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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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근섭
출연 엄정화, 김상경, 송영창
개봉 2013.05.16.
<1급기밀>(2016)
세계 최장기 정치범으로 기록된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의 삶을 다룬 <선택>, 1997년 이태원의 패스트푸드 가게 화장실에서 한 남자 대학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두 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처벌받지 않은 미제 사건을 재조명한 <이태원 살인사건>. <1급기밀>은 <이태원 살인사건>, <선택>을 연출한 故 홍기선 감독 사회고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2002년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와 2009년 방산비리를 폭로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화했다.
홍기선 감독은 <1급기밀>의 촬영을 마친 뒤 2016년 12월 15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1급기밀>은 그가 8년간 준비해온 작품으로 2009년 <이태원 살인사건> 개봉 직후 <1급기밀>의 시나리오를 작업했고, 2010년 본격적으로 기획, 제작에 나섰다. 김상경은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는 항공부품구매과 박대익 중령 역을 맡았다. 국익이라는 미명으로 군복 뒤에 숨어 사건을 은폐하려는 집단에 맞서는 용기 있는 인물을 그려내 주목을 받았다. 2015년 <살인의뢰> 이후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며, <살인의 추억> 이후 또다시 실화극에 도전해 특유의 진중하면서도 인간미와 넘치는 매력을 선보였다.

- 1급기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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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홍기선
출연 김상경, 김옥빈, 최무성
개봉 2018.01.24.
<사라진 밤>(2018)
<사라진 밤>은 스페인 영화 <더 바디>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죽음이 늘 마지막은 아니다’라는 원작의 설정에서부터 영화의 기획이 시작됐다. 나홍진, 윤종빈, 허정 감독 등을 배출해내며 신인감독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 미쟝센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 출신 이창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아내 (김희애)를 살해하고 완전범죄를 계획한 남편(김강우). 몇 시간 후 국과수 사체보관실에서 아내의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김상경은 남편을 의심하며 사건에 집착하는 형사 중식 역을 맡았다. <살인의 추억>, <몽타주>, <살인의뢰> 등 기존 그려왔던 진중한 형사 캐릭터와 달리 허술한 듯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냉철한 판단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인물을 연기하며 극적 재미를 더했다. 아내를 죽인 남편과 그를 의심하는 형사 중식을 두 축으로, 한정된 공간에서의 팽팽한 대립과 내적 갈등을 보여주며 주목 받은 작품이다.

- 사라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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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창희
출연 김상경, 김강우, 김희애
개봉 2018.03.07.
씨네플레이 봉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