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다시 봄’이라는 주제로 제 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코로나 19로 인해 2년 간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이 날은 관중과 함께하는 시상식으로 활기를 더했다. 또한, 이 날 시상식은 배우 조현철의 아버지를 향한 특별한 수상 소감이 더해져 눈길을 끌었다. 아버지를 향한 응원부터 청심환을 먹을 만큼 떨렸던 수상의 순간까지, 감동과 웃음을 준 국내 배우들의 수상 소감을 모았다.
조현철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5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조연상은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조현철에게 돌아갔다. 조현철은 <D.P.>에서 폭력의 고리를 끊으려 노력하는 조석봉 역을 맡아 극이 흘러갈수록 폭발하는 감정을 흡입력 있게 선보이며 호평 받았다. 조현철은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습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의 투병 사실을 알렸다.
“아빠가 지금 보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빠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마당 창 밖으로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죽음이라는 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작년 한 해 동안 내 첫 장편 영화였던 <너와 나>라는 작품을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라며 소감을 이어갔다.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소란스러운 일들 잘 정리하고 금방 가겠습니다. 편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라고 덧붙이며 아버지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을 전했다.
진선규 “친구들이 코 세워준다고 계까지 붓고 있는데...”
진선규의 수상 소감은 지켜보는 이들까지 응원하게 만들 만큼 순박함으로 가득했다. 진선규는 <범죄도시>의 악역, 장첸(윤계상)의 오른팔 위성락 역으로 등장해 실감나는 조선족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7년, <범죄도시>로 제 38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자 진선규는 터지는 울음을 숨기지 못하며 무대에 올랐다. 객석에서 “잘생겼다”라는 외침이 들리자 눈물을 참으면서도 “잘생긴 건 아닌데”라고 할 말을 다해 웃음을 자아냈다. “너무 떨려서 청심환까지 먹고 왔다”는 진선규는 떨리는 마음을 드러내며 “여기 어디선가 앉아서 보고 있을 제 와이프 박보경. 배우인데 애 둘 키우느라 고생도 많은데. 너무 고생 많았고, 사랑해”라며 말문을 뗐다.
이어 고향에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친구들이 제 코가 낮아서 안 된다고, 코 세워준다고 계까지 붓고 있는 친구들인데 진짜 고마워”라고 길었던 무명 시절을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또한, “제가 지금 언급을 못 한 분들은 순차적으로 전화를 돌리겠습니다”라며 “저는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서 조금씩 나아가는 배우가 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마무리했다. 진선규는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연신 인사를 하며 무대를 내려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천호진 “여보 약속 지키는데 34년 걸렸네”
천호진은 가족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으로 2017년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데뷔 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대상 트로피를 거머쥔 만큼 수상소감도 특별했다. 드라마 방영 중에 상을 받게 된 천호진은 “아직 저희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아서 제가 받지 않겠습니다. 이 상은 세상 모두의 부모님들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도 어느 부모의 아들이기 때문에, 저희 아버님이 조금 몸이 안 좋으십니다. 빨리 완쾌되시면 좋겠고, 진심으로 제가 이 상을 전해 드리고 싶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라며 소감을 이어갔다. “여보, 연애할 때 한 약속을 지키는데 34년 걸렸네. 너무 늦었다. 미안해. 당신만 허락하면은 내 다음 생에 당신하고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네. 꼭 약속 지킬게”라고 아내에 대한 진심을 전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천호진은 이후 3년 뒤,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로 또 한 번 연기대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나문희 “나의 친구 할머니들, 제가 이렇게 상 받았어요”
‘국민 할매’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로 제 55회 대종상 영화제,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제 3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민원왕 할머니 나옥분 역을 맡아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가슴 울리는 열연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후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를 사랑해주신 관객 여러분, 너무 감사 드립니다. 지금 아흔여섯이신 우리 친정어머니의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나문희의 부처님께 감사 드립니다.”라며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종교의 대통합을 이뤄내며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역대 최고령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였던 그는 “정말 저는 오늘 마음을 비우고 와야지, 많이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니까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늙은 나문희에게 큰 상을 주신 청룡영화상 주최 분들께 너무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구요, 나의 친구 할머니들, 제가 이렇게 상 받았어요. 여러분들도 그 자리에서 다 상 받으시길 바랍니다.”라며 “여배우들의 자존심이라기 보다는 할머니들의 희망이 될 수 있어 기쁘다”라며 영예의 순간을 할머니들에게 돌렸다.
천우희 “유명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제 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은 ‘작은 영화’ <한공주>에 출연한 ‘유명하지 않은’ 배우 천우희가 수상했다. <우아한 거짓말>의 김희애, <공범> 손예진, <집으로 가는 길> 전도연, <수상한 그녀> 심은경 등 쟁쟁한 배우들이 천우희와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천우희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 <한공주>에서 한공주 역을 소화하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수상에 성공했다.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천우희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무대에 올랐다.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우선 이수진 감독님과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같이 고생한 스태프, 배우들, 관객 한분 한분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또한 “저에게 이 상을 주신 게 포기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배우하면서 의심하지 않고 정말 자신감 가지고 열심히 배우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관심과 가능성이 더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연기 보여 드리도록 노력할게요."라고 소감을 전해 많은 격려를 받았다.
김혜자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2019년 제 55회 백상예술대상, 배우 김혜자의 아름다운 수상 소감은 현장에 있던 많은 배우들을 눈물 짓게 했다. 김혜자는 <눈이 부시게>에서 치매로 인해 과거에 갇혀 사는 혜자 역을 맡아 세대를 뛰어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김혜자는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인생 드라마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 시청자 분들께 감사 드린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수상 여부를 몰랐던 김혜자는 “혹시 몰라서 인사말을, 여러분이 많이 좋아해주셨던 내레이션을 이야기 해야지 그랬는데, 아무리 외워도 자꾸 까먹어서 대본을 찢어가지고 왔어요”라며 수상 소감으로 준비한 <눈이 부시게>의 내레이션을 읽으며 따뜻한 감동과 위로를 전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또 해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플레이 봉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