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처럼 다시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있는 요즘이다. 관객 많은 '개봉작'이 상영회차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멀티플렉스가 아닌 극장들에서 진행 중인 영화 특별전을 모아 소개한다.


아르헨티나 현대 영화 파노라마
~ 6월 30일
@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라 플로르>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과 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관, 아르헨티나 감독조합과 공동 기획한 '지구 반대편으로부터의 새로운 시각: 아르헨티나 현대 영화 파노라마'를 진행 중이다. 2000년대 중후반 데뷔한 감독 10인의 12개 작품을 선보인다. 정치색이 두드러지던 과거 아르헨티나 영화의 전통을 따르되, 다른 지역권의 형식을 적극 받아들여 보다 모던한 시각을 획득한 당대 아르헨티나 영화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마리아노 지나스의 두 작품 <기묘한 이야기들>(2008)과 <라 플로르>(2018)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농부를 살해한 정부감독관 X, 한 남자를 아프리카까지 쫓는 Z,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H, 세 남자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내용과 맞지 않은 내레이션과 정신없이 펼쳐진다. 장장 14시간에 달하는 <라 플로르>는 네 명의 여성 배우들이 B급 영화,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스파이 물, 실험영화의 장르의 서로 다른 여섯 개 이야기에 각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역작이다.


신도 가네토 특별전
 ~ 6월 26일
@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오니바바>

지난 3월 정동길에 재개관 한 서울아트시네마는 일본 감독 신도 가네토의 특별전을 마련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시나리오 작가, 미술감독 등으로 활동해온 신도 가네토는 40세가 되던 해 첫 장편 <애처 이야기>(1951)를 내놓은 이후 60년간(100세에 세상을 떠났다) 꾸준한 현역 감독으로서 50편에 육박하는 영화를 발표했다. 이번 기획전은 초기작 <원폭의 아이>를 비롯해 <벌거벗은 섬> <오니바바> <추락하는 청춘> 등 신도의 대표작, <오후의 유언장> <올빼미> 등 좀처럼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후기작까지 총 10편이 상영된다. 흔히 일본영화 하면 떠올리는 차분하고 절제된 작법과는 거리가 먼, 호러 다큐멘터리 가족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에너제틱한 작품들 가운데, 어떠한 역경과 갈등 속에서도 생존의 의지를 놓지 않는 인간의 군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애프터 양>와 <콜럼버스> 함께 보기
6월 중 부정기 상영
@ 더숲아트시네마

<콜럼버스>

<범죄도시 2> <브로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등 화제작들 사이에서 조용히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개봉작이 있다.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애프터 양>이다. 중국에서 입양한 딸을 키우는 부부가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돌연 작동을 멈추자 그를 수리할 방법을 모색하던 중 양에게서 그동안 몰랐던 기억 장치를 발견하게 되면서 그 기억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그렸다. 코고나다는 지난 3월 애플TV+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파친코>를 연출해 한국 관객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애프터 양>과 <파친코>를 모두 좋아하지만 코고나다의 장편 데뷔작 <콜럼버스>를 극장에서 놓친(2018년 개봉 당시 8천 명의 관객밖에 만나지 못했다) 이들을 위해 더숲아트시네마에서 <콜럼버스>를 상영한다. 존 조와 헤일리 루 리차드슨이 연기한 두 주인공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과정만큼이나 세심하게 잡아낸 영상미가 인상적인 작품이니 스크린 관람을 힘주어 권한다.


이와이 슌지 감독전
6월 부정기 상영
@ 아트나인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애프터 양>을 주의깊게 본 관객들이 보고 싶을 또 다른 작품,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다. 영화 속 양이 'The Lily Chou Chou'라 적힌 티셔츠를 입고,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오프닝곡 'Glide'를 일본계 미국인 가수 미츠키가 커버한 노래가 삽입됐다. 아트나인은 월례 기획전 '겟나인'의 6월 프로그램으로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을 선보인다. 1993년 후지TV를 위해 만든 단막극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한국 관객에게 너무나 친숙한 그 영화 <러브레터>, 아오이 유우를 제대로 세상에 알린 <하나와 앨리스>,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일본의 대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로맨스 <라스트 레터>, 그리고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 상영된다. 아! <애프터 양>과 같은 감흥을 기대하고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본다면 정서의 극단적인 차이로 인한 충격이 상당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별전
 ~ 6월 30일
@ 라이카 시네마

<원더풀 라이프>

홍상수의 최신작 <소설가의 영화>에 등장한 바 있는 극장인 라이카 시네마는 최근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과 함께 만든 '한국영화' <브로커>를 공개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6편을 상영한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등 고레에다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족'에 초점을 맞춘 큐레이션이 눈에 띈다. <브로커>로 고레에다의 영화를 처음 접해본 이들이라면 라이카 시네마의 이번 기획전은 '고레에다 월드'에 입문하기에 아주 그만이다. 유독 반가운 작품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원더풀 라이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중간역인 '림보'에 머무르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골라 짧은 영화로 만드는 과정을 차분히 담아낸 걸작이다. 


데이빗 투 더 데이빗 특별전
 ~ 7월 6일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트윈 픽스: 파이어 워크 위드 미>

독특한 제목의 특별전 '데이빗 투 더 데이빗'의 두 데이빗은 미국 감독 데이빗 린치와 데이빗 로워리다. 서로 이름이 같다는 것 외엔 아무런 접점이 없긴 해도,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두 명감독의 대표작을, 그것도 서울이 아닌 전주에서 만날 수 있어 그저 반가운 기회다. 데이빗 린치 작품은 첫 장편 <이레이저 헤드>, 드라마 <트윈 픽스>의 프리퀄 격인 영화판 <트윈 픽스: 파이어 워크 위드 미>, 린치의 전환점으로 회자되는 <로스트 하이월드>를 상영한다. 눈밝은 관객들에게 일찌감치 실력자로 인정 받고 있는 데이빗 로워리 작품은 전무후무한 로맨스 판타지 <고스트 스토리>, 노장 로버트 레드포드를 내세운 기묘한 추적극 <미스터 스마일>, 신화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한 <그린 나이트>를 만날 수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