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와 빌런을 훌륭하게 섞은 <조커>

웃음과 공포. 정반대에 있을 것만 같은 두 감정은 잘만 활용하면 서로의 존재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 영화 <조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도시를 궁지에 몰아넣는 공포의 상징이 되듯, 웃음이나 공포나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감정이란 점이 일맥상통한다. 그래서일까. 대체로 대중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배우들이 악의 화신을 연기할 때, 그 깊이는 일반적인 드라마 배우들이 악역을 연기할 때와는 또 다른 울림을 주곤 한다. 이렇게 코믹 이미지가 강한 배우들이 연기한 빌런 캐릭터를 소개한 해외 매체 '콜라이더'의 기사 중 일부 선정해 소개한다.


대니 드비토의 펭귄

대니 드비토의 펭귄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체구. 대니 드비토가 코미디 작품 다수에서 얼굴을 비춘 건 어쩌면 그의 신체적 한계 때문일지 모른다. 세계구급 미남미녀, 모델 같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할리우드에서 그는 빼어난 연기력에도 코미디 영화나 시트콤에서 자주 만나는 인물이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처럼 굵직한 작품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코미디나 적어도 코믹한 분위기로 극을 이끄는 출연작이 대다수였다. 그런 그에게 이미지 전복을 이뤄진 작품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2>였다. 

코믹 이미지의 배우 마이클 키튼을 브루스 웨인/배트맨으로 발탁해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의 순간을 보여준 팀 버튼은 속편에서 대니 드비토를 펭귄으로 기용했다. 일반적으로 마피아, 암시장 무기상으로 그려지는 펭귄을 팀 버튼은 기형아로 태어나 평생 열등감에 시달린 존재로 승화시켰다(조커를 웨인 부모 살인범으로 변주했듯). 대니 드비토의 비주얼과 연기력은 그런 펭귄을 소화하기에 누구보다 적격이었다. 영화가 나온 직후 대니 드비토의 펭귄은 '동정할 수밖에 없는 빌런'으로 평가받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콘이 됐다. 

펭귄 분장 과정
배트맨 역 마이클 키튼(오른쪽) 또한 코믹한 이미지 때문에 배트맨 반대 운동까지 겪은 바 있다.
배트맨 2

감독 팀 버튼

출연 마이클 키튼, 대니 드비토, 미셸 파이퍼, 크리스토퍼 월켄

개봉 199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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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캐리의 리들러

짐 캐리의 리들러

팀 버튼 감독이 <배트맨 2>에서 하차했는데도, 코믹 이미지 배우의 빌런 전통은 그다음 영화 <배트맨 3 - 포에버>까지 이어졌다. 팀 버튼의 후속 주자로 연출직에 앉은 조엘 슈마허 감독은 영화사의 의도에 따라 전작들보다 좀 더 화려한 분위기로 영화를 이끌어야 했다. 그 결과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짐 캐리가 연기한 에드워드 니그마/리들러라 할 수 있다. 

원작의 리들러는 배트맨에게 수수께끼를 주며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는(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믿는) 빌런이다. 자신이 하는 건 '승부'이기에 대체로 녹색 정장 스타일의, 나름대로 신사적인 의상으로 유명하지만 <배트맨 3 - 포에버> 리들러는 몸에 착 붙는 스판덱스(이른바 '쫄쫄이')에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 시종일관 촐랑거리는 몸짓이나 자기주장이 무척 강한 표정, 톡톡 튀는 느낌의 대사 처리 등 그야말로 자의식 과잉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런 요소들은 짐 캐리가 그동안 해왔던 코미디 연기의 연장선, 혹은 확장이었기에 캐릭터와의 호흡은 두 말할 것 없이 좋았다. 좋게 말하면 배우와 찰떡이고, 나쁘게 말하면 짐 캐리 그 자체에 가까웠던 것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던 캐릭터. 당시 짐 캐리의 이미지로는 이런 리들러가 적격이긴 하지만, 이후 짐 캐리의 정극을 만난 관객이라면 좀 더 진중한 짐 캐리의 리들러도 좋았을 거란 의견이 많다.

그나마 얌전한 이 의상도 쫄쫄이에 코트 하나 입은 것일 뿐.
짐 캐리의 표정 연기가 돋보이는 리들러
배트맨 3 - 포에버

감독 조엘 슈마허

출연 발 킬머, 토미 리 존스, 짐 캐리, 니콜 키드먼, 크리스 오도넬

개봉 199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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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귀자모의 광대

존 레귀자모의 바이올레이터

훌륭한 연기로 작품을 더욱 빛내는 조연급 배우, 보통 '감초 배우'라고 부르는 할리우드 배우 계보를 구성한다면 존 레귀자모는 상위권에 올려놔야 할 것이다. (<스폰> 이전 기준) <칼리토> <다이 하드 2> 등 굵직한 영화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존 레귀자모는 스탠드업 코미디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렇기에 연기를 배우고 배우로 활동하는 중에도 <하우스 오브 버깅>(House of Buggin')이란 콩트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90년대 말, 그의 연기 인생을 바꾼 두 편의 영화를 만나는데 하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고(줄리엣의 사촌 티볼트를 맡았다) 하나는 다크 히어로 스폰의 실사 영화 <스폰>이다. 

<스폰>에서 존 레귀자모는 '광대'라고 불리는 바이올레이터를 연기했는데, 두터운 특수 분장을 하고 열연을 펼쳐 호평받았다. 존 레귀자모의 광대가 이 영화의 가장 재밌는 부분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으니 그의 활약은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영화에서 구더기가 잔뜩 꼬인 피자를 먹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먹는 걸로 촬영한 후 구토를 했다는 일화가 그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으니 이 역할이 존 레귀자모의 미래를 바꿨다고까진 할 수 없지만 그의 연기에서 코믹함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발전시키는 방법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촬영 현장의 존 레귀자모
스폰

감독 마크 A.Z. 디페

출연 존 레귀자모, 마이클 제이 화이트, 마틴 쉰, 테레사 랜들, 멜린다 클락

개봉 199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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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위그의 치타

크리스틴 위그의 바바라 미네르바/치타

어쩌면 '크리스틴 위그가 코미디 배우라고?'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 그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마션> <마더!> 같은 사뭇 진지한 영화에서의 모습이 익숙하니까. 하지만 그는 현지에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즉 SNL 출연진으로 7년을 활동한 것으로 인지도를 얻었다. 그 시절 출연작 대다수가 코미디 영화이니 코믹 이미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앞서 말한 영화들을 포함해) 정극 영화로 점점 영역을 확장하면서 당도한 역은 <원더 우먼 1984> 바바라 미네르바/치타 역이다. 

소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박사가 맥스웰 로드(페드로 파스칼)의 계략과 다이애나 프린스/원더 우먼(갤 가돗)에 대한 질투심에 치타로 거듭나는데, 사실상 크리스틴 위그의 연기가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는 부분까지 채워준다 싶을 정도로 바바라 미네르바의 감정선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연기뿐만 아니라 수수한 바바라 미네르바가 강한 열망을 가지면서 화려해지는 패션까지 찰떡처럼 소화해 크리스틴 위그의 '옷걸이'를 잘 보여주기도. <원더 우먼 1984>가 전체적으로 혹평을 받고, 영화도 치타보다 맥스웰 로드에게 방점이 찍힌 만큼 크리스틴 위그의 치타가 아쉽게 느껴지는데 다행히 3편에서도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원더 우먼 1984>는 주요 인물들의 '패션쇼'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바바라 미네르바가 가장 화려한 변신을 보여준다.
원더 우먼 1984

감독 패티 젠킨스

출연 갤 가돗, 크리스틴 위그, 페드로 파스칼, 크리스 파인

개봉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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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소개한 코믹 이미지 배우의 빌런 캐릭터는 애니메이션이 많은 편. 특히 애니메이션 <할리 퀸>에선 론 푼체스의 킹 샤크, 앤디 데일리의 투페이스, 짐 래쉬의 리들러까지 세 배우가 포함됐다. <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배트맨 TAS)는 알린 소킨의 할리 퀸, <MODOK>는 패튼 오스왈드의 모독이 있다. 1960년대 유쾌한 배트맨으로 유명한 드라마 <배트맨>은 프랭크 고쉰이 리들러를 연기했고, <슈퍼걸>의 미스터 믹시즈피틀릭을 연기한 토마스 레논이 리스트에 올랐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