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은 과거의 작품으로부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이 유독 많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신작 제작이 줄어들면서 과거 인기작 출연진이 다시 모이거나, 선망받는 배우가 과거를 추억하는 등 온라인으로 전세계 팬들을 만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반면 그런 즐거운 소식 말고도 오래 활동한 스타들이 세상을 뜨는 뉴스도 적잖게 들려왔다. 최근 사망 소식을 알려 팬들의 애도를 받고 있는 '해그리드' 로비 콜트레인을 비롯해 분장이나 가면 등 알아보기 힘든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는 배우들 중 2022년 세상을 떠난 배우들을 이 자리에서 정리한다.


로비 콜트레인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인공이야 당연히 해리 포터(다니엘 레드클리프)와 그의 친구들이지만,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본 누구라도 해그리드를 잊진 않았을 것이다. 거대한 덩치, 덥수룩한 수염, 무시무시한 외형이 일단 눈도장을 찍고 알면 알수록 은근한 순둥이에 사고뭉치인 캐릭터성이 캐릭터를 사랑하게 한다. 자신이 그저 평범한 소년이라 믿었던 해리 포터를 직접 마법 세계로 데려간 사람이자 한결같이 그의 편이 돼준 해드리그였기에 팬들 또한 해그리드는 마법 세계로 인도하는 가이드이자 해리 포터의 듬직한 수호자로 기억하고 있다. 

10년동안 이어진 영화 시리즈에선 로비 콜트레인이 해그리드로 출연했는데, 큰 키와 해그리드스러운 비주얼, 배우의 열정이 더해져 더할나위없는 완벽 캐스팅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로비 콜트레인은 오랜 시간 골관절염을 앓았고 고도 비만까지 더해져, 건강이 점차 나빠지더니 2022년 10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72세라는, 노년기 활동을 이어가기 적합한 나이에 사망하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해그리드의 인지도가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007 골든 아이>와 <007 언리미티드>에서 활약한 발렌틴 주코프스키도 그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 한때 007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와 대립했지만 그 과거를 털어내고 협력하는 의리남은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순간을 안겨줬다. <반 헬싱>의 하이드 씨 역시 로비 콜트레인의 특이한 캐릭터 중 하나다. 

<007 언리미티드>

데이비드 워너

<타이타닉>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스타트렉 V: 최후의 결전> 존 탤벗, <스타트렉 VI: 미지의 세계> 고콘 총리,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 굴 마드레드

데이비드 워너는 맨얼굴이 더 유명하긴 하다. 칼(빌리 제인)의 고용인 스파이서 러브조이로 출연한 <타이타닉>이 워낙 유명하기에. 아마 데이비드 워너라는 이름은 몰라도 러브조이의 얼굴을 보면 '아 이 배우!'라고 바로 떠올리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60년 넘게 활동한 배우라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캐릭터도 종종 연기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스타트렉 VI: 미지의 세계> 고콘 총리다. 평화를 논의할 회의를 앞두고 암살당하는 배역이지만, 그의 죽음이 이 영화 전반에 깔린 미스테리로 관객을 이끄는 핵심이 된다. 

데이비드 워너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스타트렉 V: 최후의 결전> 존 탤벗과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 굴 마드레드까지, <스타 트렉> 시리즈에서 세 가지 캐릭터를 선보였다. 메인 배역은 아니었지만 <스타 트렉> 역사에 점 하나 정도는 찍은 셈이다. 현재 명배우라고 불리는 패트릭 스튜어트가 "나의 영웅"이라고 칭송한 만큼 데이비드 워너는 영국 출신 배우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진심으로 존경받는 원로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2022년 7월 24일, 진단받은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출연작은 드라마 <닥터 후>의 60주년 에피소드로 오는 11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트론>(1982) 사크

테드 화이트

테드 화이트(왼쪽)의 <13일의 금요일 4> 촬영 당시 모습
<13일의 금요일 4>
영화 관련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테드 화이트

테드 화이트의 작품을 줄줄 꿰고 있거나, 대표작을 잘 아는 사람은 정말 마니아일 것이다. 테드 화이트는 배우보다 스턴트맨으로 활동한 이력이 더 화려하다. 그는 클라크 케이블과 존 웨인의 스턴트더블(전담 스턴트맨)을 시작으로 서부영화를 비롯, 다양한 장르영화에서 스턴트를 수행했다. 그런 그를 이런 자리에 소개하는 건 그가 공포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연기한 이력이 있어서다. 1984년 <13일의 금요일 4>에서 제이슨 부히스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테드 화이트다.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는 대대로 매 편 다른 배우를 제이슨 부히스로 기용했다. 이 역할로 그는 공포영화 마니아들의 우상이 됐지만, 사실 본인은 당시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역할을 맡았다고 회고했다(몇 년간 이 영화에 출연한 사실조차 숨겼다). 

그가 제이슨을 연기할 때 58세였다는데, 그럼에도 그의 제이슨이 역대 최고라고 칭송하는 팬들이 꽤 있다. 이렇게 많은 팬들이 최고의 제이슨으로 뽑는 건 그의 스턴트 노하우가 잘 녹아든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제이슨이 가진 상징성이 커서인지, 아니면 정말 테드 화이트의 제이슨을 최고로 인정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IMDb조차 테드 화이트 항목 대표 사진을 제이슨로 등록했을 정도. 이외에도 <스타맨>, <로맨싱 스톤> 등에 출연했고 <패스트 & 퓨리어스 - 도쿄 드리프트>로 스턴트에서 은퇴하기까지 87편의 영화·드라마에서 스턴트 이력을 남겼다. 테드 화이트는 2022년 10월 14일, 96세의 나이로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로맨싱 스톤>의 테드 화이트 출연 장면

길버트 갓프리드

<알라딘> 녹음 현장(왼쪽)
<쥬니어는 문제아>

분장이나 가면과는 거리가 있지만, 길버트 갓프리드 또한 본인의 얼굴보다 캐릭터의 목소리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배우 길버트 갓프리드는 라이브쇼 <세터데이 나잇 라이브>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 날카로우면서도 재치 있는 유머로 인기를 얻었다. 그런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라면 <알라딘>(1992)이 있다. 그는 <알라딘>에서 악역 자파(조나단 프리먼)의 파트너(?) 앵무새 이아고를 연기했다. '새'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쇳소리를 그대로 반영한 그의 연기는 원숭이 아부와 함께 극중 신스틸러로 뽑아도 손색 없다. 워낙 연기가 좋았기 때문에 <알라딘> 원작 외에도 비디오용 속편, TV 애니메이션, 콜라보 게임 등등에서 이아고로 꾸준히 활약했다. 스스로도 연기한 캐릭터 중 이아고를 가장 좋아한다며 애정을 내비치기도. 

그외에 <쥬니어는 문제아> 시리즈의 이고르 피바디로도 유명하다. 굉장히 '쎈' 스탠드업 코미디를 구사하는 반면, 대표작은 애니메이션과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라서 연령층에 상관없이 인기가 많고 유명한 편. 그런 그는 2022년 4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근이영양증 2형에 따른 심실빈맥으로 아직 젊다면 젊은 67세에 사망했다. 한국 기준, 그의 주무대 스탠드업 코미디가 현지만큼 인기가 많진 않아 사망 소식이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다. 하나 본업인 스탠드업 코미디가 인기가 많은 북미에선 그의 코미디나 쇼 일부를 추억하는 영상을 올리는 등 그의 팬들이 애도하는 여러 반응들이 올라왔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