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로 마흔을 칭하는 말이다. 혹자는 이 한자어가 기원전 인물인 공자의 어록을 엮은 『논어』에 등장한다는 것을 이유로, 그리고 그 시대 평균수명이 40세 미만이었다는 점을 들어 오늘날의 불혹은 60세나 80세 정도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 말한다. 하지만 40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상징적이다. 사회의 허리로 세상의 모든 혹(惑)에 쉽사리 휘둘리거나 말려들지 않고 현명하게 살아내야 하는 시점이자 커리어의 반환점을 돌며 삶의 방향을 재구축해야 하는 시기다. 미신이긴 하지만 '아홉수'를 잘 넘긴 안도감과 한층 발전될 내일의 나를 향한 기대감도 함께 온다.
자기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뚜렷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음을 의미하는 불혹. 40은 배우들에게도 특별한 숫자일 터. 오늘은 곧 다가올 불혹을 준비하는 배우들을 모아봤다. 참고로 오늘 글에서의 불혹은 '한국 나이' 기준이며, 2022년에 열일했거나 내년 신작 개봉을 준비 중인 배우 중심으로 정리했다.
이준혁
<범죄도시3>, <비질란테> (모두 2023년 예정)
이준혁의 영화 <범죄도시3> '최종 보스' 캐스팅 소식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범죄도시3>은 금천경찰서에서 광역수사대로 활동 무대를 옮긴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일본 야쿠자를 소탕하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으로 이준혁은 1편의 윤계상, 2편의 손석구 뒤를 잇는 빌런으로 분한다. 누적 관객 수 1,269만 명에 빛나는 <범죄도시2>의 흥행을 이어갈지 많은 관심이 쏠린 가운데, <범죄도시3>은 불혹 고개를 넘는 배우 이준혁의 필모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준혁은 내년 드라마에서도 열일 행보 이어갈 예정이다. 디즈니+오리지널 드라마 <비질란테>에서 부모의 원수를 찾아 범죄자를 심판하는 다크히어로 '비질란테'(남주혁)를 설계하는 DK그룹 부회장 조강옥으로 OTT 시청자를 만난다.
조각 같은 얼굴이 눈에 띄지만, 이준혁의 진짜 진가는 맡은 역할에 따라 폭넓은 연기를 선보인다는 데 있다. 진중함, 비열함, 다정함, 지질함 등 전혀 다른 성격의 배역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특히 이준혁은 드라마 tvN<비밀의 숲 2>에서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소 지질해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 서동재 검사 역으로 얼굴을 널리 알렸다. 최근 VIBE 오디오무비 <리버스>에서는 의문의 폭발 사고로 기억을 잃은 함묘진(이선빈)을 돌보는 헌신적인 약혼자이자 서광그룹 차기 회장 준호(이준혁)를 연기해 '목소리마저 완벽하다!'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 범죄도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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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상용
출연 마동석, 이준혁, 아오키 무네타카
개봉 미개봉

- 비밀의 숲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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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박현석
출연 조승우, 배두나, 최무성, 전혜진, 윤세아, 이준혁, 박성근, 전배수, 최재웅, 송지호, 김영재, 이해영, 박지연, 박미현, 배제기, 김범수, 정성일, 이가섭, 장률
방송 2020, tvN
이제훈
<모범택시 2>, <탈주> (모두 2023년 예정)
2011년 영화계 신인상은 이제훈으로 대동단결했다. <파수꾼> 이제훈과 <고지전> 이제훈이 벌이는 치열한 경합은 그야말로 진귀한 볼거리였다. '괴물 신인'으로 이름을 알리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제훈은 그 후 <건축학개론>, <박열>, <아이 캔 스피크> 등을 통해 착실하게 필모를 쌓으며 성장한다. 22년 8월에 공개된 시네마틱 다큐멘터리 <어나더레코드:이제훈>에서 이제훈은 영화배우 박정민과 12년 만에 <파수꾼>의 명장면을 재연한다. 불혹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다큐 속 이제훈의 피부는 빛났고, 어찌 된 일인지 12년 전보다 더 어려 보인다.
2023년, 이제훈은 이전과는 다른 역할로 돌아온다. 영화 <탈주>에서 이제훈은 미래가 정해져 있는 북이 아닌, 남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북한군 병사 '임규남'으로 분해 그의 탈주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북한 보위부 장교 '리현상'(구교환)과 목숨을 건 추격전을 그릴 예정. 이제훈과 구교환의 만남이 배우들의 극강의 케미스트리를 끌어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의 신작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제훈은 2016년 <시그널>을 시작으로 <모범택시>,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등에 출연하며 드라마로도 활동 영역을 성공적으로 넓힌다. 특히 2021년, 3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 <모범택시>가 최고 시청률 16%를 돌파하며 또 하나의 드라마 히트작을 탄생시켰다. 극중 '김도기' 역을 맡아 다양한 부캐 연기로 호평받으며 연기력을 입증했고 SBS 연기 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전편의 흥행에 힙입어 <모범택시>가 시즌2로 돌아온다. 올해 7월 촬영을 시작한 <모범택시2>는 내년 상반기 방영을 앞두고 있다.

- 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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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종필
출연 이제훈, 구교환
개봉 미개봉

- 모범택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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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이단
출연 이제훈, 김의성,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 신재하
방송 2021, SBS

- 어나더 레코드 :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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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단비
출연 이제훈
개봉 미개봉
신민아
<우리들의 블루스>(2022), <휴가> (예정)
1998년 패션잡지 모델로 데뷔해 올해로 데뷔 24년을 맞은 신민아. 작은 얼굴에 꽉 찬 이목구비, 동안의 필수 조건을 갖춘 그녀이기에 벌써 불혹을 바라본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쌓은 그녀의 필모는 데뷔 햇수만큼이나 풍성하고 다양하다. 사랑스러운 로코물인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갯마을 차차차> 같은 작품에서 탁월함을 보였지만, <디바>, <보좌관> 등 미스터리, 정치물도 소화하는 등 장르 스펙트럼도 넓은 편이다.
데뷔 이후 기복 없이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신민아는 2022년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섬세한 감정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또 한 번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차기작은 2020년에 촬영을 마쳤지만 아직 개봉하지 못한 육상효 감독의 영화 <휴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늘에서 3일의 휴가를 얻어서 딸을 만나러 오는 마음 따뜻한 판타지 드라마로 배우 김해숙과 모녀지간으로 호흡을 맞춘다.

- 우리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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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김규태, 김양희, 이정묵
출연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김우빈, 김혜자, 고두심, 엄정화, 박지환, 최영준, 배현성, 노윤서, 기소유
방송 2022, tvN

-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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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육상효
출연 김해숙, 신민아, 강기영, 황보라
개봉 미개봉
현봉식(a.k.a. 현보람)
<수리남>, <한산: 용의 출현>(2022)
이 배우가 (이제서야) 40이라고? 위에 소개한 배우들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놀라움이다. 배우 현봉식은 2014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으로 데뷔한 뒤 여러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다작 배우로 자리 잡는다. 특히 <낙원의 밤>, <타인은 지옥이다>, <소년심판> 등에서 보여준 현봉식표 '빌런'은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준다. 분량으로 보면 분명 '작은 역할'이지만, 그의 연기를 보자면 '배우면 배우지 작은 역할 그런 게 어딨어'라는 누군가의 말이 입에 맴돈다.
그는 '노안' 배우의 선두주자다. 단점일 수도 있는 '노안'을 영리하게 이용한다. 한봉식은 2014년 30살에 데뷔해 30~50대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영화 <1987>. 그를 배우로 각인시킨 이 작품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에 가담한 50대 인물 박원택 계장이다. <D.P.>시즌1에서도 '노안'덕에 대대장역을 맡았다. 참고로 같은 작품 속 중대장역의 손석구는 1983년생, 상병역의 구교환은 1982년생이다.
현봉식의 2022년은 특히 바빴다. 그는 드라마만 무려 7편, 영화는 3편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눈도장 확실히 찍었다. 특히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는 수리남에서 홍어 가공 공장을 차리는 하정우의 죽마고우 박응수로 등장해 비중 있게 극 초반을 이끈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수리남>까지 당도한 현봉식. 그의 '불혹'은 왠지 더 바쁠 것 같다.

-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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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장준환
출연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개봉 2017.12.27.
유연석
<수리남>(2022)
유연석은 2003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맡은 이우진의 아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래 <건축학개론>, <늑대소년>에서 '얄미운 악역'으로 호평을 받는다. <응답하라 1994>에서는 훈남 야구 선수 칠봉이 역을 맡아 기존의 차가운 악역 이미지와 상반되는 풋풋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연급 배우로 입지를 굳힌다. 이후 <낭만닥터 김사부>, <그날의 분위기>, <뷰티인사이드>, <미스터 선샤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다양한 작품과 배역에 도전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유연석은 올해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수리남>에서 전요한(황정민)의 고문 변호사 '데이빗 박'역을 맡으며 그간 <슬기로운 의사생활> <응답하라 1994>로 쌓은 '착한 남자' 이미지를 내려놓았다. 새로운 도전이었을 그의 연기에 호불호가 갈렸지만, 마약상 변호사가 가진 '양아치'스러움을 적절히 묘사했다는 평도 많았다.
배우 유연석은 2022년 '서울동물영화제' 폐막작에 선정된 영화 <멍뭉이>를 통해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그는 실제로 철거된 사설 보호소에서 구조된 개 ‘리타’를 입양해 키우고, 유기견 해외 이동 봉사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배우 중 한 명. 영화 <멍뭉이>는 반려견 ‘루니’와 피치 못하게 헤어져야 할 위기에 처한 ‘민수’(유연석)가 사촌형 ‘진국’(차태현)과 루니의 새 가족을 찾으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두 주인공은 반려견과의 교감을 통해 상실의 경험을 나누고, 유기 반려동물 관련한 가슴 아픈 현실을 접하기도 하고, 절망 끝에 남겨진 무기력함을 마주하기도 한다.
<수리남>을 통해 새로운 인물에 도전하고 <멍뭉이>를 통해 다른 종과의 공존에 대해 질문하는 배우 유연석. 그의 깊어질 2023년이 기대된다.

- 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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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신원호
출연 고아라, 정우, 유연석, 김성균, 손호준, 차선우, 민도희, 성동일, 이일화, 윤종훈, NC.A, 나영석
방송 2013, tvN

- 그날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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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규장
출연 문채원, 유연석
개봉 2016.01.14.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