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시즌만 되면 시대와 별개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음악이나 영화가 있다. 벚꽃이 필 무렵에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죽지도 않고 매년 차트의 1위를 점령한다. 함박눈이 오는 날에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1995)> 속 ‘오겡끼 데스까?’라고 외치는 나카야마 미호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해수욕장에 가는 날이면, 쿨의 <해변의 여인>은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지금 거리에는 온통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로 가득하다. 크리스마스가 왔다는 증거다. 크리스마스의 공식같은 영화는 단연 <나 홀로 집에 (1991)>다. 영화가 개봉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맥컬리 컬킨이 아버지의 스킨을 바르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여전히 대중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기사는 맥컬리 컬킨을 자유롭게 내버려 둘 예정이다. 그보다는 평행이론처럼 닮은꼴의 두 할리우드 남배우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인의 대다수, 심지어 기자 본인도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두 남자배우의 이름을 떠올린다. 그 이름은 바로, 1908년에 태어난 할리우드 황금기의 대스타 제임스 스튜어트와 1956년에 태어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 톰 행크스다. 대략 50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난 두 배우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라는 점부터 훤칠한 장신에 호감형인 외관까지 공통점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배우라는 점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과 사랑을 그려낸 미스터 크리스마스, 제임스 스튜어트와 톰 행크스의 대표작을 살펴보면서 둘 사이의 묘한 평행이론을 찾아보자!
한없이 선한 그 남자들!
제임스 스튜어트가 전성기를 보낸 193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이후까지 주로 그가 맡은 배역은 한없이 선한 인상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가령, 프랑크 카프라와 작업한 1939년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난데없이 상원의원으로 지명된 소년 의장대 단장 제퍼슨 스미스 역을 맡았다. 부패와 비상식이 판치는 정치계에서 아예 정치에 문외한 순박한 시골 청년을 연기한 그는 특유의 청렴하고 훈훈한 이미지로 자칫 서툴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의 선함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외에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조지 큐거의 <필라델피아 스토리 (1940)> 속 매력적인 기자 맥콜리 코너, 헨리 코스터의 <하비 (1950)> 속 순박하고 아이같은 다우드 등, 제임스 스튜어트는 캐리 그랜트처럼 능글맞은 남자들이 판치는 할리우드에서 선함과 순박함을 연기할 줄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선한 역이라면, 톰 행크스도 빠질 수 없다. 페니 마샬의 <빅 (1988)>에서 하루 만의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조슈아 역은 커리어 초창기 그가 지닌 선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배역이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포레스트 검프 (1994)>를 빼놓고 그의 순박함을 얘기할 수 없다. 삶의 고된 시련에도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얼굴은 톰 행크스만이 살려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환갑이 넘은 톰 행크스는 완벽한 위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마리엘 헬러의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2019)>에서 미국의 성인이라고 여겨지는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프레드 로저스를 연기한 그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의 모습이다. 그 외에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2016)> 속 설렌버거 기장, 폴 그린그래스의 <캡틴 필립스 (2013)> 속 리차드 필립스 선장 등 미국의 시대적 영웅은 모두 톰 행크스의 얼굴을 거쳐 가고 있다. 톰 행크스는 40년의 연기 경력 내내 ‘선함’의 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배우가 되었다.

- 스미스씨 워싱톤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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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프랭크 카프라
출연 진 아서, 제임스 스튜어트
개봉 미개봉

- 포레스트 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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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톰 행크스
개봉 1994.10.15. 2016.09.07. 재개봉
두 거장의 페르소나
제임스 스튜어트의 대표작을 선정할 때, 주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1958)> 혹은 프랑크 카프라의 <멋진 인생 (1946)>이 거론된다. 톰 행크스의 대표작은 역시 고르기 어렵지만, 대체로 앞서 언급한 <포레스트 검프>와 스티브 스필버그의 <터미널 (2004)> 사이에서 갈린다. 실제로, 제임스 스튜어트는 히치콕과 카프라의 페르소나며, 톰 행크스는 스티브 스필버그와 로버트 저메키스의 페르소나로 불린다. 두 거장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배우라는 점에서도 둘은 매우 유사한데, 심지어 두 거장이 배우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카프라의 제임스 스튜어트는 낙관적이고 근면하며 순박한 존재다. <우리들의 낙원 (1938)>부터 <멋진 인생>까지 카프라는 줄곧 스튜어트를 한없이 선한 존재로 묘사한다. 하지만, 히치콕의 스튜어트는 매우 상반된 이미지를 다룬다. 히치콕의 남자들은 언제나 수사에 가담한다는 점에서 처음으로 함께한 <로프 (1948)>, <이창 (1954)>,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1956)>, 그리고 <현기증>까지 히치콕의 스튜어트는 언제나 편집증적이고 지나치게 사건에 골몰하는 지리한 수사관이다. 순박함이라는 스튜어트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도리어 히치콕은 서스펜스의 도구로 사용한 격이다. 하지만 <현기증>의 흥행 실패로 더는 히치콕이 스튜어트와 함께하지 않았다. 함께 작업한 네 편이 모두 손에 꼽는 수작이라 이 점이 더 아쉽게 다가온다.
톰 행크스를 다루는 저메키스와 스필버그의 손길은 스튜어트를 둘러싼 두 거장의 태도만큼 대조적이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둘은 서로 다른 캐릭터로 행크스를 묘사하고 있다. 저메키스가 그린 톰 행크스는 주로 미국의 정신에 입각한다. <토이 스토리 (1995)> 시리즈의 카우보이 우디, <포레스트 검프>의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검프, <캐스트 어웨이 (2000)> 속 페덱스 직원 척은 모두 미국의 전형적인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반면, 스필버그의 톰 행크스는 미국에 속하지만, 이방인처럼 묘사된다. 가장 대표적인 <터미널>을 차치하더라도, 톰 행크스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 속 밀러 대위는 노르망디라는 타지에서 PTSD에 시달린다. 혹은 <캐치 미 이프 유 캔 (2002)>의 칼 헨레티 요원은 어딘가 FBI 요원이라고 하기엔 미숙하고 서툴다. 심지어 <스파이 브릿지 (2015)>에서는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을 변호하는 미국인 변호사 도노반 역을 맡는다. 국가에 속해있지만, 국가의 반대편에 서서 변호를 맡는다. 톰 행크스의 연기에서 자아내는 ‘신뢰감’이라는 속성을 로버트 저메키스는 미국적으로 풀어냈다면, 스필버그는 이방인의 시선에서 해석하려 한다.

- 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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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개봉 1959.02.08.

- 스파이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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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행크스, 마크 라이런스, 에이미 라이언, 오스틴 스토웰
개봉 2015.11.05.
Mr. Christmas!
악인을 묘사하는 방법은 쉽다. 하지만 선한 인간을 연기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결함이 있기에, 한없이 선한 존재는 일종의 기시감을 자아낸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톰 행크스는 그 어려운 연기를 해냈다. 한없이 선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도 이질감이 없다. 그래서 스튜어트와 행크스는 기적이 일어나고, 사랑에 빠져도 모든 것이 허용되는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배우가 될 모든 자격을 갖췄다. 두 배우 모두 크리스마스의 사랑을 그리는 영화 한 편과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그리는 영화 한 편에 나와 미스터 크리스마스라는 칭호를 얻었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 (1940)>에 나온 제임스 스튜어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펜팔을 통해 연인을 만나려 하는 두 남녀가 알고 보니 한 가게에서 투닥거리던 점원이었다는 내용이다. 노라 에프론은 <유브 갓 메일 (1998)>로 이 내용을 리메이크 했고, 우연의 일치처럼 주연은 톰 행크스였다 (!!!). 이런 남녀의 정서적 시차를 이용한 크리스마스 영화를 톰 행크스는 하나 더 찍었다. 90년대 로코의 전설 노라 에프론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1993)>이다. 사실, <모퉁이 가게>처럼 크리스마스에 결실을 보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두 남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처음 서로를 알아간다. 하나의 영화가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끝을 냈다면, 반대편의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출발점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는 사랑을 고백하기에도, 새로운 설렘을 시작하기에도 적합한 날이다.

- 모퉁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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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에른스트 루비치
출연 마가렛 설리반, 제임스 스튜어트
개봉 미개봉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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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노라 에프론
출연 톰 행크스, 멕 라이언
개봉 1993.12.18. 2016.12.28. 재개봉
동시에 크리스마스는 가족들에게 화합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프랭크 카프라의 <멋진 인생>에서 조지 베일리는 모진 질고를 견뎌내고 하늘의 은총을 받아 회생에 성공한다. 그를 돕기 위한 무수히 많은 손길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에 가장 걸맞은 모습이다. 사실, 주인공 조지 베일리가 은혜를 입은 이유는 그가 여태껏 호혜적 손길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한 조지는 수혜자인 동시에 베풂을 주었던 존재다. 톰 행크스가 로버트 저메키스의 <폴라 익스프레스 (2004)>에서 연기한 캐릭터도 이와 비슷하다. 정확하게는 톰 행크스가 주인공인 소년과 차장, 소년의 아버지 그리고 산타클로스를 모두 연기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다. 산타에 대한 믿음을 잃은 소년은 폴라 익스프레스에 올라타 산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되어 기적을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적을 얻은 소년과 기적을 선물해준 차장과 산타는 모두 톰 행크스가 연기한다. <멋진 인생>과는 다른 방법으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누리면서 동시에 선물한 인물이 되었다.

- 멋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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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프랭크 카프라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개봉 미개봉

- 폴라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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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톰 행크스, 에디 디즌, 노나 게이, 피터 스콜라리, 레슬리 제멕키스
개봉 2004.12.23. 2006.01.20. 재개봉
기적과 사랑이 넘쳐나는 크리스마스다. 톰 행크스와 제임스 스튜어트가 자아낸 한없이 선한 얼굴처럼, 크리스마스를 마주한 당신의 얼굴에도 선한 미소만이 가득하길 바란다. 기왕이면, <멋진 인생>이나 <폴라 익스프레스>을 가족과 함께 보는 것도 좋겠다. 연인이라면, <모퉁이 가게>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어떨까. 이제 그만 <나 홀로 집에>의 케빈을 그만 괴롭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만끽하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