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서로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달달함에 설레는 밤이 있는 한편,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싸우고 지치고 또 사랑하는 것이 연애이지 않나.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마냥 핑크빛일 수만은 없는 현실 연애를 다룬 작품이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아왔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미래가 불투명한 공시생 준호(이동휘)와 그의 대책 없음에 지쳐버리게 된 오랜 연인 아영(정은채)의 이야기를 그린 연애물이다. 왜 헤어졌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연인이 각자의 이별을 온전히 마주하기까지의 시간들을 담백한 연출을 통해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때론 몸서리치게 달콤하기만 한 로코보다 리얼한 현실 로맨스가 더 와닿는 법. 이제 막 걸음을 맞춰가기 위해 부단히 걸어가려는 두 남녀의 이야기부터 마냥 달콤해 보이기만 했던 사랑, 그 이면의 씁쓸함을 다룬 현실 연애 영화들을 모아봤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감독 형슬우

출연 이동휘, 정은채, 강길우, 정다은

개봉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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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클로저> Closer, 2004
감독│마이크 니콜스
출연│나탈리 포트만,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클로저>를 보면 사랑도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텅 비어 있는. <클로저> 속 인물들이 그리는 사랑은 그렇다. 부고 기사를 쓰는 댄(주드 로)은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난 스트립 댄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를 병원에 데려다주며 가까워진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시간이 흐르고 댄은 자신의 소설책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다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녀를 유혹한다. 한편, 댄은 채팅을 통해 안나의 이름으로 래리(클라이브 오웬)를 속이고, 댄에게 속은 래리는 수족관에 나와 안나를 만나게 된다. 댄의 몹쓸 장난에 오해가 생긴 두 사람. 안나는 래리에게 오해를 풀고, 얼마 안가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클로저>

낯선 이와 쉽게 사랑에 빠진 네 인물은 가볍게 시작한 만큼 너무나 쉽게 또다시 다른 사랑에 마음의 무게를 싣는다. 마음을 진실되게 전한다는 것이 타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고백임을 깨닫지 못한 채. 댄과 앨리스, 안나와 래리는 외도라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남은 사랑을 지키려 하지만 믿음이 깨져버린 사랑은 의심만 남긴 채 텅 비어 있을 뿐이다. 지독히도 냉소적인 시선으로 사랑의 무의미함을 고발하는 영화 <클로저>. 사랑을 말하는 댄에게 남긴 앨리스의 말이 오래 마음에 맴돈다. "보여줘, 사랑이 어디 있어?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 몇 마디 말은 들리지만 그렇게 쉬운 말들은 공허할 뿐이야"

클로저

감독 마이크 니콜스

출연 나탈리 포트만,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

개봉 2005.02.03. / 2021.02.18.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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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연애>
<가장 보통의 연애>

<가장 보통의 연애> Crazy Romance, 2019관람객 평점
감독│김한결
출연│김래원, 공효진

진정으로 쿨한 헤어짐은 없는 걸까? 구질구질한 미련이 발목을 잡아 사람을 찌질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지는 게 보통의 연애, 보통의 이별일까. 그럼 그 이별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전 여자친구와의 파혼으로 매일 밤 술에 취해 찌질한 연락을 남기고 후회하는 재훈(김래원). 그의 회사에 새로운 동료 선영(공효진)이 입사하게 되고, 다음날 재훈은 자신도 모르는 번호와 술에 취해 두 시간을 통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번호의 주인은 다름 아닌 선영. 선영 역시 바람을 피운 전 남자친구와 뒤끝 있는 이별로 고통받던 중 재훈의 연애사를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술과 함께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며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별은 그렇게 새로운 상대와의 설렘으로 지워진다. 술과 함께 무르익는 밤, 티격태격하다가도 유일하게 내 진심에 공감해 주는 이성에게 당해낼 재간은 없다. 이별부터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까지, 가장 보통의 우리를 담아낸 현실 리얼 로맨스.

가장 보통의 연애

감독 김한결

출연 김래원, 공효진

개봉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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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빠진 로맨스>
<연애 빠진 로맨스>

<연애 빠진 로맨스> Nothing Serious, 2021
감독│정가영
출연│전종서, 손석구

만났다 하면 이상한 놈들만 꼬이는 자영(전종서)은 일도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간다. 전 남자친구와의 헤어짐 이후 연애 은퇴를 선언했지만, 허전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데이팅 앱에 접속하게 된다. 한편, 직장에서 일도 연애도 휘둘리기만 하는 우리(손석구)는 편집장으로부터 19금 칼럼을 연재하라는 얘기를 듣고 데이트 앱을 깔게 된다. 그렇게 설 명절에 만나게 된 두 사람. 첫 만남부터 솔직하다 못해 직설적인 자영의 언행에 매력을 느낀 우리는 자영과 가까워지고, 자영에게 말 못 한 비밀을 안은 채 만남을 이어간다. 성에 관한 솔직한 담론들로 '여자 홍상수'라 불리는 정가영 감독의 상업 데뷔작 <연애 빠진 로맨스>. <비치온더비치>, <밤치기>만큼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정가영 감독 특유의 수위 높은 말맛과 남녀 관계에 대한 예리한 고찰이 대사에 녹여져 있다. 두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정가영 감독의 연애 지론은 현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 

연애 빠진 로맨스

감독 정가영

출연 전종서, 손석구

개봉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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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온도>
<연애의 온도>

<연애의 온도> Very Ordinary Couple (V.O.C.), 2012
감독│노덕
출연│이민기, 김민희

연애를 온도로 정의한다면 100도일까, 50도일까 아니면 차가운 0도일까. 3년을 연애한 동희와 영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온도의 기준이 더욱 아리송해진다. 장기 커플의 연애담을 리얼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실 연애 영화의 수작으로 뽑히는 <연애의 온도>. 영화는 복사기도 안다는 사내 비밀연애 커플이었던 동희(이민기)와 영(김민희)이 헤어지며 시작한다. 무려 3년을 사귀어온 두 사람은 직장 동료들의 눈을 피해 달달한 한때를 보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헤어짐을 고한다. 하지만 사내연애의 비극은 지금부터다.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 직장 동료로 마주해야 하니까. 이별 후에도 서로에게 찌질한 행동으로 복수하던 두 사람은 부딪히며 서서히 다시 끓어오르고, 재결합하기에 이른다. 물론 재결합한 연인의 끝은… 사랑했기에 노력하려 했고, 끝내 의무감으로 변질되고야 만 감정에 상처를 받는 건 상대방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영화.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연애의 불편한 민낯과 이면을 속속들이 들춰내 응시하게 만드는 노덕 감독의 집요함이 인상적이다. 연애를 할 때 스스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고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보고 반성하시길.  

연애의 온도

감독 노덕

출연 이민기, 김민희

개봉 201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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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발렌타인>
<블루 발렌타인>

<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 2010
감독│데릭 시엔프랜스
출연│라이언 고슬링, 미셸 윌리엄스

사랑밖에 모르는 솔직하고 다정한 남자 딘(라이언 고슬링).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병원에서 신디(미셸 윌리엄스)를 만나게 되고 첫눈에 반한다. 신디의 고단한 마음과 현실까지 다 끌어안아주며 결혼을 약속한 딘. 부부가 되고 영원히 서로를 사랑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은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가는 신디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 

<블루 발렌타인>은 딘과 신디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연출을 통해 부부의 현재와 과거를 잔혹하게 비춘다. 찬란하지만은 않아도 서로의 세계가 유일했던 순간들은 이제 현실에 휩쓸려 지워지고 없다. 딘은 여전히 그 안에 서있지만 신디는 사랑 말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딘에게 지쳐버린 지 오래다. 햇살이 내리쬐던 축복의 순간은 꿈이었다는 듯 빛을 잃어 퇴색되고, 끝내 사랑은 최소한의 예의가 되어버렸다. '발렌타인'이라는 달콤한 제목에 혹해 보게 된다면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변해버린 이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날카롭게 할퀼 테니까. 

블루 발렌타인

감독 데릭 시엔프랜스

출연 라이언 고슬링, 미셸 윌리엄스

개봉 20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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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 2019
감독│노아 바움백
출연│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로라 던

영화는 찰리(애덤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이 서로의 장점을 적은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션과 함께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나열하며 시작한다. 곧이어 화면이 바뀌고, 같은 방 안에 앉아 편지를 들고 있는 찰리와 니콜 사이엔 그 어떤 애정의 눈빛도 찾아볼 수 없다. 이혼을 앞두고 상담을 받던 찰리와 니콜은 그렇게 또다시 어긋난다. 혹여나 상처받을까 서로를 배려했던 지난날들을 잊었다는 듯 두 사람은 상대방의 과거를 힐난하며 서로의, 또 자신의 폐부를 깊이 찌른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오징어와 고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로 온전하지 않은 가족, 부부의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가족과 관계에 대한 탐구를 이어온 노아 바움백 감독이 연출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노련하게 집필한 각본과 거칠지만 세심한 시선이 담긴 연출을 통해 이혼의 현실적인 이면들을 그려냈다. 무엇보다 버릴 것 없이 짜인 대사들을 더욱 촘촘한 밀도로 스크린에 빚어내는 건 배우들의 호연이다.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은 이 작품으로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결혼 이야기

감독 노아 바움백

출연 스칼릿 조핸슨, 아담 드라이버

개봉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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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