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개봉하는 영화 <더 웨일>은 <블랙 스완>의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5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이자, 90년대의 인기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가 272kg의 남자를 연기해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더 웨일>의 브랜든 프레이저와 더불어 파격적인 변신을 통해 강력한 인상을 남긴 배우들의 면면을 모았다.

로버트 드 니로
<분노의 주먹>

복싱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의 전기영화 <분노의 주먹>(1980)은 현역 선수로 활동한 젊은 시절과 은퇴 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된 중년을 아우른다. 드 니로는 라모타와 직접 트레이닝 하며 실제 경기에도 출전하면서 선수의 피지컬을 만들기도, 28kg를 찌워 나이 들어 불어난 몸을 선보이기도 했다. <택시 드라이버>와 <디어 헌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드 니로는 <분노의 주먹>을 통해 수상에 성공했다.

알 파치노 <딕 트레이시>

워렌 비티 주연/감독의 <딕 트레이시>(1990)는 1930년대에 유행한 동명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다. 만화 베이스인 작품인 만큼 영화 속 배우들의 생김새부터 독특하고 과장돼 있는데, 작품의 메인 빌런인 빅보이 역을 맡은 알 파치노는 자기 캐릭터의 외형을 직접 디자인했다. 본래 원작에선 작은 코의 거구였지만, 영화 <딕 트레이시> 빅보이는 보통 키에 손 코 광대뼈만 키웠다.

로빈 윌리엄스
<미세스 다웃파이어>

<후크>의 피터팬과 <알라딘>의 지니 목소리로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한 로빈 윌리엄스는, '나홀로 집에' 시리즈를 연이어 성공시킨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과 가족 코미디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를 제작했다. 이혼당하고 주 1회만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을 보기 위해 보모 할머니로 위장한 주인공의 역할까지 직접 소화한 영화는 (<쥬라기 공원>에 이어) 1993년 흥행 2위를 기록했다. 

니콜 키드먼 <디 아워스>

니콜 키드먼, 줄리앤 무어, 메릴 스트립 세 배우가 각자 다른 시대의 여자를 선보인 <디 아워스>(2002). 키드먼은 대문호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했다. 울프가 생전에 남긴 무수한 편지들을 읽고 분장을 통해 울프의 모습까지 재현했지만, 실제 울프의 말투나 목소리까지는 모사하지 않았다. <디 아워스> 촬영 중에 톰 크루즈와의 이혼이 진행 중이었던 키드먼은 분장 덕분에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피할 수 있어 평소에도 가짜 코를 애용했다. 200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샤를리즈 테론 <몬스터>

바로 그 다음 해에도 파격적인 변신을 한 배우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몬스터>(2003)의 샤를리즈 테론이다. 미국의 연쇄살인범 아일린 워노스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몬스터>에서 테론은 20kg 가까이 체중을 불렸을 뿐만 아니라, 거친 피부를 위해 로션조차 바르지 않고, 눈썹을 밀고 틀니를 착용하는 등 실제 워노스의 외모를 구현해냈다. 공교롭게도 테론은 워노스가 사형당하고 2년 되는 해의 그의 생일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크리스찬 베일
<머시니스트>

크리스찬 베일은 이 기획에서 제일 빈번하게 등장할 배우다. <파이터>, <아메리칸 허슬>, <바이스> 등에서 그가 선보인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수많은 변신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단연 <머시니스트>(2004). 1년 가까이 불면증에 시달려온 기계공 트레버의 깡마른 몸을 위해 매일 참치 캔과 사과 한 개만 먹어 30kg를 감량했고,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베일은 45kg까지 빼고 싶어했지만 제작진이 건강을 염려해 만류했다고.

마리옹 코티아르
<라 비 앙 로즈>

<라 비 앙 로즈>(2007)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작자들은 피아프 역에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를 원했지만, 올리비에 다한 감독은 마리옹 꼬띠아르의 눈이 피아프와 닮았다는 걸 발견하고 꼬띠아르를 고집했다. 작은 키뿐만 아니라 나이 든 피아프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5시간에 달하는 분장을 거쳐야 했다. 2008년, 프랑스 배우로선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톰 크루즈 <트로픽 썬더>

주연이 아닌 카메오 출연으로도 놀라운 변신을 감행한 배우가 있다. <트로픽 썬더>(2008)의 톰 크루즈다. 본래 매튜 매커너히가 맡게 된 페커 역으로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직접 새로운 캐릭터 레스 그로스맨을 구상해 벤 스틸러에게 제안했다. 대머리에 두툼한 손, 엔딩 크레딧 속 춤사위까지 모두 크루즈의 아이디어였다.

스티브 카렐 <폭스캐처>

<폭스캐처>(2014)에서 실존 인물 존 듀폰을 연기한 스티브 카렐은 외형상으론 이번에 소개되는 배우들보단 변화가 그나마 덜 드라마틱 하게 보인다. 하지만 평소 배우가 내뿜는 정서적인 분위기의 격차는 가장 크게 느껴진다. 재벌 기업 '듀폰'의 상속자였지만 어머니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완전히 무너져버린 존 듀폰의 자존감을, 카렐은 웃음기 없이 서늘한 얼굴로 표현했다. 베넷 밀러 감독은 카렐이 촬영 기간 동안 어느 배우와도 어울리지 않기를 원했다. 

매튜 매커너히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활동 초창기인 90년대엔 흔한 바람둥이 캐릭터 배우 정도로 알려져 있던 매튜 매커너히는 40대에 접어든 2010년대부터 <버니> <머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을 통해 연기 잘하는 배우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그리고 21kg를 감량해 실제 에이즈 환자였던 론 우드루프를 연기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4)을 통해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개리 올드만
<다키스트 아워>

수많은 명연에도 불구하고 유독 상복과 거리가 먼 배우들이 있다. 개리 올드만도 그 대표적인 배우였다. 2012년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처음 오른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을 연기한 <다키스트 아워>(2017)로 첫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처칠과 별로 닮지 않은 올드만을 위한 분장도 분장이지만, 촬영 1년 전부터 처칠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한 올드만의 집념도 놀랍다.

틸다 스윈튼
<서스페리아>

비현실적인 외모 때문일까, 틸다 스윈튼 역시 많은 작품들에서 특이한 분장을 시도해왔다. 데뷔작부터 스윈튼과 작업해온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70년대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한 <서스페리아>(2018)에 그를 캐스팅 해 무려 1인 3역을 맡겼다. 그 중 조세프 클렘퍼러 박사는 무려 노년에 남성이었는데, 영화 크레딧은 그를 연기한 배우가 루츠 에버스도르프라고 표기하면서 스윈튼의 존재를 감추기도 했다. 

자레드 레토
<하우스 오브 구찌>

자레드 레토 또한 앞서 소개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눈길을 확 끄는 스타일의 에이즈 환자를 연기해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살을 찌우거나 빼거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처럼 유별난 분장을 소화하는 등 여러 변신을 시도해왔는데, 그중 으뜸은 <하우스 오브 구찌>(2021)의 파올로 구찌일 것이다. 국적, 나이, 외모 등 너무나 다른 역할을 위해 레토는 새벽 4시부터 6시간 넘게 분장을 받아야 했고, 그동안 제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제시카 차스테인
<타미 페이의 눈>

제시카 차스테인은 2012년 즈음 전도사/방송인 타미 페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의 전기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판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근 10년이 흐른 2021년, 차스테인이 직접 타미 페이까지 연기한 <타미 페이의 눈>(2021)이 공개됐다. 생전에 과도한 눈화장으로 유명세를 날리던 인물인 만큼 차스테인의 타미 페이 역시 도통 진심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두터운 메이크업이 돋보였다. 말투나 동작은 물론 그가 발표한 노래들까지 직접 소화한 차스테인은 (윌 스미스가 크리스 락을 폭행한)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콜린 패럴 <더 배트맨>

콜린 패럴은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의 닻을 올린 <더 배트맨>(2022)에서 폴 다노의 리들러와 함께 악의 축을 담당한 펭귄 역으로 이목을 끌었다. 잘생긴 외모는 온데간데없고 여기저기 망가진 펭귄의 얼굴만 봐선 그 배우가 패럴인지도 모를 정도로 감쪽 같은 메이크업의 공이 컸다. <아이리시맨>과 <조커> 그리고 한국영화 <공작> 등에 참여한 마이클 폰테인/마이클 마리노의 솜씨다. 펭귄에 초점을 맞춘 시리즈도 제작될 예정인데, 이 작품 역시 폰테인/마리노가 참여한다.

브랜든 프레이저
<더 웨일>

브랜든 프레이저는 <조지 오브 정글>과 '미이라' 시리즈에 출연하며 마초적인 매력의 미남으로 얼굴을 알렸다. <블랙 스완>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2000년대 들어 갈수록 점점 배우로서 입지가 좁아지던 프레이저를 캐스팅 해, 272kg 거구로 살아가다가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알고 오래전 떠나온 딸과 관계를 회복하려는 남자의 이야기 <더 웨일>(2022)을 완성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는 만큼, 프레이저의 커리어가 다시 활발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