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특유의 아름다운 작화와 서정적인 묘사로 ‘빛과 색의 마술사’, ‘붓과 글로 일본의 현대 사회를 그리는 화가이자 시인’ 등 여러 찬사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은 아는 감독 정도였지만, <너의 이름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국내에서도 스타 감독 반열에 올랐다. 현재는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계에서 이야기의 탄탄함, 짜임새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서정적인 ‘분위기’ 그 자체가 이야기의 목적이다. 이야기 간의 느슨한 연결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백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돼’라는 말은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그의 세계는 철저한 F의 공간이고, 그들의 감정선은 T가 비집고 들어올 틈 없이 촘촘하다. 오늘은 F의 세계, 신카이 마코토의 핵심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며 그의 감수성에 발을 넣어보려고 한다.  


<별의 목소리>(2002)

“24살이 된 노보루군에게, 나는 15살의 미카코야.”
<별의 목소리>(2002)

신카이 마코토의 데뷔작이라 하면 2000년에 공개한 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제외하고, 25분짜리 OVA <별의 목소리>를 꼽는다. <별의 목소리>가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26위에 오르며 그는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건, <별의 목소리>가 2년 동안 혼자서 작업한 작품이라는 것. 그는 후에 <별의 목소리>를 두고 “‘혼자서 만들었다’는 것이 화제가 되어서인지 기대를 뛰어넘은 성공을 거뒀지만, 지금 보면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치졸한 작품입니다. 차라리 봉인해버리고 싶을 정도지만 지금까지도 <별의 목소리>가 가장 좋다고 말씀하시는 관객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별의 목소리>는 중학생 연인 나가미네 미카코(시노하라 미카)와 노보루(신카이 마코토)가 시공간을 초월하며 마음을 이어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카코가 국제 연합군 선발대 멤버가 되면서 그들은 지구와 우주에서 오로지 휴대폰 메일에 의지해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들 사이에 있던 건 공간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미카코가 태양계 안쪽으로 향하면서 메일이 왕복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결국 두 사람의 시간은 엇갈리고 만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핵심 테마,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남녀 주인공’이 시작되는 작품. 

별의 목소리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시노하라 미카, 신카이 마코토, 무토 수미, 스즈키 치히로, 도나 버크, 신시아 마티네즈, 애덤 콘론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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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사유리를 구하느냐’, ‘세계를 구하느냐’야”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 국내 개봉 2017

신카이 마코토는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로 제59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애니메이션 영화상을 수상하며 장편 데뷔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당시 후보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노미네이트되어 있었음을 감안했을 때, 그의 등장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계에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왔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남북으로 나눈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며, 평행우주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평행우주라는 소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너의 이름은.>에 영향을 준 장면과 설정들이 등장한다. <너의 이름은.>과 다른 점은 스토리의 개연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쳐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감성에 몰입하지 않으면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김현수 평론가는 이 작품을 두고 “<너의 이름은.> 습작 버전”이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현실의 구 소련 포지션인) 유니온이라는 가상의 국가가 일본을 남북으로 나눈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 통치 구역에 사는 히로키(요시오카 히데타카)와 타쿠야(하기와라 마사토), 그리고 사유리(난리 유카)는 유니온 점령지인 홋카이도에 건설된 거대한 탑에 매료된다. 그리고 히로키와 타쿠야는 모두 사유리를 좋아하고 있다. 탑과 삼각관계, 그리고 SF라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세 가지 요소를 감독은 이미지의 힘으로 연결한다. 그중에서도 묘미는 비행기가 어우러지는 수많은 하늘 장면. 개연성은 잠시 잊고 그가 그린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경관, 그중에서도 하늘을 그리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알게 된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하기와라 마사토, 난리 유카, 요시오카 히데타카

개봉 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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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센티미터>(2007)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야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초속 5센티미터>(2007)

<너의 이름은.> 전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혔던 <초속 5센티미터>. ‘벚꽃 이야기’, ‘우주비행사’, ‘초속 5센티미터’라는 세 단편을 느슨하게 엮어 만든 연속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제목 ‘초속 5센티미터’는 작중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속도, 라고 언급하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빠른 초속 10~50cm 정도라고.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에서 과학적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 단편은 ‘타카키(미즈하시 켄지)’를 주인공으로 한다, 외에는 사실 연관성이 크지 않다. 애초에 짧은 에피소드를 영상으로 만들어 옴니버스 식으로 발표하려 했기 때문에 세 작품 간에는 전혀 유기성이 없었다. 그러나 관객에게 더 짙은 여운을 주기 위해 세 작품의 연결성을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탄생한 게 <초속 5센티미터>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세 작품 사이의 공백 덕분에 여운이 더 짙어졌다는 의견도 종종 볼 수 있다. 

타카키의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담고 있는 <초속 5센티미터>를 줄곧 관통하고 있는 감성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다. 초등학교 때 각별한 사이였던 소녀 아카리와 멀어지면서 그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낀다. 세 작품 모두 저마다의 매력이 있지만, 백미는 역시 1부, ‘벚꽃 이야기’. 전학으로 멀리 떠나간 아카리와 만나기 위해 기찻길에 오른 타카키는 폭설로 인해 기차에 발이 묶여버린다. 다른 영화였다면 컷신 정도로 지나갔을 법한 짤막한 이 장면을 이 작품은 아주 오래, 정성껏 쌓아간다. “전철은 그때부터 결국 2시간이나 아무것도 없는 황야에 계속 서 있었다. 단 1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고 시간은 확실히 악의를 품고 내 위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라는 독백은 약속 장소에 늦은 인물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사가 아닐지. 

초속5센티미터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미즈하시 켄지, 하나무라 사토미, 오노우에 아야카

개봉 2007.06.21. / 2017.11.02.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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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2016)

“계속 누군가를, 무언가를 찾고 있어”
<너의 이름은.>(2016)

<초속 5센티미터> 이후, 그는 처음으로 대규모 팀을 구성해 보다 대중적인 취향을 노린 <별을 쫓는 아이>를 만든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이 작품은 스토리와 세계관 완성도는 물론 신카이 마코토의 테이스트도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흑역사가 되었다. 이후 개봉한 <언어의 정원>에서는 절치부심했는지 역대급 영상미를 보여주며 다시금 ‘빛의 마술사’라는 타이틀을 회복했다. 게다가 이전까지 비판 요소였던 스토리텔링과 인물 작화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언어의 정원으로부터 3년 뒤, <너의 이름은.>으로 그는 완벽한 스타 감독 반열에 오른다. 

한때 <별을 쫓는 아이>로 지브리의 아류 소리를 들었던 그는 <너의 이름은.>으로 “지브리를 따라잡은 감독”이라는 평을 듣게 된다. 여성이 여전히 대상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각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스토리적으로나 비주얼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작품임에는 반론이 없다. 시골 소녀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와 도쿄 소년 타키(카미키 류노스케)의 몸이 서로 뒤바뀌면서 결코 만날 리 없던 두 사람이 연결되는 이야기로, 서로를 찾아가는 여정은 유쾌하면서도 간절하다. 몸이 바뀌었는데도 별 탈 없이 지내는 두 사람의 모습 등 여전히 설명이 필요한 상황, 요소들을 감성으로 무마하는 지점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전작들에 비하면 굉장히 이야기가 촘촘해졌다. 동시에 자랑이었던 자연, 도시 경관은 물론 인물 작화까지 업그레이드되어 팬들 사이에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고점’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너의 이름은.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카미키 류노스케, 카미시라이시 모네

개봉 2017.01.04. / 2021.09.09.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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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

반드시 구하러 갈게.

<너의 이름은.>으로 대성공을 거둔 그는 <날씨의 아이>로 다시 3년 만에 돌아왔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두 남녀의 감정이 세계 전체의 운명으로 이어지는 작품으로 기존 그가 받아왔던 비판, ‘스토리와 서사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럼에도 작화나 음악은 완벽하기에 과거부터 그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평. 전작의 장단점을 모두 답습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다시 3년 뒤, 2022년에 <스즈메의 문단속>이 일본에서 개봉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규슈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열일곱 여고생 스즈메(하라 나노카)가 문을 봉인하는 여행자, 소타(마츠무라 호쿠토)를 만나며 생기는 일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 안에서 문은 열리면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소타는 문을 닫는 일을 사명으로 한다. 일본 각지에 나타난 문을 닫던 도중, 그는 문에 이끌린 소녀 스즈메를 만나게 되지만 다이진이라는 말하는 고양이로 인해 스즈메의 의자로 변해버린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시점의 변화다. 전작들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만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태’였지만, 이번에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만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태’다.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았던 <날씨의 아이>와 달리, 이번에는 일관되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실”과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신카이 마코토 식으로 서정적으로 풀어냈다는 게 주된 의견. 특히 그의 장기인 시각 연출이 전작보다 발전했다고.

스즈메의 문단속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하라 나노카, 마츠무라 호쿠토, 후카츠 에리

개봉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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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