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할 시간에 우리의 존 윅은 총이라도 한 번 더 쏩니다.” <존 윅> 시리즈를 본 적 없는 사람도 ‘존 윅’이 얼마나 간결하고 심플하게 사람을 죽이는 킬러인지는 알고 있다. 그의 성격을 보여주듯, 이름도 간결한 그는 <존 윅>(2014)을 시작으로 <존 윅: 리로드>(2017)와 <존 윅 3: 파라벨룸>(2019)을 거쳐 다시 <존 윅 4>(2023)로 돌아왔다. 수식어 없이, 다시 이름 하나로 돌아온 그는 오로지 전진한다. 4년 만에 극장으로 돌아온 킬러의 모습에 팬들은 속절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오늘은 킬러의 오리지널, <존 윅 4> 개봉 기념으로 킬러 영화들을 추천하고자 한다. 단순히 추천만 하면 지루하니, 그들이 왜 킬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존 윅> 시리즈 - 강아지가 죽어서
<존 윅>(2014)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킬러 일을 청산하고 가정을 꾸린 존 윅(키아누 리브스). 그는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아내의 마지막 선물인 강아지와 함께 살아간다. 전설적인 킬러였던 과거는 뒤로 한 채, 그는 아내를 떠올리며 서툴러도 강아지를 자식처럼 기르던 어느 날, 그의 차를 노리던 괴한에게 강아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깊은 지하실 시멘트 속에 파묻었던 총과 칼, 그리고 살의를 꺼내든 그는 복수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존 윅의 행동에 대해 ‘강아지 하나 죽였다고?’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나,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지금까지 내 선택에 반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인생을 반하는 ‘감정적인’ 선택을 한다. 존 윅이 지키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지독하게 고독한 인물이기에 그의 마음을 짐작하긴 어렵지만, 얼핏 떠올리자면 아마도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었을까.

<존 윅 4>(2023)

<존 윅 4>로 돌아온 존 윅은 더욱 고독해졌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이 <존 윅 4>에서 그가 말한 단어 개수를 세어본 결과, 고작 380단어에 불과했다. 러닝타임이 더 짧았던 1편에서는 484단어였던 걸 떠올리면 훨씬 과묵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존 윅> 시리즈의 특징인 심플한 플롯 역시 이어졌다. 전편에서 죽을 위기를 넘긴 존 윅은 자신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최고 회의의 굴레를 끊기 위해 그들과 전면전을 펼친다. 더욱 과묵해진 존 윅은 침묵을 액션으로 채운다. 손에 잡히는 건 모두 무기로 만드는 그의 끊임없는 액션 덕분에 관객들은 평평한 스토리에도 깊이 몰입할 수 있다. 

존 윅 4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

출연 키아누 리브스, 견자단, 빌 스카스가드, 로렌스 피시번, 이안 맥쉐인, 사나다 히로유키

개봉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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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 - 결혼식 날 자기를 죽이려 해서
<킬 빌 - 1부>(2003)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최고작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킬 빌>이 대중적으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는 2편까지 합치면 무려 4시간이 넘는 장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그것도 시종일관 B급 감성을 유지한 채로. 뜬금없어 보이는 우마 서먼의 노란 이소룡 추리닝마저 타란티노 감독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킬 빌>의 주인공, 베아트릭스 키도(우마 서먼)의 코드 네임은 ‘블랙 맘바’로, 독사 중에서도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한 종이다. 한 번 타깃으로 정한다면 죽’일’ 때까지 멈추지 않는데, 이 모습이 베아트릭스 키도의 복수극과 닮아있다. 한때 암살단이었던 그는 조직의 리더 빌(데이빗 캐러딘)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삶을 원했던 베아트릭스는 빌 몰래 조직을 떠나 평범한 남자 토미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리고 결혼식을 앞둔 순간,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키도는 전 연인 빌과 그의 옛 동료들에게 습격을 당한다. 남편과 친구를 모조리 잃고, 4년간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는 조직과 빌에게 지독한 복수를 시작한다. 

킬 빌 - 1부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우마 서먼

개봉 200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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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오브 타임> - 회계사지만, 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닉 오브 타임>(1995)

오늘 소개하는 킬러 중에 가장 짠한 캐릭터, <닉 오브 타임>의 진 왓슨(조니 뎁)이다. 평범한 회계사인 그는 6살 난 딸과 함께 LA로 향했다. LA역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경찰이라고 밝히며 다가온 두 사람 손에 이끌려 딸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의 차에 타게 된다. 차에 타자마자 경찰이라던 스미스(크리스토퍼 월켄)는 그에게 권총을 들이밀며 1시 30분까지 누군가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딸을 인질로 잡힌 그는 어쩔 수 없이 요구를 승낙하고, 본 적도 없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엘리노어 그랜트를 암살해야 한다. 장소는 선거 후원회가 열리는 호텔로, 1시 30분까지는 고작 76분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암살을 피하고 공권력의 힘을 빌리고자 하지만, 보안 요원들마저 매수되어 있는 상황에서 스미스는 그에게 계속해서 암살을 채근한다. 

모두가 한통속인 상황에서 주인공 왓슨은 암살 음모를 막고, 딸을 구해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매우 촉박한 시간, 범행을 압박하는 괴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리고 나의 소중한 가족, 평범한 직장인. 엮일 것 같지 않은 키워드가 기묘하게 연결되어 쫀쫀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영화를 보면 “이럴 거면 전문 킬러를 쓰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긴 하나, 조니 뎁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는 것도 꽤나 쏠쏠한 재미니 색다른 킬러 영화를 찾고 있다면 추천하는 작품.

닉 오브 타임

감독 존 바담

출연 조니 뎁, 크리스토퍼 월켄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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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파우더 밀크셰이크> - 엄마가 킬러라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2021)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어릴 적부터 전문 킬러로 길러진 주인공이 고용주로부터 버림받고 복수한다는, 킬러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영화다. 다만, 딱 한 부분에서 클리셰를 비틀었는데 그게 이 영화의 정체성이 되었다. 바로 주요 출연진이 전부 여성이라는 사실. 주인공 샘(카렌 길런)의 엄마 스칼렛(레나 헤디)은 조직 ‘회사’의 킬러였지만 15년 전 갑작스레 행방을 감췄다. 샘은 엄마의 뒤를 이어 ‘회사’에 들어가 킬러가 되었고, “회사의 돈을 횡령한 회계사로부터 돈을 되찾아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미션을 수행하던 중, 샘은 회계사의 딸을 보호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만 횡령한 돈을 잃는다. 사냥에 실패한 개는 먹잇감이 되는 것처럼, 샘은 그때부터 회사에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일반인인 회계사의 딸 에밀리(클로이 콜먼)를 데리고 피신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는 위치를 발각당하고 누군가 그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눈다. 뒤를 도니, 그곳에는 엄마 스칼렛이 있었다. 

일반적인 남성 킬러물은 ‘복수’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대표적으로 <존 윅> 시리즈가 그렇다. 하지만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여성 연대가 축이 되어 빠르게 돌아간다. 엄마와 딸, 그리고 그들의 여성 조력자들과 함께 영화는 단단한 대체 가족이 어떻게 남성 권력을 해체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메시지에 치우친 영화인가?’ 싶지만 이 작품은 장르적 재미 역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마치 테트리스처럼 러닝타임 내내 빈틈없이 꽉 찬 액션 덕분에 관객들은 ‘여성 주인공의 서사’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칼과 기관총, 장도리, 쇠사슬은 물론 볼링공, 금괴까지 손에 잡히는 건 모두 무기가 되어 난투를 벌인다. 액션이 쉴 새 없이 몰아치지만, 중간에 쉼표를 찍어주는 유머 덕분에 관객은 지치지 않는다. 호쾌한 킬러 액션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

감독 나봇 파푸샤도

출연 카렌 길런, 레나 헤디, 안젤라 바셋, 양자경, 칼라 구기노, 폴 지아마티

개봉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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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퀄라이저> - 심판자가 되기 위해
<더 이퀄라이저>(2015)

<더 이퀄라이저>는 영단어 Equal(평등한)에서 파생된 단어로, 영화에서는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로버트(덴젤 워싱턴)는 부패한 도시 보스턴에 살고 있는 소시민이다. 불면증 때문에  새벽 2시만 되면 깨는 그는 책 한 권을 들고 늘 카페로 향한다. 인간관계가 단절된 그에게 남은 건, 아내가 남기고 간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권’을 모두 읽는 것뿐.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일상에 어린 콜걸 테리(클로이 모레츠)가 찾아온다. 매일같이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본질적인 공허함을 공유하며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포주인 러시아 마피아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테리의 모습을 본 로버트는 강약약강의 세계에 분노하며 스스로 심판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언뜻 <아저씨>가 떠오른다. 어린 콜걸을 강아지로 바꾸면 <존 윅>도 되고, 딸로 바꾸면 <테이큰>도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특출난 액션’을 보여주느냐다. 그런 의미에서 <더 이퀄라이저>는 ‘심판자’라는 캐릭터 특성에 맞게 굉장히 강박적으로 깔끔한 액션을 선보인다. 테리의 복수를 위해 성매매 업소를 찾아간 그는 ‘문을 잠그는 것’부터 시작한다. 단순히 문을 잠그는 행위지만, 그 단호한 행동을 통해 관객은 흔한 주먹다짐보다 더 큰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쾌감과 절도의 선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도 주인공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없는 것도 작품의 매력 포인트.

더 이퀄라이저

감독 안톤 후쿠아

출연 덴젤 워싱턴, 클로이 모레츠, 마튼 초카스

개봉 201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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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