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케 다카시 감독 (<커넥트> 기자회견)

한때는 일본 영화계의 가장 독특한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며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구축해오던 감독, 미이케 다카시. 거장이라 부를 순 없어도 기이한 상상력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그려온 그를 좋아하는 팬층은 분명히 존재했다. 실제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그의 열렬한 팬임을 자청하며 “그는 대부이다”라는 극찬을 남길 정도. 그의 전성기 시절이었던 1998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미래 영화감독 10인’에 선정되어 스타일리스트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듯했다. 

<폴리스x전사 러브패트리나!~ 괴도로부터의 도전! 사랑으로 후다닥 체포하라!~>(2021)

컬트 영화의 주축이던 그는 2010년대 이후부터, 그는 그저 그런 상업 영화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갔다. 고어, 공포물을 주로 만들던 그가 나중엔 <폴리스x전사 러브패트리나!~ 괴도로부터의 도전! 사랑으로 후다닥 체포하라!~>(2021)와 같은 ‘걸즈x히로인 시리즈’의 극장판 감독을 맡았다. 참고로 ‘걸즈x히로인 시리즈’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일본 여아 대상 특촬물 시리즈로, 마법소녀 장르다. 이외에도 <죠죠의 기묘한 모험: 다이아몬드는 부서지지 않는다 제1장>(2017) 등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중심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누군가는 이제 미이케 다카시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말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외에도 그는 <라플라스의 마녀>(2019)와 같은 상업 영화를 제작했지만, ‘무난하다’라는 평을 넘지 못했고, B급 감성 진하게 넣은 <도쿄 아포칼립스: 최후의 결전>(2015)은 혹평을 주로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팬들은 <퍼스트 러브>(2020)와 같이 이따금씩 보여주는 미이케 다카시만의 스타일을 놓지 못한다. 오늘은 그의 최고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공포 영화 <오디션>(1999)의 한국 개봉을 맞아 미이케 다카시의 하이라이트를 톺아보고자 한다. 


오디션
장르 공포/미스터리
출연 이시바시 료, 시이나 에이히
개봉일 2023.04.19

<오디션>(1999)

미이케 다카시의 대표작이자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실린 작품, <오디션>이다. 무라카미 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였던 2000년, 수입 불가 판정을 받고 지금껏 정식 개봉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국내 개봉 소식을 알렸다. 영화는 아내를 잃고 16살 난 아들과 함께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 아오야마(이시바시 료)가 재혼을 위해 ‘제작 영화 여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을 열면서 신비한 여성 아사미(시이나 에이히)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아사미에게 첫눈에 반한 아오야마는 프로포즈 전 그와 여행을 떠나는데, 갑작스레 아사미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사미에 얽힌 실종과 살인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영화는 점차 미스터리의 중심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간다. 

사이코 심리 스릴러와 고어 요소가 적절히 섞인 영화로, 미이케 다카시 특유의 기이한 분위기가 살아있다. <오디션> 해외 상영 당시 쇼크로 졸도하는 관객들이 있었을 정도라고. 2000년 당시에는 고어한 영화가 대중적이지 않았을 때임을 감안해도 <오디션>의 충격적인 공포는 가히 압도적이다. 아오야마에게 뒤늦게 아들이 있음을 알게 된 아사미가 충격을 받아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를 중얼거릴 때부터 영화는 마지막 10분을 향해 돌진한다. 미이케 다카시에 입문하고 싶다면 단연 추천하고 싶은 작품. 

오디션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이시바시 료, 시이나 에이히

개봉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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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 더 킬러
장르 범죄/액션
출연 아사노 타다노부, 오모리 나오
개봉일 국내 미개봉

<이치 더 킬러>(2001)

야마모토 히데오의 만화 『코로시야 이치』를 원작으로 한 <이치 더 킬러>는 하드고어의 끝을 달리는 작품이다. 원작 자체가 굉장히 잔인하고 수위 높은 고어를 묘사했고, <이치 더 킬러>는 그 수위를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 ‘피와 살이 후두둑 떨어지는’ 스플래터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 작품은 미이케 다카시 작품 중에서도 수위가 굉장히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의 몸을 (글자 그대로) ‘반으로 찢는’ 장면이나, 고문하는 장면 등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맨정신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 인물 설정 역시 매우 독특한데, 보스를 쫓는 중간 보스 카키하라(아사노 타다노부)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상성욕자로, 보스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인물은 모조리 잡아 고문하는 싸이코다. 또 다른 중심인물, 킬러 이치(오모리 나오)는 어린 시절 기억으로 인해 자폐증 성향이 심하고 정서상태도 매우 불안정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들도 덩달아 정서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진다. 

폭력/반사회적 묘사가 과해 최고 심의 등급인 R-18 받은 영화가 거의 없었던 당시 일본에서 폭력 묘사로 최고 등급을 받았고, 상영 금지된 국가도 굉장히 많았다. 심지어는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스톡홀름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보다가 토하는 관객들을 위해 ‘에티켓 봉투’를 나눠주었다고. 

이치 더 킬러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아사노 타다노부, 오모리 나오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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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신아리
장르 공포
출연 시바사키 코우, 츠츠미 신이치
개봉일 2004.07.09

<착신아리>(2004)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을 꼽자면 <착신아리>가 아닐까. <착신아리>를 본 적은 없어도 영화에 나온 ‘휴대폰 벨소리’는 예능에서 스산한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빈번하게 사용해서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공포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귀신으로부터 착신이 오면 죽는다, 설정은 심플하지만 휴대폰과 소리를 긴밀하게 연결해 관객을 오로지 사운드만으로 공포에 몰아넣는다. 

영화는 휴대폰을 꺼도, 해지 신청을 해도 죽음을 예고하는 착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대생 유미(시바사키 코우)는 친구가 주선한 미팅에 나갔다가 번호 교환을 한다. 그리고 미팅이 끝나고, 유미가 친구 요코(나가타 안나)와 함께 파트너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도중 처음 들어보는 벨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요코에게 ‘3일 후 요코’로부터 연락이 온다. 열린 결말이라 보는 사람에 의해 결말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것도 이 작품의 매력. 미이케 다카시의 오리지널 영화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착신아리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시바사키 코우, 츠츠미 신이치, 후키이시 카즈에

개봉 200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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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교전
장르 스릴러/공포
출연 이토 히데아키
개봉일 2013.08.29

<악의교전>(2013)

<악의교전>은 2010년대 이후 애니메이션 실사화 중심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미이케 다카시의 몇 안 되는 오리지널 작품이자, 그의 감이 아직은 건재함을 보여주었던 영화다. <악의교전>은 기시 유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던 교사 하스미 세이지(이토 히데아키)가 사실은 사이코패스였고, 자신의 실수를 은닉하기 위해 학급 전체를 살해하는 이야기다. 어쩌면 뻔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설정을 힘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미이케 다카시만의 하드고어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죽어나가는 학생들의 배경과 감정을 설명하거나, 선생이 싸이코패스가 된 이유를 플래시백 따위로 보여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 고어함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나머지 일들은 어떻게 되었든 알 바 아니라는 듯, 영화는 맹렬하게 결말을 향해 달려나간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다. 고요했던 전반부는 추락을 위해 올라가는 길, 질주하는 후반부는 추락하고 있는 롤러코스터다. “드디어 끝인가”라는 감정이 밀려오는 순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정말, 영화를 보면 ‘어떻게 흘러간 거지’ 싶다. 

하스미도 처음엔 자신을 의심하던 인물만 죽였다. 그러나 그 의심의 시선들이 쌓이고, 시체도 덩달아 쌓이면서 의심이 점차 늘어나자 하스미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로 한다. 바로, ‘학급 전체를 죽이는 것’으로. 어제까지만 해도 웃고 지내던 제자를 향해 기관총을 쏘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는 그야말로 쾌락주의 싸이코패스다. 미이케 다카시의 ‘악惡’이 가장 농밀하게 응집된 캐릭터를 꼽자면 하스미가 아닐까. 고어함의 정도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덜하지만, 그것이 잔혹하지 않음을 뜻하진 않는다. 

악의교전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이토 히데아키, 니카이도 후미, 소메타니 쇼타, 하야시 켄토, 야마다 타카유키

개봉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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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러브
장르 범죄/로맨스/멜로/액션
출연 쿠보타 마사타카, 코니시 사쿠라코
개봉일 2020.12.17

<퍼스트 러브>(2020)

<퍼스트 러브>는 <악의교전>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미이케 다카시가 재주목 받았던 작품이다. <악의교전> 이후 거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만 만들었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영화로, 2019년 칸 영화제 감독 주간 공식 초청작이기도 했다. 브레이크를 뽑은 트럭처럼 수위 조절 없이 달렸던 이전작들에 비해서는 색채가 옅어지긴 했으나, 폼이 꽤 돌아왔다는 평을 받았다. 

제목은 ‘첫사랑’을 뜻하는 <퍼스트 러브>지만, 인물들을 살펴보면 도저히 첫사랑을 연상할 수 없다. 한탕을 설계한 범죄 조직원 카세(소메타니 쇼타), 야쿠자와 한패인 부패 경찰 오토모(오모리 나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복서 레오(쿠보타 마사타카), 그리고 마약에 중독된 여자, 모니카(코니시 사쿠라코).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제목이 ‘퍼스트 러브’인 것은 미이케 다카시만의 ‘로맨스’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앞에 ‘광기 어린’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하지만. 카세와 오토모가 뒷돈을 빼돌리기 위해 마약을 가로채기로 하고, 죄는 전부 마약 중독자인 모니카에게 덮어 씌우기로 했지만 모니카가 레오를 만나면서 계획은 완전히 뒤틀리게 된다. 

광기 로맨스,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 영화는 일반적인 액션 로맨스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시작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잘린 머리가 굴러다닐 정도니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고어와 로맨스가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연결되어 엉망진창으로 굴러간다. “폭력과 코미디, 로맨스가 혼재되어 있는 <퍼스트 러브>는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미이케 다카시 감독에게 이 모든 건 그저 그의 수많은 필모그래피 중 재밌는 작품일 뿐이다”라는 로튼 토마토의 총평이 이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맞다, 영화는 뒤죽박죽이다. 머리가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유머를 날렸다가, 피가 튀기는 와중에 사랑을 한다. 이 모든 게 말이 되는 이유는, <퍼스트 러브>가 미이케 다카시 작품이기 때문이다. 

퍼스트 러브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쿠보타 마사타카, 오모리 나오, 소메타니 쇼타

개봉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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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