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주의 딱지를 보고도 이 글에 입장한 분들에게 우선 박수를 보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 콘텐츠를 기획하는 동안은 먹을 걸 입에 대지 않았다. 댈 수 없었다, 고 표현하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거리는 불쾌한 구역감이 느껴졌다. 구토를 하진 않았으나, 언제든 화장실에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만약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다면, ‘구토 봉투가 반드시 필요하겠다’ 싶었다. 앞으로 소개할 다섯 편의 영화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구토 봉투를 관객들에게 나누어주었으나, 순수하게 관객과 영화관의 청결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을 거라 장담한다. 오늘은 오직 시청각만으로 관객의 신체 반응을 이끌어낸, 어떤 의미에서 실로 ‘대단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먼저 영화를 본 사람 입장에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꼭 빈속에 보길 추천한다.


<슬픔의 삼각형>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우디 해럴슨, 해리스 디킨슨, 찰비 딘, 돌리 드 레온, 즐라트코 버릭, 비키 베를린

<슬픔의 삼각형>(2023)

202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포스터에서부터 배우가 구토를 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다른 4편이 ‘잔인함’, ‘공포’로 인해 구토를 한다면, <슬픔의 삼각형>은 순수하게 ‘역겨워서’ 구토를 하게 된다. 아마도 관객들은 인생 최초로 스크린에서 대변과 구토물이 날아다니는 걸 봤을 것이다. 시종일관 불편하고 노골적인 유머를 던지는 캐릭터들에 불편함도 느꼈을 테다. 이토록 ‘역겨운’ 소재들을 갖고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매끈한 사회풍자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호화 크루즈에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휴가를 보내고 있던 부유한 승객들이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배가 난파되고, 무인도에 떨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할 줄 아는 건 구조를 기다리는 일뿐인 부자 승객들, 그리고 노동으로 생존력을 길러온 저임금 노동자들. 호화 크루즈라는 자본주의가 깔아준 판에서는 노동자를 자본가가 종처럼 부렸지만,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무인도에서는 권력관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부르주아 승객의 구토 ‘카니발’은 감독이 자본주의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기도 하다. 그와 별개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오물이 날아다니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구토 장면”을 목표로 촬영되었다고.

슬픔의 삼각형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우디 해럴슨, 해리스 딕킨슨, 찰비 딘 크릭, 돌리 드 레옹, 즐라트코 버릭, 비키 베를린

개봉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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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
출연 가랑스 마릴리에, 엘라 룸프

<로우>(2017)

<로우>는 ‘채식주의자가 식인에 중독된다’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채식주의자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은 자신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강압적인 대학 분위기에 불화한다. 채식주의자로 살아오던 쥐스틴은 신입생 행사 때 ‘토끼 콩팥’을 억지로 먹으면서 처음 ‘육식’에 눈을 뜨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패티, 날고기, 나중엔 언니의 손가락을 먹어치우면서 그는 육식을 넘어 자신에게 ‘식인’ 욕망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 규정하고 살았던 그의 세계가 완전히 전복되기 시작한다. 욕망을 억압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식인 욕망은 더욱 거세어진다. 마치 고기 맛을 본 짐승 같다. 식욕과 함께 모든 욕망이 개방된 쥐스틴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개 흉내’를 내기에 이른다. 관객은 피와 살이 튀기는 장면 못지않게 쥐스틴이 인간에서 짐승으로 ‘격하되는’ 순간에 불쾌감을 느낀다. 

식인에 눈을 뜬 쥐스틴의 행보를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고 보면 그닥 놀랍지 않다. 사냥을 하고, 날고기에 입을 갖다 대는 모습. 그러나 관객이 이를 불쾌해하는 이유는 쥐스틴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플래터 영화보다 더욱 불쾌한 구역감을 선사하는 영화다. 실제로 칸 영화제, 토론토 국제 영화제, 고던버그 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로우>를 본 관객들이 기절하거나 구토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로우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

출연 가렌스 마릴러, 엘라 룸프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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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 더 킬러>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아사노 타다노부, 오오모리 나오

<이치 더 킬러>(2001)

미이케 다카시의 고약한 악취미가 고스란히 반영된 영화, <이치 더 킬러>다. 야마모토 히데오의 만화 『코로시야 이치』를 원작으로 했는데, 원작부터 정상의 궤도에서 한참 벗어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범죄 조직을 배경으로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쫓고 쫓기는 스토리로, 폭력성과 선정성이 도를 지나쳐 만화임에도 독자의 비위를 상하게 만든다. <이치 더 킬러>는 만화의 하드고어한 연출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그야말로 ‘피와 살이 후두둑 떨어’진다. 불쾌하고 잔인한 연출로 유명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수위가 높다. 사람을 반으로 찢거나 피부에 갈고리를 달고 매다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일본에서 개봉 당시 폭력/반사회적 묘사로 인해 최고 심의 등급인 R-18을 받았는데, ‘잔인함’으로 최고 심의 등급을 받은 경우가 일본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였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스톡홀름 국제 영화제에서는 보다가 토하는 관객들을 위해 ‘에티켓 봉투’를 나눠주었고, 심지어는 상영 금지된 국가도 있을 정도였다. 

이치 더 킬러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아사노 타다노부, 오모리 나오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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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향연> 
감독 허셀 고든 루이스
출연 제롬 에덴, 애슐린 마틴, 윌리엄 커윈, 스코트 H. 홀, 코니 메이슨, 산드라 싱클레어, 진 구티에, 맬 아놀드, 알 골든, 크레이그 모드슬레이 Jr., 토니 칼버트, 린 볼튼, 아스트리드 올슨

<피의 향연>(1963)

<양들의 침묵>(1991)부터,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 <로우>(2016)까지 식인과 신체훼손을 주제로 한 영화는 간헐적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카니발리즘으로 묶을 수 있는 이 흐름은 1963년, 허셀 고든 루이스 감독의 <피의 향연>으로부터 시작된다. <피의 향연>은 고어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작품으로 이집트 여신을 광적으로 섬기는 한 요리사가 여러 여성을 살해 후, 요리하여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다. 살해 순간을 빠른 템포로 스쳐 지나가듯 보여주는 여타 영화와 다르게 <피의 향연>은 ‘잘 보라는 듯’ 느린 박자로 피해자를 죽이고,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들려오는 북소리는 마치 이 행위가 ‘종교적 의식’이라도 되는 양 경건한 분위기까지 만들어준다. 연쇄살인마이자 광신도 푸아드 람세스(맬 아놀드)는 죽인 여성의 신체 일부를 사용해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를 깨우고자 한다. 

이슈타르가 관장하는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만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를 깨우는 의식 역시 선정적이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젊은 여사제들이 6일간 남성들과 향락의 시간을 보내다 7일째 되는 날 ‘피의 향연’이 시작된다. 여사제들은 모두 죽고, 그 시체를 군중이 나눠먹는다. 1963년에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에 CG나 연기 모두 엉성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고어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카니발리즘’과 ‘제의’의 연결, 그리고 느릿한 북소리가 자아내는 기이한 공포 때문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잔인함이 다른 영화보다 덜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영화에서는 혀를 통째로 뽑거나 인육을 요리한다. 당시 관객들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을 장면이기에 영화는 “용기를 내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구토 봉투를 나눠주기도 했다. 

피의 향연

감독 허셀 고든 루이스

출연 윌리엄 커윈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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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파이어 2>
감독 데미안 레온
출연 데이빗 하워드 손튼, 제나 카넬, 펠리사 로즈, 로런 라베라, 캐서린 코코란

<테리파이어 2>(2022)

2017년에 개봉한 슬래셔 무비 <테리파이어>의 후속편인 <테리파이어 2>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가뿐히 이겨내고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전편 대비 고어 수위가 훨씬 높아지기도 했고, 주인공 시에나 역시 말 그대로 ‘여전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해외에서는 강도 높은 고어 요소 때문에 일부 관객이 실신하거나 구토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고어영화 마니아에게는 “이 정도는 되어야 고어지!”라는 평을, 일반 관객에게는 말도 못 할 구역감을 선사한 영화, <테리파이어 2>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영화는 1편 결말 시점부터 시작된다. 광대 분장을 한 살인마, 아트 더 크라운은 1편에서 죽었지만 2편에서 다시 살아나 시체 안치소를 빠져나온다. 1편에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여, 2편에서는 아트 더 크라운의 동기나 이야기가 풀릴까 싶었지만 슬래셔 무비에 ‘살인동기’는 불필요하다는 듯 2편에서도 사람을 이유 없이 마구 죽인다. 스토리라고 하기엔 빈약한 설정들이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얼마나 창의적으로, 더 많이, 더 잔혹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를 연구했고 그걸 스크린에 옮겼다. 슬래셔 무비 애호가라면 한 번은 봐야 할 시리즈. 다만, 슬래셔 무비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호기심으로라도 이 영화를 보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

테리파이어

감독 데미안 리온

출연 제나 카넬, 사만다 스카피디, 데이빗 하워드 쏜턴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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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파이어 2> 네이버 영화 링크가 없어, 부득이하게 <테리파이어>로 대체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