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연기를 하다 보니 정말 톱스타가 되었다. 이쯤 되면, 톱스타의 운명을 타고난 게 아닌지. 배우 오정세는 자신이 ‘하나의 대표작이 없는 배우’로 각인되고, ‘하나의 색깔로 규정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톱스타 연기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를 빼놓고 오정세를 논하기에는 너무나도 아쉽다. 오정세가 연기하는 톱스타는 유난히도 “맛깔스럽고 차지다”라는 표현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왠지 오정세가 출연한 부분만 돌려보고 싶은 건 필자뿐만이 아닐 터. 중독성이 진한 그의 톱스타 연기에는 출구가 없다. 그래서 모아봤다. 오정세가 톱스타 연기를 한 작품들.
마성의 한류스타, <남자사용설명서> 이승재
말투, 몸짓, 걸음걸이 하나까지 완벽한 톱스타 그 자체다. 처음에는 오정세가 한류 톱스타라는 설정에 갸웃하다가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오정세가 곧 톱스타이고, 톱스타가 곧 오정세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는 마성의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비록, 영화는 당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독특한 B급 정서로 무장해 ‘시대를 앞선 코미디’라는 평을 받는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오정세가 맡은 ‘이승재’는 고전적인 ‘마초’ 향을 진하게 풍기는 톱스타다. 가까이 가면 왠지 스킨 향이 날 것만 같고, 담배 대신 시가를 피우는 고전적인 마초이자, 고작 의상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콘티를 바꾸자는 진상이다.
지금에야 ‘진짜 톱스타’가 된 오정세지만, <남자사용설명서>는 오정세의 첫 주연작이었다. 그 때문에, 이전까지는 주로 조연을 맡던 오정세가 주연을, 그것도 톱스타 역을 맡아 본인도 주변도 의아해했다고 한다.
사실, 오정세가 ‘이승재’ 역을 맡은 데에는 비하인드가 있다. 원래 오정세는 <남자사용설명서>에 다른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그런데, 주인공 ‘이승재’ 역할을 맡을 배우를 찾는 데에 난항을 겪던 중, 이원석 감독이 오정세에게 ‘네가 주인공 할래?’라고 해서 덥석 주인공이 되었다고.
오정세는 “톱스타 비주얼이 아닌데 톱스타 역할을 해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라며, "(<남자사용설명서> 장면 중) 내가 지나갈 때 주변에서 멋있다고 해줘야 하는데 조연 배우분들도 연기하기 힘들어서 억지로 하시는 것 같더라. 몇몇 분은 다른데 보면서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강동원 씨가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나왔을 텐데"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오정세가 아닌 이승재를 상상할 수 없으니 모두에게 윈윈이 된 셈. 그는 고전적인 남성성을 유쾌하게 비트는 이 영화를 완벽히 이해한 듯하다. 때로는 과장된 모습으로,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고정관념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했으니, 똑똑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가 싶다. 극중 최보나(이시영)에게 뱉는 “나는 너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대사는 여러 의미로 이승재의 명대사다.
이 영화의 인연으로, 이원석 감독의 차기 영화 <킬링 로맨스>에도 찜질방 사장으로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킬링 로맨스>에서도 “저 이승재처럼 뜨거운 핫플”이라는 것으로 보아, 마초스러움을 아직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듯한 이승재의 모습은 또 다른 '이원석 유니버스'의 연장이다.

- 남자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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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원석
출연 이시영, 오정세, 박영규, 김정태, 이원종, 배성우, 김준성, 김민재, 경수진, 안용준
개봉 2013.02.14.
하루아침에 톱스타가 된 매니저, <스위치> 조윤
오정세는 유난히도 사람 냄새나는 역할에 강하다. 비록 치명적인 매력을 내뿜는 톱스타 연기로 웃음을 선사할지언정, 그 웃음에는 왠지 모를 짠내와 감동이 어려있다.
그때의 내가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에에올>(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지난 선택들의 총합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선택을 하지 않은 요소들도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스위치>가 딱 그런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남우주연상을 석권한 톱스타, 그리고 그의 비위를 맞추는 매니저. 두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입장이 바뀐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 한차례 톱스타의 맛(?)을 경험한 오정세의 톱스타 연기는 <스위치>로 절정을 맞았다. 이번에는 말 그대로 ‘스위치’, 즉 전세 역전이 일어나 갑작스럽게 톱스타가 된 ‘조윤’ 역할. 오정세는 짠내폭발하는 매니저, 그리고 안하무인 톱스타의 극과 극을 모두 맛깔스럽게 표현했다.
한편, <스위치>에는 오정세 이외에도 권상우, 이민정 등이 출연한다. 영화에서는 최근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에서 열연한 박소이 양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스위치>는 비록 42만 명이라는 아쉬운 관람객 수를 동원했지만, 실관람객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마음 따뜻한 작품이니, 올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과 함께 조금 색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면, <스위치>를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 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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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대윤
출연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 박소이, 김준, 김미경, 차희, 이서환, 차시원
개봉 2023.01.04.
바람둥이인데 은근히 짠한 톱스타, <거미집> 강호세
<거미집> 속 톱스타 ‘강호세’는 이상하다. 분명 바람둥이에다,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밝히며, 그저 사랑에 눈이 멀어 제멋대로인 톱스타인데, 은근히 짠하고, 찌질하기도 하고, 정이 간다. 호세 역을 맡은 오정세는 “(<거미집>의 김지운 감독님이 톱스타 ‘호세’ 역에) 왜 나를 캐스팅했는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라고 했지만, 어딘가 어설픈 톱스타 역할에는 오정세가 제격 아니던가.
영화가 표방하는 ‘앙상블 코미디’ 장르를 잘 이해한 듯, 오정세는 <거미집>에서 톡톡한 몫을 해낸다. 화면에 등장하기만 하면 관객들의 웃음 버튼을 누르는 건 그의 장기. “씨나리오가 좀 가혹해요”라는 명대사를 남기기도 한 그는 유림(정수정)을 향한 순애보(그런데 이제 그게 바람인)를 절절하게 펼쳐낸다. <거미집>에서는 오정세와 송강호의 케미, 오정세와 정수정의 케미 등 다양한 케미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
오정세는 <거미집> 호세의 바람둥이 기질에 대해 "사랑이 지나치게 많은 캐릭터였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끝나고 또 다른 사랑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자신이 해석한 바를 내비치기도 했다.

- 거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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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크리스탈
개봉 2023.09.27.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