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201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번복하며 <바람이 분다> 이후 10년 만에 신작을 냈다. 그의 작품 세계부터 인생까지 집대성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사상 역대 최고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작품으로 모두 수작업에 프레임 수까지 늘렸다.

<이웃집 토토로>(1988)


<이웃집 토토로>를 8명의 애니메이터가 8개월에 걸쳐 제작했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60명의 애니메이터가 무려 7년 동안 제작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개봉 전까지 제목과 포스터 한 장만 공개하며 신비주의 마케팅을 고수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지브리 작품의 흥행을 이끈 명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의 결정으로 미야자키 감독은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정보의 부재가 곧 재미라 생각한다”며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다만, 역대급 제작비가 들었을뿐더러 모든 제작비를 지브리에서 충당한 만큼, 반드시 흥행해야 했기 때문에 그 역시 “홍보 없이도 괜찮을지 궁금하다"라며 마케팅 방식에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출처: 위키피디아)


렇게 세계의 관심 속에 개봉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엔터테인먼트로서 ‘액션 활극’을 기대했다면 다소 난해할 수 있겠지만, 지브리의 팬이자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을 애정하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작품보다 풍부한 감상을 느낄 수 있다. 아마 관심 있던 사람이라면 영화의 제목이 1937년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다(애니메이션 원제는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다). 은퇴 선언을 철회한 뒤 그는 “오랫동안 피해왔던 것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저히 은퇴할 수 없었다”고 말하며 “’자기 자신’이 주제인 작품이다. 그 주제를 다루지 않으면 끝낼 수 없다”며 자전적인 이야기로 차기작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차기작을 구상하다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떠올렸고, 이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구상했다.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을 뿐,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미야자키 감독의 오리지널이다. 그럼에도 미야자키 감독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주인공의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로 책이 등장할 계획이다”라고 언급했다.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을 이해하는 것이 곧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을 담은 작품의 시작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떤 책일까.
국내 정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출처: 예스24)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1937년에 출간한 청소년 소설로, 일본에 군국주의가 정점에 도달했을 즈음이다. 19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연도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절정이던 시기였다. 이 당시에는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게 거의 불가능했지만 요시노 겐자부로는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문화를 전파하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시대의 분위기와 정반대로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덕분에 오랜 시간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본의 도서 요약 서비스, ‘flier’에서 정리한 이 책의 핵심은 3가지다.

첫째, 세상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나 역시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둘째, 과거 위인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자신의 경험을 중시하고,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지 깊이 생각하는 일이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다.

셋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을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책의 주인공은 15살 코페르 군으로 실제 이름은 혼다 준이치다. 7층 백화점에서 도쿄를 내려다보던 혼다는 문득, ‘무수한 지붕 아래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도시의 일부를 떠다니는 물 분자처럼 느껴졌고, 이를 책의 또 다른 주인공,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은 이 생각을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전환에 비유하며, ‘누구나 천동설처럼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지만, 어른이 되면 세상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이날의 경험이 혼다에게 중요하길 바라며 ‘코페르니쿠스 군’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주인공은 혼다 준이치에서 코펠군이 되었다. 

도덕 교과서에 실릴 법한 내용이라 얼핏 지루해 보이지만 책은 꽤 흥미로운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각 에피소드는 주인공 코페르가 일상에서 마주한 사건과 그에 따른 물음을 삼촌이 답변하는 방식인데, 1장 ‘사물의 관점에 대하여’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경험한 코페르에게 삼촌이 말한다.

코페르니쿠스처럼 내가 살아가는 지구를 드넓은 우주 속 천체의 하나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순히 천문학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란다. 이 문제는 세상을, 또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단다.

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중

1장에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의 흐름 속에 있는 한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한 독자에게 작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봤을 때,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직접적으로 묻는다. 어려운 질문에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훌륭한 사람’의 태도가 아닌, ‘나라면 어떻게 훌륭히 대처할 것인가’에 집중하라 넌지시 조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세계가 전쟁의 한복판을 지나는 지금,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인류에게 ‘어떻게 하면 이타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그리고 ‘위인’으로 불리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실각한 사례를 이야기하며, 인류의 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힘은 허망하다는 의견도 덧붙인다. 


삼촌의 입을 빌려 작가는 빈부격차부터 왕따, 폭력, 평화에 대한 의견을 전한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 ‘돌층계의 추억’은 ‘비겁함’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모두 한 번은 느꼈을 감정이기에 가장 흥미롭다. 누구나 본인은 선량하다 믿는다. 그러나 거대한 폭력 앞에 굴복하는 자신을 보았을 때, 그 비겁함에 실망하고 나아가서는 수치심까지 느낀다. 어쩌면 사람이 가장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바로 ‘본인의 비겁함’일지도 모르지만, 7장은 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코펠군은 괴롭힘당할 때 도와주겠다는 친구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를 배신한다. 죄책감과 배신한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에 빠진 코펠군은 결국 학교에 가지 않고 삼촌에게 편지를 한다. 그러자 삼촌은 인간의 고통은 원래 있어야 할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 생긴다며, 인간의 위대함은 본래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할 때는 마음이 괴롭단다. 하지만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후회할 수 있었기에 동물보다 위대한 존재가 된 거란다.

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중미야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